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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레나 Dec 07. 2023

교실에서 사랑받는 아이

학년 말에 남기는 소회

중학교 3학년 2학기 기말고사는 11월 초에 마무리된다. 고교 입시를 위한 성적 산출이 일찍 필요하기에 아마 대부분의 학교에서 그럴 것이다. 진도도, 시험도 다 끝난 시기. 수업시간에 들어가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팝송을 준비했다. 내 시절 내 취향 휘트니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이나 마이클잭슨의 ’Heal the world’를 할까 하다가 학생들에게 추천받아서 최신곡으로 준비해 본다. 엘리멘탈 주제곡인 <Steal the show>. 올해 수능 영어영역에서 ‘The winner-takes-all’ 관련 지시문이 나온 거 아냐며 팝송도 중요 표현들 배우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팝송 수업을 시작한다.



선생님들은 어떤 학생을 좋아할까? 학교에서 선생님께 인정받고 사랑받는 방법은 참으로 간단하고 쉬운 일이다. 선생님들께 사랑받는 제자는 얼굴이 예쁘거나 잘생긴 아이, 부잣집 아이, 공부 잘하는 학생이 아니다. 매 시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선생님과 눈 마주치고, 질문에 대답 잘하며, 수업 분위기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예의 바른 학생이다. 학업 성적은 좋지 않더라도, 이해가 잘 안 되더라도, 열심히 들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학생들이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모르겠다. 이런 아이들을 보며 기분 좋아진 선생님은 내신 시험 관련된 것도 팍팍 가르쳐주실 터이고 선생님의 사랑도 독차지할 테니. 꿩 먹고 알 먹고, 그야말로 일석이조 아닌가. 중학교에서 내신 성적 잘 받기도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지겨운 이야기이겠지만 교과서 잘 읽고, 수업 시간에 잘 들으면 된다. 교과서는 그야말로 석학들이 한 데 모여 정성스레 만든 최고의 교재이고, 수업 중에 교과 선생님들은 시험 관련해서 정말 많은 힌트를 뿌려주신다는 것. 그것도 모르고 학원에만 매달리고 학교 수업에 집중 안 하는 아이들이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고등학교에 입학 후 수능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는 학교 수업만 집중해서는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수능 문제풀이는 교과서를 넘어 독해력, 문해력, 각종 과목의 상식들이 잘 어우러져야 성공할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학교 때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경청하는 습관을 가진 성실한 아이들은 고등학교 가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1년 수업을 마무리하는 이 시기 기억에 남는 학생들을 떠올려본다.

▶  해당 과목 교과서, 선생님이 주신 프린트만 딱 꺼내놓아 책상이 깨끗하다. 필기하면서도 중간중간 선생님과 눈 마주치며 대답도 잘한다. 학교에서 학생의 본분을 지키는 것은 수업에 잘 참여하는 것이다.


▶ 시험 성적은 최하위권. 수업 내용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은데 절대 딴짓은 안 한다. 가끔 멍 때리는 모습을 보여도 이름 부르면 웃으며 집중한다(하는 척한다). 어쩌다 내주는 숙제 검사 하고 있는데 잘 해와서 우와~했더니 그 학생 화장실 간 사이 옆 짝꿍이 일러바친다. “선생님, 얘 제 것 다 베꼈어요.” 그래도 예쁘다. 학교 숙제가 뭐야, 학원 숙제 할 시간도 없는데 하며 배 째라~ 하는 학생보다 선생님 눈치 보며 베껴서라도 해오는 학생이 예쁘지 않은가.


학년 말 이 시기 즈음이면 학생들도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지필평가, 수행평가 점수가 걸려 있던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던 모범생 아이들마저 손을 놓고 다른 짓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성적평가도 끝났으니 고교 선행 및 수능 대비하며 학원 교재 가져와 풀고 있는 그들의 마음이 이해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살이에서 중요한 것은 선행이 아닌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적어도 교사가 영화 틀어주고 자유시간 주는 게 아니라, 혼신의 힘을 다해 수업을 준비해 오고 그 수업이 진행될 때는 말이다.


어느 반에서 팝송 수업을 하다가 딴짓하는 아이들이 자꾸 눈에 띄어 도중에 한 숨을 푹 쉬며 한소리 했다. “얘들아, 아무리 시험이 끝났다고 해도 선생님이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 왔는데 다른 짓 하는 거 너무 하는 거 아니니.” 울컥하는 목소리 겨우 꾹꾹 눌러 수업 마무리하고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데 한 학생이 쫓아온다. “선생님, 노래도 너무 좋고 활동도 재미있어요.” 순간 눈가에 눈물이 맺히려고 한다. 들킬세라 서둘러 고맙다는 말만 하고 급히 발걸음 옮겨 화장실로 들어간다. 벌게진 눈을 파우더로 찍어 누르며 티 안 나는지 거울로 몇 번 확인한 후 겨우 다시 힘내서 다음 수업 교실로 간다. 빈이야 고마워! 네 덕분에 선생님이 열정 다 포기하고 영화나 틀어줄까 하던 마음 다잡을 수 있었어.♡



시험 진도 다 끝났는데도 선생님이 준비한 팝송, 영자신문 수업 등등 누구보다도 열심히 참여하는 몇 안 되는 학생들! 너희들의 앞날을 축복한다. 지금과 같은 태도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언제 어디서나 사랑받고 복 받으며 지낼 거라 확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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