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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은채 Dec 11. 2023

원형탈모와의 결별(수술 후 이야기)

돈 쓴 보람이 있네.

 수술당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출근 후 일을 했다. 수술을 앞둔 걱정 두려움 설렘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그저 수술시간을 맞추기 위해 일에 집중을 했다. 혹여 주문착오 또는 배송실수라도 일어나면 수습을 하느라 수술시간을 맞추지 못할까 봐 초집중을 했다. 금요일 오후 주방스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신랑과 이른 퇴근을 했다.

퇴근시간과 맞물려 서울 한복판 도로 위는 마치 주차장 같았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으로 긴장은 했지만 만성피로를 호소하던 나는 긴장을 뒤로하고 잠이 들었다.


머리카락에 대한 스트레스도 만성피로에는 두 손을 들었다. 비어있는 머리카락의 숲을 발견한 날로부터 보름도 지나지 않았을 때다. 2주간은 땅 위에  두발 붙이고 걷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머리만 보였다.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머리부터 시선이 갔다. 머리숱이 없는 사람과 스치면 마음속으로 위로를 건넸다. 머리숱이 많은 내 또래의 여성이 지나가면 유전인지 관리 덕분인지 궁금해 말이라도 건네고 싶었다. 풍성한 머리카락과 빈땅 없는 무성한 머리카락의 숲을 얻을 수 있다면 내신체의 다른 장점을 뭐라도 내어줄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어차피 다른 신체의 장점도 없긴 하다. 줄 것 없지만 뭔가 내어주고라도 머리카락을 꼭 얻고 싶었다. 돈과 바꿀 수 있는 모발이식수술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수술 전 간호사 선생님의 안내전화가 병원도착할 즈음 생각났다. 수술복에서 사복으로 환복 하는 중 머리의 피가 옷에 묻을 수 있으니 단추가 있는 옷을 준비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잊고 있었지만 다행히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대중교통이용 시 다른 이들의 시선이 신경쓰일수 있으니 모자 달린 후드티를 입으라는 안내도 있었다. 다행히 신랑과 함께 차로 이동해서 그 부분도 문제없다는 대화를 나누며 도착했다. 주차장은 만차였고 타워 주차 이용가능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늦지 않기 위해 "나 먼저 올라갈게~" 라며 혼자 병원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는 모발이식 수술전후 사진을 보니 수술이 실감이 났고 가슴이 콩닥콩닥 거렸다. 병원문을 열고 들어가니 대기하고 있던 상담코디네이터가 맞아주신다.

"오늘 수술이신 윤은채 님 맞으시죠? 수술복으로 일단 환복 할게요~수술 끝나고 회복실에 계실 거예요~~ 환복 끝나면 말씀해 주세요~"


안내를 듣고 수술복을 입는데 콩닥거림의 비트가 더 빨라졌다. 환복을 하고 호출을 했다. 아직 신랑은 오지 않았다. 타워주차를 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지? 아? 우리 차는 SUV라 타워주차가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압구정에서는 주차할 곳을 찾는 게 대단히 어려운가 보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수술실로 들어가실게요~"라는 안내를 받았다. 큰 수술도 아닌데 수술실에 막상 혼자 들어가려니 손에 땀이 나고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수술실을 들어가니 오른쪽에  3명의 간호사선생님이 과학실 실험실에서 보았던 현미경을 앞에 하나씩 두고 앉아계신다. 모낭을 채취하는 분들인 것 같다. 3 명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친절한 눈빛은 아니다. 그저 누군지 얼굴을 확인하는 정도의 시선이었다.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를 하기도 전에  안무를 맞춘 듯 고개를 돌려 인사할 타이밍을 놓쳤다. 그들 역시 인사를 할 생각도 받을 생각도 없어 보이기는 했다. 왼쪽에는 수술을 준비 중인 간호사 선생님이 한 분 더 계셨고 차트를 보고 있는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지난 상담 때 의사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기에 첫 만남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머리를 책임지고 수술해 주실 의사 선생님을 수술당일날 만나다니. 나... 잘한 거 맞겠지?? 불안함이 엄습했다.


