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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앤글 Nov 23. 2023

워킹맘이라 미안하다

"아~네, 선생님. 제가 병원에 데려갈게요.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창 근무 중인 오전 10시. 아이의 학교 보건실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5학년 첫째가 열이 38도라서 아무래도 조퇴를 시켜야 할 거 같다 하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머리도 아프고 배도 아프다는 아이에게 백초시럽만 먹이고 출근을 했다. 세심히 챙기지 못해 미안한 마음 가득이다.


"실장님, 아이가 열이 난데요. 병원에 데려갔다 올게요."

내 새끼가 아프다. 눈치코치 볼 것 없이 허락이 아닌 통보를 하고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평상시 학교 행사에는 남편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지만 아이가 아플 때는 남편을 보내는 것보다 내가 달려가야 마음이 편하다. 직장에서 집까지 지하철 한 번 갈아타고 편도 40분. 거리상으로도 내가 더 가까우니 남편에게 따로 연락은 하지 않는다. 걱정이 많은 남편은 아이 아프다는 소리에 전전긍긍할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다섯 살 때까지 잔병치레가 많고 그 이후는 면역력이 길러져서인지 아픈 일이 많이 없다. 독감이나 감기정도 걸리고 장염도 어릴 때처럼 자주 걸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훌쩍 큰 녀석이 열이 나고 아프다고 하면 어미는 안쓰러운 마음 가득하다.

"백초시럽 먹고 학교에 가. 아프면 조퇴하고 엄마한테 전화해."

집에서 먼저 나가는 야속한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이는 얼마나 쓸쓸했을까. 아플 때 챙겨주는 사람 없으면 어른도 서러운데. 살뜰히 챙기지 못해 미안하다. 바쁘게 출근하는 엄마라 너무 미안하다.


언제 이리 컸누


아이가 세 살 때부터 다녔던 친절하신 이비인후과 선생님이 진료를 봐주신다. 미열에 목이 붓고 콧물도 많이 나니, 내일까지 상태를 보고 독감검사 여부를 결정하자 하신다. 일단 한시름 놓았다. 독감과 감기가 유행이니 물 자주 마시고 푹 쉬라는 처방을 받았다.


오랜만에 함께하는 점심


아픈 아이는 전복죽, 오후에 힘내서 일해야 하는 엄마는 솥비빔밥을 주문했다. 아이와 오랜만에 함께 하는 평일 점심이다. 정성스럽게 죽 한 그릇 끓여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꼭꼭 씹어 먹으라고 장조림을 숟가락에 얹어준다.


어릴 적에 감기라도 걸리면 엄마는 동네슈퍼에서 백도가 들어 있는 깡통을 사 오셨다. 밥그릇에 백도와 달달한 국물을 담아 숟가락으로 잘라서 한 입 먹여주셨는데, 그게 그렇게 달고 맛있었다. 아플 때만 먹을 수 있던 엄마의 백도. 지금도 아프면 엄마가 떠 먹여주시던 백도가 생각난다.

내 아이는 그런 기억이 있을까? 아플 때 엄마가 먹여주는 특별한 음식도 없고, 엄마는 회사에 가고 집에서 혼자 이불 뒤집어쓰고 자는 거밖에 할 게 없다. 이것도 미안하다. 워킹맘이라 미안한 거 투성이다.


집에 들어가 약을 챙겨 먹이고 조금 앉아 있다 누워 라고 당부를 했다. 옷을 갈아입는 아이를 빤히 바라보다 다 큰 녀석을 안아 주었다. 아이를 고쳐주실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아이도 나도 "아멘."

"아들, 엄마가 이렇게 와서 병원도 같이 가고, 점심도 같이 먹고 하니 좋지?"

"뭐, 나쁘지는 않네요"

사춘기 아들에게서 "엄마가 있어서 너무 좋아요"라고 하는 둘째 딸의 반응을 기다린 건 아니지만, 사춘기 아들의 나쁘지 않다는 건... 뭐 나름 괜찮네. 말 그대로 나쁘지 않은 반응이다.

집에서 쓸쓸히 있을 아들에게 미안하지만 다시 회사로 발길을 돌린다. 곁에서 이마도 짚어주고, 마실 물도 떠다 주고 더 살뜰히 살피면 아이의 감기가 빨리 낫지 않을까? 워킹맘인 엄마는 미안한 마음 가득 안고 회사로 간다.


아프고 나면 한 뼘 더 자라겠지. 아플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엄마지만 너의 마음이 아플 때는 함께 하는 엄마가 되어줄게. 엄마가 워킹맘이라 미안해. 우리 주어진 현실에 마음 아파 하기보다 이 상황을 감사로 지내보자. 잘 자라주어 고맙고, 아프다고 잠시 엄마 어깨에 기대주어 고마워. 사랑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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