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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앤글 Nov 24. 2023

겨울에 먹는 엄마의 인삼 꿀 절임

내리사랑

"으웩. 너무 써요. 못 먹겠어요."

"시끄러워. 약이다 생각하고 꿀꺽 삼켜."


드디어 겨울이 왔나 보다. 엄마는 매년 겨울 어김없이 이 쓴 맛 나는 고약한걸 큰 어른 숟가락으로 푹 떠서 내 입에 넣어 주신다. 언니랑 오빠는 쓰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잘도 받아먹는데 내 입에는 쓰디쓴 약이나 다름없다. 찬바람이 불어오면 우리 집 주방에는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인삼 꿀 절임이 큰 유리통에 담겨 있었다. 인삼 꿀 절임이 등장했다는 건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온다는 뜻이다. 그렇게 겨울은 인삼의 고약한 맛으로 찾아오곤 했다.






"애들이 요즘 감기를 달고 사네. 도대체 약을 몇 주째 먹는지 모르겠어"

"아이고 어쩌냐. 옷 단단히 입히고 따뜻하게 먹여"

코를 훌쩍거리는 아이들을 보고 엄마가 걱정을 하신다. 오랜만에 외가에 온 아이들은 소파에 널브러져 신나게 TV시청 중이고, 친정엄마랑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운다. 아이들 키우면서 회사 다니는 건 힘들지 않은지, 회사 업무는 과중하지 않은지, 아픈 데는 없는지 엄마는 온통 내 걱정뿐이다.


양봉을 하는 지인에게서 꿀 판매가 시작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한 통 구매할 테니 겨울에 아이들 꿀 물을 타서 주라 하신다. 즐겨 마시지는 않지만 으슬으슬 몸이 추울 때 한 잔 마시면 온몸이 사르르 녹아서 없으면 아쉬운 꿀이다. 마침 몇 년 전 엄마를 통해 구입한 꿀이 바닥을 보이는데 타이밍 한번 끝내준다.

"엄마, 옛날에 우리 어릴 때 엄마가 인삼 꿀 절임 먹여주면 그렇게 싫었었는데. 꿀 하니까 그게 생각나네"

"옛날에는 뭐 특별한 약이 있었나. 겨울 되면 그거라도 먹이고 감기 걸리지 말라고 그랬지."

"이번에 꿀 사면 나도 인삼 사다가 잘게 다져서 엄마처럼 아이들 좀 먹일까 봐"

"그래, 인삼 꿀 절임 만들어서 애들 먹이면 좋지"

엄마랑 그 옛날 어린 시절도 추억하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참 좋다. 서향 거실로 들어오는 붉은 노을이 엄마의 모습 같아서 부드럽고 따뜻하다.


꿀 한통에 5만 5천 원. 별거 아닌 걸로 또 엄마랑 실랑이를 벌인다. 받아라, 안 받는다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엄마 계좌로 재빠르게 송금을 해서 이번에는 엄마를 이기고 말았다. 시집간 다 큰 딸에게 자꾸만 뭘 해 주지 못해 안달인 엄마다. 철이 들어가는 건지 엄마에게 받기만 하는 게 염치없어서 싫다.

"인삼 사다 꿀절임 만들었어?"

"아니, 일이 바빠서 인삼 사러 갈 시간도 없고 요즘 정신이 없네."

"그래, 너 힘든데 그냥 애들 꿀이나 먹여. 겨울에 꿀만 한 숟가락씩 먹여도 약이야."

늘 막내딸이 안쓰러운 엄마는 자주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챙기기가 바쁘다. 엄마에게 살갑지 못한 딸이라 미안하기도 하지만, 엄마 말대로 나는 곰 같은 딸이니 어쩔 수 없다 합리화를 하고 만다.






"OO야, 주말에 집에 와서 인삼 꿀 절임 가져가. 엄마랑 아빠가 인삼 잘게 다져서 다 만들어 놨어"

결국 바쁜 막내딸을 대신해서 70 중반의 두 노인네가 팔을 걷어붙였다. 인삼을 씻고 말리고 아이들 먹이라고 잘게 썰기까지 한 모양이다. 젊을 때는 주방 일에 손도 안 대시던 아빠도 다 늙어 엄마와 함께 주방에서 칼질을 같이 하셨다고 한다. 부모님의 내리사랑을 어찌 다 이해할 수 있으랴.

지난번 꿀 값을 받은 게 마음에 걸리셨던 엄마는 결국 꿀 한통을 더 구매해서 인삼까지 다져 넣으셨다. 돈을 드리려고 하니 인상을 빡 쓰신다. 엄마의 사랑을 어떻게 돈으로 계산할 수 있겠는가. 이 겨울 아이들 약으로 잘 먹이겠다고 인사를 하고 염치없이 인삼 꿀 절임을 받아 왔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영웅이, 가인이 먹으라고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셨어. 매일 한 숟가락씩 먹자."

이제 본인은 어른이라고 큰소리치는 사춘기 오빠는 쓰다는 말 한마디 없이 꿀꺽 받아먹는다.

"쓰지?" 하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하면서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귀여운 녀석.

"엄마~ 너무 써요. 다시는 먹고 싶지 않아요" 둘째 딸내미의 입에서 어릴 적 내가 했단 말이 그대로 나온다. 알지, 엄마도 알아. 엄마도 어릴 때는 정말 먹기 싫었거든. 어릴 적 나를 마주하는 거 같아 귀엽기만 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들 잘 먹이고 있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다. 이 추운 겨울 두 분의 건강은 어떠신지, 어떻게 지내시는지 살뜰히 챙겨야 하는데 오히려 엄마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엄마는 마흔여섯이나 먹은 막내딸이 회사도 다니고 살림도 해야 해서 여간 안쓰러운 게 아닌 모양이다. 밥 잘 챙겨 먹어라, 옷 단단히 입고 다녀라, 마스크 쓰고 다녀라, 물 많이 마셔라. 잔소리가 끝이 없다. 엄마에게 아직도 나는 마흔여섯이 아닌 여섯 살 꼬마인가 보다.

"인삼 꿀 절임 애들만 먹이지 말고, 김서방이랑 너도 매일 한 숟가락씩 꼭 먹어. 알았지?"

"어... 엄마, 나중에 또 전화드릴게" 

눈물이 맺히고 목이 메어 서둘러 전화를 끊어버렸다.

엄마의 육아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엄마는 아직도 나를 키우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언제쯤 엄마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을까. 엄마아빠의 정성이 가득 담긴 인삼 꿀 절임 차 한잔을 마시며 부모님의 포근함을 느껴본다.


아빠, 엄마 그리고 엄마 배 속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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