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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성의 불량이 Oct 31. 2023

학교를 보냈더니 타짜가 됐다.

대안학교 다니는 아이와 가족의 에피소드

  손은 눈보다 빠르다. 걸리면 안 된다. TV를 큼지막하게 틀어 놓은 건 신의 한 수였다. 정신없이 랩을 하는  예쁜 고딩래퍼 여자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한 발치 앞에 심사위원을 주시하고 있다.

 랩이 고조되는 만큼 심박수가 올르는 건 TV 속 래퍼만이 아니다. 또라이가 TV에 눈이 간 사이 화투 패 중 한 장을 옆으로 던졌고, 담요 위라 소리가 나지 않을 거라 생각한 화투는 둔턱 한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다행히 또라이는 눈치채지 못했다. 이제 화투 한 장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걱정이다. 연기도 못하고 손이 느린 내편이 인상을 쓴다. 표정엔 ‘어쩌라고’라는 표정이 역력하지만 다행히 또라이가 떠야 하는 패 위에 화투를 잘 얹어 놓는다.  TV에서 나오는 리듬에 고개로 박자를 맞추던 그가 눈을 돌려 화투판을 다시 주시한다.

 자기 차례가 된 또라이는 양 옆으로 눈치를 보고는 잘 안 풀린다는 듯 한숨을 쉬며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자기가 갖은것 중에 가장 쭉쟁이를 내놓는다.

 이미 고를 한번 한 탓에 이번에 점수를 내지 못하면 다른 패자가 줘야 할 판돈까지 자기가 줘야 하는 ‘독박’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닥으로 버리듯 한 장을 던지고는 패를 뒤집는다. 순간 또라이의 표정이 환해진다. 똥쌍피를 건진 또라이는 고등래퍼에서 심사위원에게 합격이라는 말을 들은 아이처럼 입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아빠는 피박, 십육 점이니까 그럼 삼천이백 원, 외상이 이미 팔천 원 있으니까 이제 만 원짜리 꺼내시지? 엄마는 천육백 원”

 “바보야 너 고 한번 했잖아, 그리고 십짜리도 다섯 장이니까 일점 더해야 하고, 그러니까 아빠는 삼천육백 원이고 엄마는 천팔백 원이야”              

이기긴 했으나 점수계산이 서툴다.

 아직 고스톱에서 점수 계산하는 것도 서툴러서 다시 계산해줘야 한다. “그래도 뭐 이백 원 정도는 깎아줘도 돼, 오늘 돈 많이 벌었거든” 이렇게 말하며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번 있는 일주일 동안의 가정학습 기간에 집에 왔다.

학교에서 하는 프로젝트 수업 마지막 페미니즘 체험학습에서 형, 누나들로부터 놀이로 고스톱을 배웠다며 용돈을 벌겠다고 고스톱을 치자고 호기롭게 시작한 고스톱은 단 몇 판 만에 전 재산 이천 원을 다 잃어 갈 때쯤 내가 아내에게 눈치를 주고, 또라이는 눈으로 엄마에게 욕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시작된 아내와 나의 작전은 성공한 듯하다.

 돈을 따는 게 재미있는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다가 아이스크림을 먹자는 말에 선심 쓰듯 자기가 가져오겠다며 냉장고로 걸어갔다.

 이만 원이 좀 넘는 돈을 따봐야 어차피 며칠 동안 피시방에 가서 다 써버릴 것이다. 그래도 어떠랴 중학생 아들이 엄마와 아빠와 이렇게 놀이를 하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은가?

화투에 침을 입김을 불어넣고 이마에 붙인다.

 우리 또라이는 일반학교가 아닌 충남 금산에 간디중학교라는 기숙형 비인가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다.  

 초등학교 내내 운동만 하던 아이는 중학교 진학을 준비하던 중에 감독과의 갈등과 더불어 개인 갈등이 겹치며 힘들어하다가 결국은 좋아하고 잘하던 야구를 아이폰과 바꿔먹고는 아빠의 권유로 간디학교를 갔다.

 지금과 달리 대안학교는 일반학교에 적응 못하거나 문제가 있는 학생들이 가는 곳이거나 부유층 자녀들이 다니는 일명 황제스쿨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관심 있는 부모님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 꺼라 더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다.

 비인가라 국영수가 없고, 그저 하고 싶은 학습은 자기가 정해서 하며 된다. 심지어 그 아이만을 위해 선생님을 따로 붙여주고 있는데 그렇다고 다른 건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 지구를 위한 시간, 명상, 에세이, 에포크 등 필수과목을 꼭 해야 한다.

 아이의 진학을 고민하며 몇 번을 되뇌었던 말이 있다.


  “나의 불안을 아이에게 투영하지 말자”

  “지금 행복해지는 방법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   

   

  집에 오면 종일 쓰러져 잠을 잔다. 기숙형 대안학교의 가장 힘든 점이 이름에도 있듯이 아마도 기숙사 생활일 것이다. 집에서는 모두 개인방에서 혼자 자고 개인 공간이 있던 아이들이라 아무리 친해도 24시간 붙어있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크고 작은 다툼도 있고, 대체로 여유 있게 운영되고, 강제되거나 낙제는 없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학교에서 일정에 맞추는 힘든 학교 생활에도 요즘 또라이는 “요즘 어때?” 하고 묻는 아빠의 물음에 전혀 고민 없이 이렇게 대답한다.   

  

“요즘 많이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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