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소중한 추억 쌓기
"아휴~ 이제 방학이네요. 또 어떻게 보내죠. ㅠㅠ"
아이 유치원 하원 버스 기다리는 엄마들의 한숨이 차가운 공기를 뜨끈하게 데운다. "그러게요~"하고 동조하고 싶지만, 원체 거짓말은 못하는 성격이라 가만히 듣고는 조용히 입 다문다. 아이들 유치원, 학교 보내고 브런치 먹으며 즐기는 나만의 시간도 물론 좋다. 하지만 아기자기하게 집 꾸미기, 건강하고 보기도 좋은 식단으로 아이들 먹이기 등 주부에게 요구되는 자질들은 전혀 갖추고 있지 않은 내게는 아이들과 집에 같이 있다는 핑계로 청소도 대충 하고, 난장판인 집안꼴도 용서되는 방학이 고마울 따름이다.
혼자 외로이 가던 동네 슈퍼와 마트도 오른쪽엔 큰 아이, 왼쪽엔 작은 아이, 양 쪽에 손 잡고 재잘재잘 이야기 나누며 같이 가서 이것저것 골라보니 지갑은 더 열리지만 든든하다. 혼자 있을 때는 빵 한 조각이나 김밥 한 줄로 대충 때우던 끼니도 아이와 함께 있으니 차려먹게 되니 살은 오를지언정 매 식사 시간이 기다려진다. 매일 조금씩 하던 걷기 운동도 못하지만, 아이와 티라노사우루스, 기가노토사우루스, 스밀로돈, 늑대, 괴물이 되어 몸놀이 30분 하고 나면 숨이 차오르며 대체 운동이 된다. 학기 중에는 도서관 같이 갈 짬도 나지 않아 추천책 위주로 엄마 마음대로 골라오던 책도 같이 가서 직접 고르니 더 열심히 읽는다. 혼자서는 감히 가볼 생각 못했던 공연, 전시회, 박물관 관람, 눈썰매, 스키, 스케이트도 아이 핑계로 함께 즐길 수 있으니 같이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학기 중에는 숙제하느라 동생이랑 엄마랑 같이 일찍 자지 못했던 첫째도 방학 때는 8시 30분이면 같이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다가 같이 잠드니 너무 행복해한다.(그런데 예비 초5가 저녁 8시 30분에 자는 거 말이 됩니까 ㅎㅎ) 아침, 점심, 저녁밥도 재촉하지 않고 여유롭게 먹을 수 있고 책도 많이 읽어주고 덤으로 학기 중에 하지 못했던 교재로 아이 공부도 양껏 시키며 엄마 욕심도 부려보니 이 또한 좋다. 아이는 엄마표 숙제해야 하는 방학보다 숙제 없는 학교가 더 좋다고 하려나?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이라 그리고 춥다는 핑계로 집 앞에서만 눈놀이 하고 지내다가 며칠 후 ‘아, 방학인데 이러면 안 되지.’하며 정신 차리고 나들이 계획을 세웠다. 무료 눈썰매장 당첨! 대중교통 이용하면 자차보다 배나 더 걸리는 시간이지만 방학 때는 굳이 버스며 지하철이며 같이 타본다. 국민학교 시절 친정엄마와 함께 대학로에 갔었던 90년대 어느 날이 떠오른다. 평소엔 엄마차만 타고 다니다 그날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봤었다. 지하철표를 개찰구 구멍에 밀어 넣었는데 쏘옥 내 표를 가져가더니 앞에서 툭 다시 나오는 그 신기한 첫 경험이 지하철을 탈 때마다 생각난다. 우리 아이들도 훗날 커서 매일 같이 이용할 대중교통일 텐데, 엄마와 함께 거쳐간 지하철 역들 지날 때마다 여기 예전에 엄마랑 같이 와봤는데 하며 추억할 수 있겠지.
혼자 감상에 젖으며 지하철에 올라탔는데 얼마 안 가 둘째가 쉬 마렵다고 종종 댄다. “좀만 참아. 두 정거장만 더 가면 돼.” 개찰구를 빠져나와 급히 화장실로 향한다. 아직 어린 남아라 혼자 보내지는 못하고 여자화장실로 들어가 변기에 앉혔는데 급했는지 다리를 미처 정돈하기도 전에 쏘아버린다. 다 젖어버린 팬티와 바지. 여벌옷도 안 가져왔는데, 시작 전부터 말썽이구나. 집으로 다시 돌아갈까 했지만 첫째가 울상이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가보자. 휴지로 꾹꾹 눌러 좀 말린 뒤 썰매장으로 터덜터덜 걸어간다. 겨울이라 바람도 찬데 엉덩이 젖어 감기는 걸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과는 다르게 볼멘소리가 튀어나온다. 차디 찬 바람과 친구 맺은 쌩한 분위기 속에 걷다가 마주친 너른 광장과 썰매장. 아이들도 나도 같이 "우와!" 하며 다시 가슴이 뛴다. 겁돌이 둘째는 올라가서는 안 탄다고 울상으로 버티더니, 젤리 사준다는 유혹에 넘어가 용기 내 썰매튜브에 올라탄다. 한번 내려가보더니 또 타겠단다. "거봐! 엄마가 뭐든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고 하지 말랬지? 용기 내서 해보면 되는 거야! " 연설 늘어놓으며 계단을 수십 번 왕복한다.
무려 세 타임이나 타고 녹초가 되어 지하철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배가 고파서 급히 이른 저녁 사 먹고 지하철에 올라탔더니 이건 10년 전에나 경험해 봤던 지옥철이다. 환승하는데 떠밀리듯이 걸어가고 문은 닫히려고 하는데 앞으로 꽉꽉 밀어대는 사람들을 보고 아이들은 어안이 벙벙 내 가슴은 콩닥댄다. 밀려 넘어지지는 않을까, 꽉 찬 공간에서 숨은 잘 쉬어질까 걱정하며 아이 둘을 꽉 잡는다. 다음 역에서 사람들 많이 내릴 거야. 조금만 더 버티자. 겨우 좌석 근처 앞으로 옮겨갔는데 고마우신 시민분들이 아이들 앉으라고 자리를 내어주신다. 아, 아직 따뜻한 세상이구나.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엄마, 오늘 진~짜 재미있었어! 또 가자! 근데 지하철은 다시는 안 타고 싶어." 한다. 대중교통 이용하며 세상 구경 시켜주고 추억 한 스푼 얹으려고 했던 엄마의 의도는 실패작이 된 것 같지만, 그래도 먼 훗날 직장인이 되어 출퇴근 시간 지옥철을 다시 경험할 때 엄마가 꼬옥 잡아주었던 두 손, 자리 내어주던 따뜻한 어른들의 마음을 기억하며 힘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만큼 살아 보니 아이들을 키우는 시간은 정말 잠깐이더라. 인생에 그토록 재미있고 보람찬 시간은 또다시 오지 않는 것 같더라. 그러니 그렇게 비장한 자세를 잡지 말고, 신경을 곤두세우지 말고, 마음 편하게, 쉽게, 재미있게 그 일을 즐겨라.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 박혜란> 中
내게 주어진 잠깐의 소중한 시간이다. 아이들 커서 나중에는 엄마랑 같이 안 놀아준다고 서운함 느낄 날이 곧 올 것만 같아서 벌써 아쉽다. 엄마 품이 최고일 때 더 많이 안아주고 아껴주고 사랑하련다.
여러분들의 방학은 어떠신가요? 오늘은 비장하게 않게 아이들과 함께 여유 부리며 어떤 추억을 쌓을까 고민해 보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