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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레나 Jan 03. 2024

마흔 너머의 변화

"마흔 넘어가니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몇 살 더 먹은 주변 언니들로부터 듣던 말이었다. 울 엄마 또래 분들이 들으시면 콧방귀 뀌시겠지만. 확실히 만 나이 40이 넘어가면서부터 몸의 삐걱 거림이 여기저기서 느껴진다.


1. 성대도 늙는다.

목소리가 변한다니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대학원에서 만학도로 공부 다시 시작한 지인이 학교 행정실에 이것저것 물으려 전화했더니 '자녀분 거 물어보시는 거냐'라고 묻더란다. 40 초반이었는데 말이다. 목소리만으로 자기 나이를 어떻게 가늠하냐며 놀라던 에피소드를 들었다. 목소리 나이도 못 속이는구나. 내 목소리도 예전 같지 않음이 느껴진다. 왕년에 '이소은' 뺨치는 꾀꼬리 목소리로 노래 불렀던 나였는데(자뻑 죄송^^;;), 이제는 매일 아이 동화책 읽어줄 때 나오는 목소리가 질펀하다 못해 걸걸해졌고 삑삑 갈라지기까지 한다. 목감기로, 아니면 오랜만에 수업해서 목에 무리가 갔나 싶었는데 1년 내내 비슷한 거 보면 성대가 늙은 것이다. 매해 마지막 날 우리 아이들에게 올 한 해 어땠냐는 추억의 영상을 남겨놓는데, 몇 년 전 영상들을 돌려보다가 울컥했다. 얼굴뿐 아니라 목소리도 변했구나.


2. 흰머리를 걱정하는 나이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고 올 때마다 머리카락을 보고 가슴이 저민다. 정수리 너머 한 두 개가 아닌 꽤 눈에 띄는 흰 가닥들, 귀 위쪽으로 하얗게 변해가는 머리카락들. 집에 돌아와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고 또 한 번 놀란다. 내 것은 인식 못하고 친구들 것만 걱정하고 있었구나. 서로의 털을 골라주는 원숭이처럼 남편과 돌아가며 흰머리 뽑아주며 한 개에 만원! 장난치며 헛헛한 마음을 달랜다. 염색이라고는 대학생 때 빼고 해 본 적이 없는데, 이제 정기 염색권 사야 할 시기가 온 것인가. 염색 자주 하면 두피가 건조해져 각질도 많이 생기고 여러 가지로 귀찮아진다는데 벌써 두렵다.



3. 거북목 & 오십견

비딱한 자세로 컴퓨터와 핸드폰 사용 15년이 넘어간 시기부터 몸에 슬슬 증상이 나타났다. 범퍼침대에서 아이와 매일 쪼그려 자던 몇 년의 시간도 목이 안 좋아지는데 한몫했으리라. 앞으로 구부정해진 거북목과 일자목 사이 그 어딘가. 컴퓨터나 핸드폰을 평소보다 좀 많이 썼다 싶은 날 다음날이면 어깻죽지가 단단해지며 두통이 시작된다. 근육통 진통제, 파스 몇 개로 일주일 정도 버티면 낫는다. 한 번은 팔 베고 옆으로 누워 잤다가 다음 날 팔이 안 올라가고 바늘이 팔을 찔러대는 듯한 극심한 통증으로 3주 이상 고생했다. 오십견은 오십 대에만 오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 그 후로는 무서워서 차렷자세로 바르게 누워서 잔다.

매일 요가 스트레칭과 걷기 운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한 달에 한 번 오던 통증이 이제는 몇 달에 한 번 오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운동과 담쌓고 살던 몇십 년을 지나 이제는 스스로 운동을 찾게 되니 신기할 따름이다.


4. 손도 두꺼워지다니!

가녀린 상체 때문에 사람들은 삐쩍 마르게 보지만 다들 내 하체와 손을 보고 놀란다. 어릴 땐 거칠고 미운 손이 콤플렉스였다. 그래도 손가락이 그리 두껍지는 않았는데, 식세기 없이 주부생활 10년 차 지난 어느 날 손을 들여다보니 왜 이렇게 두꺼워진 것이냐. 선물로 잔뜩 받은 핸드크림도 유통기한 지나 버린 게 한 바구니인데 이제야 소중하게 손에 핸드크림 발라준다. 프러포즈 때 받은 가짜(ㅠㅠ) 다이아 반지도 겨우 들어가니 더 서글퍼진다. 두꺼워진 손에 맞추려면 2캐럿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과연 내 생애 소장할 수 있을는지. 아, 요즘엔 천연 다이아보다 랩다이아가 유행이라는데 어찌 안될까 ㅎㅎㅎ




군인 아저씨가 진짜 아저씨처럼 보이고, 유모차 끌고 다니던 엄마들이 진짜 아줌마처럼 보이던 그 시기를 지나 이제는 그들이 귀요미 꼬꼬마들로 보이니 나이 꽤 먹었구나 싶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10년 전 제자들의 결혼 소식 속 웨딩사진을 둘러보니 보송보송 아기 같은 풋풋함이 부럽다. 나도 결혼할 때 그렇게 어리게 보였을까. 요즘엔 처진 눈, 탄력 없는 피부가 고스란히 드러나니 사진 찍기가 더 찍기 싫어진다.

아이 유치원 선생님이 입으신 패딩점퍼가 너무 멋스러워 보여 어디서 사셨냐고 여쭤보고 싶은 마음 겨우 꾹 눌러 참았다. 직접 찾고야 말겠다고 결심한 뒤 백화점을 돌아다니던 중 드디어 비슷한 걸 발견했다. 올레! 결혼하고 나를 위한 투자는 거의 안 했는데 이제는 하나 사야 할 것 같다. 때마침 50% 할인 중이다. '그녀는 미스'라는 브랜드 옷인데, 이거 입으면 미스처럼 보일 수 있을까. 뿌듯한 미소 지으며 구매해서 집에 오는데 남편의 전화 띠리링띠리링~ "뭐 샀어? 한도 초과 떴어." 아니, 몽클레어도 아니고 그 가격의 반에 반도 안 하는 거 몇 년 만에 겨우 하나 샀는데 너무 한 거 아니야? 도대체 한도를 얼마로 해둔 거야? 따다다다다......


삐걱대는 마음과 몸들이 서글프지만, 그만큼 더 성숙해지고 세상 보는 눈도 너그러워지길 기대하며 2024년도 힘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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