수술대옆에  등받이가 없는 의자 두 개가 놓여있었고 앉아서 대기하라는 멘트를 해주시고 수술실까지 안내해 준 코디네이터샘은 수술실문을 닫고 나갔다. 1대 5. 나는 혼자 여기 이들은 5명. 나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게 되면 신랑에게 잘 전달이 되려나?? 쓸데없는 걱정이 들었다. 출산 때 의료사고가 있었던 경험이 떠오르며 수술실의 냉기가 더 서늘하게 느껴졌다. 머리카락 없이 그냥 살걸 그랬나? 수술실 분위기 왜 이렇게 무섭지? 라며 공포감에 휩싸여있었다. 이미 수많은 수술의 경험이 있는 나였지만 맨 정신에 덩그러니 앉아있고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그 짧은 3분의 적막이 나를 더 얼어붙게 만들었다. 방금 전 수술실을 안내해 준 코디네이터가 다시 와주길 바랐다. 신랑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다. 차트 확인을 마친 의사 선생님은 내 앞에 비어있는 의자에 앉았다. 나의 무릎과 의사 선생님의 무릎이 닿을락 말락 할 만큼 가까웠다. 한 손에는 미술시간에 사용했던 미술연필이 들려있었다. 간호사선생님이 거울을 들고 내 앞으로 왔다. 원형탈모라 딱히 수술부위를 표시하거나 그릴 것이 없다고 판단하셨는지 수술복 포켓에 미술연필을 다시 집어넣으신다. 이번에는 볼펜을 꺼내어 차트에 나의 두피모양을 그리시며 수술진행사항을 안내해 주셨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은 이 수술실에 있는 5 인 중 가장 친절한 눈빛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미남형이었다. 긴장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만성피로의 단점은 시도 때도 없이 잠이온 다는 것이다. 5초 전까지만 해도 불안하고 무서웠는데 훈남 의사 선생님의 외모 덕분인지 친절한 눈빛 덕분인지 그 와중에 눈이 감긴다. 아직 마취도 무엇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눈꺼풀이 시야를 가리며 잠시 눈에 블라인드가 내려진다. 나는 왜 이 와중에 졸리지? 자면 진짜 이상한 애 아니야? 수술실에서 졸음이 온다고?? 나 왜 이래? 아 근데 너무 눈이 감긴다....

"이쪽으로 오세요" 희미하게 들린다.. 이쪽으로 오세요! 방금 전보다 목소리 톤이 조금 더 올라가 있었고 크게 들리는 것 같다. 윤! 은! 채! 님! 이쪽으로 오세요!! 짜증이 한껏 느껴지는 말투가 너무 가까이 들렸고 앉아서 잠이든 나를 의식했다. 미친 거다!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피곤해서"라는 말과 함께 수술대위에 올라가 누웠다. 천장을 보고 누웠는데 간호사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엎드리라고 한다. 센스 없고 어이없는 나의 행동에 민망했고 수술을 당장이라도 물리고 싶었다.

불친절한 사람들을 만나면 조금만 더 친절하게 이야기해 주세요라고 말을 하는 편이다. 그게 어디든 그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화를 내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웃으며 그렇게 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병원 원무과의 직원이 쌀쌀맞으면 "친절하게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주민센터의 공무원이 너무 불친절하면 민원인에게 친절하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눈을 보며 웃으며 말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 수술방에서는 입도 뻥긋할 수가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앉아서 잠이 든 내가 어이가 없었다.

엎드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그 또한 공포였다. 마취할게요 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내 입에서 방금 전 그 무서웠던 간호사선생님에게 고개를 돌려 다급하게 했던 말이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 저... 손 좀 잡아주세요~ "  쌀쌀맞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눈빛. 친절함을 찾기에는 매우 무리가 있는 목소리를 유지하는 간호사선생님에게 손을 잡아달라니. 무섭긴 무서웠나 보다. 더 놀라운 건 간호사선생님은 이런 일이 많이 있었는지 굉장히 무덤덤하게 손에 꼭 쥘 수 있는 사이즈의 작은 인형 하나를 나의 손에 쥐어주었다. 수많은 수술환자들이 쥐었음을 알 수 있는 굉장히 꼬질꼬질한 인형이었다. 긴장 시 무언가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긴장완화가 되는 경험을 처음 한 순간이다.

"따끔 합니다. 따끔따끔따끔따끔따끔따끔따끔.........................................
엉덩이 주사를 맞을 때  따끔해요 라는 말과 함께 주사를 놓아주는 간호사선생님들이 많이 계신다.

