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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레나 Nov 08. 2024

너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줄게!

핑크뮬리 같은 인간관계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끄적거린 지 오랜만이다. 혹시나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근황을 전하자면 작년보다 일이 줄어 출근하는 날은 적어졌지만, 또 다른 모임들로 분주했다. 둘째 아이 유치원 운영위원회 일로 유치원에 드나드는 일도 많아지고, 동네 엄마들과의 모임도 생겼다. 진짜 브런치를 하는 날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브런치스토리와는 멀어졌다. 그럼에도 틈틈이 들어와 구독한 분들의 글은 읽었다. 자연스레 끌리는 작가님들이 생기고,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켜주고 계심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덕분에 나도 돌아올 곳이 있다는 든든한 느낌 때문이랄까.


사람들 앞에 서서 발표하는 것도 좋아하고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는데 요즘엔 혼자 있는 게 더 편하다. 가끔 끊기는 대화의 어색함을 무마하고자 머릿속으로 재빨리 다른 토픽을 생각해 내야 하는 압박감. 셋 이상 모이면 꼭 생기는 누군가의 험담에 나도 모르게 동조하고서 집에 돌아와 하는 후회. 그래서인가 아무 일 없는 날에는 더더욱 혼자만의 시간이 소중하다.


혼자 먹는 브런치가 더 마음 편하다


세월은 나이대로 속도가 느껴진다는데, 2024년은 유독 더 빨리 시속 400km 속도로 지나간 것 같다. 유난히 길었던 폭염 끝 뒤늦게 짧게 찾아온 늦가을. 더위가 길었던 탓인지, 아니면 추위가 늦게 찾아온 탓인지 단풍이 예쁘게 물들지는 않은 느낌이다. 그나마 가까운 곳에 핑크뮬리가 예쁘게 폈다는 소문을 듣고 가보기로 했다. 주말에는 출차하는데만 한 시간씩 걸린다기에 평일을 공략했다. 혼자 가기는 뻘쭘하고, 사람 만나 이야기 쥐어 짜내며 밥 먹을 에너지도 없어서 아이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학원은 안 다녀도 하교 후 매일 하는 공부 루틴이 있는데 하루쯤은 일탈을 감행해도 되겠지. 이런 날도 내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더 급해진다. 하교 후 거실 식탁에 같이 앉아 수학문제집 풀고 있는 큰 아이에게 "우리 지금 핑크뮬리 보러 갈까?" 하니 "응? 갑자기?" 하며 놀란다. "이제 끝물이래. 빨리 보러 가야 해. 주말 되면 늦어." 재촉하며 유치원에서 둘째를 픽업해 오후 세시 반 공원에 도착했다. 자연 감상하는 거에 그다지 흥미 없는 아이들인데, 평일 나들이가 신났던 건지, 다소 쌀쌀해졌지만 맑은 날씨가 한 몫했던 것인지, 이리저리 귀여운 포즈를 취하며 사진 찍고 풍경을 감상하는 아이들이 귀엽다. 그리고 가슴이 벅차다. 엄마랑 같이 놀러 와줘서 고마워. 엄마는 너희들과 같이 있을 때가 제일 마음 편하고 좋다. 제발 천천히 크거라......


핑크뮬리를 유심히 살펴보던 아이가 말한다. "가까이서 보면 전혀 핑크색이 아닌데? 안 예뻐. 근데 멀리서 보면 왜 핑크빛이 나고 왜 이렇게 예쁜 거지?"


인간관계 또한 핑크뮬리와 같은 게 아닐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예의를 지키면서 만나야 좋고 예뻐 보이는 법. 가까이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단점 없는 인간이 어디 있으랴. 유일하게 그 단점마저도 사랑스럽게 보이는 마법은 내리사랑 자식에게만 생기는 거 아닐까.


가까이 보면 허여멀건한 잡초 같은 풀인데 멀리서 보면 핑크핑크 예뻐 보이는 마법 같은 핑크뮬리




밤에 같이 누워 잠드려는데 둘째가 속상했던 마음을 털어놓는다. "오늘 숲 체험 갈 때 서우한테 같이 버스 짝꿍하자고 했는데 그냥 가버렸어. 그래서 혼자 앉았어." 버스에 혼자 오도카니 앉아 외롭게 갔을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다. "아이고, 좋아하는 친구가 짝꿍 안 해줘서 너무 속상했겠다. 그래도 너무 슬퍼하지 마. 엄마가 윤호 best friend가 되어줄게! 엄마가 제일 친한 친구 하면 되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밥하고 있는 내게 아이가 삐죽 뻗친 머리로 눈 비비며 다가와 안기며 말한다. "제일 친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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