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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앤글 Dec 14. 2023

5학년 아들이 이상해졌어요

시작된 사춘기

5학년 아들이 2학기가 되더니 사춘기의 문을 활짝 열고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습니다.

"너는 어린이고, 나는 어른이야" 1학년 여동생에게 어른임을 천명하며 선을 긋기 시작했어요.

49개월 차이 나는 동생을 딸처럼 이뻐하던 오빠는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요?



1. 학교에서 아는 척하지 마라

"엄마, 오늘 급식실에서 오빠 만났어요~"

깨발랄 둘째가 퇴근하고 들어온 엄마를 향해 하루의 일과를 재잘재잘 떠들어댑니다. 5학년 첫째와 1학년 둘째가 급식실에서 만나게 되었나 봐요.

"오~ 그랬어? 반가웠겠네~ 오빠랑 인사했어?"

"아니요. 오빠가 학교에서는 아는 척하지 말래요"

오잉? 이게 무슨 말인가요? 당장 방에 있는 첫째에게 사실을 확인 해 봅니다.

"쟤 너무 시끄러워요"

사춘기가 된 오빠는 학교에서 반갑게 인사하는 여동생이 시끄러웠나 봅니다. 칫 나도 다섯 살 많은 오빠 있지만 서운하다 얘! 저도 어쩔 수 없는 여동생이라 딸에게 감정이입이 돼서 서운하네요.



2. 왜 나한테만 짜증 내는 건데!

"오빠~ 나 베토벤 책 좀 가져가도 돼?"

"야! 나가라"

"영웅아~ 동생 책 좀 보게 꺼내 줘~"

"네~"

동생이 오빠 방에 있는 책을 읽고 싶어서 말을 걸어도 돌아오는 건 냉기 가득한 단답형 대답뿐입니다. 겨우 엄마가 한 마디 거드니 책을 꺼내주며 빠르게 동생을 방에서 쫓아냅니다.

5학년 2학기가 되고부터 동생을 향한 말투에 온기가 1도 없습니다. 아직은 엄마에게는 따뜻한 사람의 온기를 느끼게 해 주는데 동생한테만은 시베리아 한파가 따로 없어요.

"왜 오빠는 나한테만 짜증 내는 건데!"

동생의 투정에도 오빠는 대꾸할 값어치를 느끼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3. 선생님 말이 곧 법

도대체가 책상의 용도를 모르겠습니다. 저기서 문제집은 풀 수 있을까? 공간이 안 나오는데? 싶은 아들의 책상을 보면 한숨이 나옵니다. 치워라 치워라 노래를 불러도 네, 네 후렴구가 따라올 뿐 책상은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서로의 스트레스를 줄이고자 봐도 못 본 척 잔소리를 꾹 누를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에요.

근무시간 중에 클래스팅 알림이 오네요. 숙제가 무려 책상정리 라구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아들 과연 선생님의 말씀은 들을까요?



퇴근 후 집에 가서 아이의 책상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 선생님 책상정리 숙제 매일 내주시면 안 되나요? 역시 엄마의 백 마디 말 보다 선생님의 한 마디가 대단함을 느낍니다. 선생님 부디 일주일에 한 번씩 책상정리 숙제 내주세요. 매일도 바라지 않습니다.



4. 남자가 되었다

"여보, 여보~"

아들과 목욕하고 나온 남편이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저를 부르며 검지를 펴서 아들을 가리킵니다.

"뭐?" 입모양으로 이유를 물어보자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자꾸 아들을 가리키네요.

'뭘 보라는 거야?' 욕실에서 몸을 닦고 있는 아들을 살짝 보았습니다.

어익후 우리 아들 남자가 되었구나. 엄마품에서 꼬물꼬물 젖을 빨고 잠투정을 하던 아가는 어느덧 폭풍성장을 하여 남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어느새 160cm 엄마 키도 따라잡더니 지방이 없는 몸은 여섯 개의 복근이 선명하고 이미 2차 성징이 이루어진 몸은... 흠흠 아들이지만 이제는 눈을 피하게 되네요. 엄마의 기도대로 187cm 김우빈 형아처럼 크거라. 그러고 보니 지난주와 다르게 어깨도 넓어지고 작은 역삼각형의 몸이 되었군요. 아무튼 아들이 낯설어지기 시작하는 요즘입니다.