대부분 주삿바늘이 나의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찰나와 따끔이라는 말이 시간적으로 일치한다.
놀라지 않으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딱 한번 따끔하니 괜찮다는 위로의 말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 수술방 간호사선생님은 나를 위해 놀라지 말라고 따끔하다고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수술실에서의 매뉴얼일 뿐이다. 마취주사는 의사 선생님이 놓아주고 계셨고 간호사선생님은 머리카락을 잡아주고 있었다. 바늘이 나를 찌르는 타이밍과 엇박자로 말한다. 바늘이 나의 두피를 찌르고 나면 따끔하다고 말한다. 게다가 지금까지 다른 곳에서 들었던 "따끔해요~"라는 멘트에는 감정이 실려있었다.

감정이 없는 따끔의 랩은 나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눈썹문신을 한 적이 있는데 두피에 문신을 하면 이런 통증이겠구나 싶은 통증이다. 치과에서 잇몸에 마취주사를 놓는 것 같은 통증이다.

"따끔 합니다. 따끔따끔따끔따끔따끔따끔따끔......................................... 따아금 따아금 따아금

점점 목소리는 작아지고 호흡이 모자라서 그런지 솔에서 도로 낮아진 음이다. 귀찮은데 억지로 랩을 하시는듯하다.

따아금 따아금 따아금.......... 따아금 따아금 따아금따아금 따아금 따아금..........................

마취가 끝나고 갑자기 클래식음악이 흘러나온다. 국소마취인데 다시 졸음이 쏟아진다. 수술 내내 잠이 들었다가 깨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1시간이 흘렀고 수술방에서 나오는데 신랑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걱정이 되어서라기보다 마침 화장실을 다녀오는 중이었다. 신랑을 보는데 왈칵 눈물이 나왔다. 어린이집에서 하루종일 잘 놀다가 하원할 때 엄마를 보면 갑자기 우는 아이들이 있다. 마치 그런 상황이었다. 수술도중 졸았던 사람이 수술 후 나와 울다니. 큰 수술도 아니었고 고작 머리 심는 수술이 끝나고 나와 우는 나의 모습이 코미디라는 것을 알면서도 신랑을 보니 눈물이 나왔다. 수술을 혼자 하러 온다는 걸 신랑이 굳이 같이 온 것이었는데 혼자 왔으면 어쩔뻔했나 싶었다.

https://brunch.co.kr/@pentacles/28


 

3000모가 목표라 3500모를 심었다는 의사 선생님의 설명이 있었다. 그 말인 즉 500모는 빠진다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 설명대로 머리카락이 모두 생착되지 않았고 일주일 동안 빠지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끔찍하게 아까웠다. 일주일 동안은 얼굴이 부울수 있으니 염분이 있는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하셨지만 이 정도쯤이야 라는 생각으로 김치찌개를 먹었고 얼굴이 팅팅 붓는 일도 있었다. 3일간은 머리를 감을 수가 없어서 금. 토. 일 3일간 머리를 감지 않고 월요일부터 머리를 감았다. 그 부분 때문에  모발이식 수술은 가을이나 겨울에 하는 것이 좋겠다.




5개월 뒤.

뒤통수에서 뽑은 모낭을 심은 부위에서 머리카락이 잘 자라고 있었으며 다른 머리카락들의 길이와 균형을 이루지 못해 애매한 앞머리가 생겨 좀 심난한 상황이 두 달간 지속되었다.
























1년 뒤.

전부 묶을 수 있을 만큼 자라나 있었다. 사진상으로는 원형탈모의 원을 채우주기만 한 듯 보이지만 모발의 풍성함은 이전보다 훨씬 눈에 보일만큼 풍성해졌다.

4년이 지난 현재

모발상태는 매우 흡족한 상황이다. 이전에는 모발이 얇아 머리숱이 더 없어 보여 머리를 묶더라도 아래쪽으로만 묶을 수 있었다. 모발이식수술로 이후로는 머리를 마음껏 좌우 위아래 상관없이 묶을 수 있게 되었다.

1년에 한 번 미용실에서 8000원을 쓰던 짠순이중 짠순이가 300 만원이라는 거금을 머리에 들였지만 대단히 만족한다.

올가을에는 18년 만에 파마도 해보았다. 거울 속 생기 있어 보이는 모습이 꽤 마음에 든다. 삭발을 제외하고는 여러 헤어스타일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구도 든다.모발이식을 망설이시는 분들 고민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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