5. 아빠가 없어서 너무 좋았어요

지난 주말 딸아이와 미술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아들은 친구들과 집 옆 체육공원에서 만나 축구와 농구를 하기로 했다고 따라나서질 않네요. 이제는 다 큰 아들 데리고 다니는 것도 낯 선 일이 되었어요. 그렇게 엄마와 딸은 신촌에 있는 전시회장으로, 아들은 친구들을 만나러 헤어졌습니다.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왔는데 아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네요.

"아직도 운동 중이니?"

"아, 이제 들어갈게요"

숨을 헐떡 거리며 전화를 받던 아이가 땀으로 샤워를 하고 들어 왔어요

"친구들이랑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음료수랑 탕후루도 사 먹었어요"

아빠 없이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고 온 하루가 최고로 신나는 하루였다고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로 자랑을 하네요. 친구들이랑 놀 때도 혹여 아이가 다칠까 봐 조용히 따라가서 조심해라 참견을 하던 아빠 없이 운동을 해서 너무 좋았다고 하는 아들. 그 마음을 남편에게 전했습니다

"다칠까 봐 그러지. 칫 서운하네'

"이제 친구들끼리 놀 나이야. 품에서 떠나보내~"

언제까지 아들 뒤를 따라다닐 수도 없는 일. 아들을 마음에서부터 떠나보내라는 아내의 말조차 서운해하는 큰 아들 케어도 저의 몫입니다.



6. 야 떨어져라


49개월 차이가 나는 동생을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했는 줄 모릅니다

"아이고 우리 딸 잘 잤떠용?"

"조심해 조심해 넘어지면 안 돼'

지 딸도 아니면서 우리 딸 우리 딸 노래를 부르고 밖에 나가면 동생 넘어질까 손 꼭 잡고 걷던 둘도 없는 오빠였어요. 2023년 1월에는 저렇게 하트도 하고 사진을 찍었더라고요. 그러나 그건 딱 5학년이 되기 전까지였습니다. 5학년이 되고부터 말투가 변하더니 2학기가 되고부터는 부모가 같은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람처럼 동생을 대하고 있어요.



사진을 찍어도 절대 붙어 있지 않습니다. 남매의 이쁜 모습을 담고 싶은 엄마의 간절한 소원도 아들은 들어주지 않아요. "빨리 찍으세요" "야! 떨어져!"라는 변성기 오빠의 목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빨리 걸어라, 기저귀만 떼라, 어린이집만 가 봐라, 어서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면... 아이가 커 갈수록 빠른 성장을 바랐습니다. 어느 순간 보니 아들은 기대보다 빨리 컸고 마음으로부터의 거리도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아이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기에 이제 인격적으로 독립할 아이를 마음으로부터 떠나 보낼 준비를 합니다. 아직은 사춘기 초입의 귀여운 5학년이라 중2가 되면 얼마나 큰 폭풍이 몰려오려나 살짝 겁이 나기도 하네요. 사춘기의 문을 두드린 5학년 아들. 그렇게 아이도 성장하고 저도 사춘기 자녀를 처음 키우는 엄마로 성장합니다. 아들의 변화가 낯설기도 하지만 신기하고 재미도 있는 요즘이라 무서운 중2 시기가 오기 전 지금을 즐겨봅니다.



"산타할아버지는 어린이한테만 선물 주실걸?"

"초등학생 까지는 어린이죠~ 저는 레고 주실 거라 믿어요"

산타할아버지는 존재를 믿는 어린이에게만 선물을 준다고 하니 어른이라는 자아는 온 데 간 데 없고 산타할아버지를 믿는 어린이가 되었네요.

아들아, 너 산타할아버지 없는 거 알잖아! 엄마, 아빠는 산타가 되어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합니다. 이 또한 지금 시기에 부부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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