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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Feb 16. 2024

지구를 지키는 슈퍼 히어로

물티슈 쓰는 제로웨이스터

“도와줘요!”

한마디만 외치면 단숨에 날아와 한손으로 차를 들어 올린다. 초고층 빌딩 꼭대기에 서 있으면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휘젓고, 빨간 망토는 태극기처럼 휘날리며, 거대한 도시가 그의 발 아래로 펼쳐진다. 슈퍼맨은 어릴 적 내 꿈이었다. 언제든 세상을 구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오랫동안 내 안의 영웅은 깨어나지 않았다. 세상을 구하기는커녕, 내 인생 하나 구하는 것도 버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슈퍼 히어로가 갑자기 깨어났으니, 바로 딸아이를 품에 안은 순간이다. 두근거리는 그녀의 작은 심장이 내 가슴을 두드리는 순간, 그녀가 살아갈 이 행성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덮쳤다. 




“○○씨, 우리 한 달에 한 번 정도 바닷가 가서 쓰레기 주울까? 애들은 아빠한테 잠시 맡기고, 우리끼리 바다도 보고, 남이 해주는 맛있는 밥도 먹자.”

해양 쓰레기를 줍는 게 먼저였는지, 남이 해주는 밥을 먹는 게 먼저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환경 동아리 ‘○○○’는 4년 전, 그렇게 시작되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엄마들과 함께 근처 바닷가에 가서 쓰레기를 줍는 것을 시작으로, 환경 도서를 읽고 토론도 하고 환경 관련 교육도 받았다. 환경교육사 및 업사이클링 지도사 자격을 취득하는 구성원도 생기면서, 더 전문적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알리기 시작했다.   



지역 카페나 식당을 직접 방문해서 ‘다회 용기 할인’ 협조를 구하고, 주민들에게 할인이 가능한 매장을 안내했다. 버려진 작업복(지역 특성상 폐기되는 작업복이 많다)을 활용한 굿즈를 만들고, 업사이클링을 이용한 교육키트를 제작해서 활용 수업을 진행했다. 꾸준히 플로깅 및 프레셔스깅을 하며 사람들이 친근하게 환경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했고, 오늘의 환경 실태와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해 교육하는 시간도 가졌다. 2년 차부터는 지역 우수 동아리로 선정되었고, 올해는 ‘○○○’라는 이름으로 ○○공모 사업에 선정되어 무려 4천만 원이라는 돈을 지원을 받아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생명체의 상호 연결성을 이해하는 것에 대해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많은 사람들이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할 예정이다.



“여보,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물티슈 쓰면 안되는 거 아니야?”

“물티슈 안 쓰면, 당장 내 삶이 지속 가능하지 않아.”

나는 물티슈를 사용하는 ‘불완전 환경주의자’의 길을 걷고 있다. 편의성과 양심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환경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현대의 모든 편리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환경을 위해 절대적인 희생을 해야 했다면, 환경 동아리 활동은 시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마음 한편에 환경의 자리를 내어주고, 실행 가능한 작은 실천을 하면 된다. 물티슈 사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손을 씻은 뒤 물기를 털어 낸 후 티슈 한 장으로 손을 닦는다. FSC 마크가 있는 물건을 소비하고, 텀블러와 같은 다회 용기를 사용하며, 육류 소비를 줄이려는 노력이면 충분하다. 평범한 여성들의 작은 발걸음이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듯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환경을 생각하는 작은 노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삶에 다가갈 수 있다. 슈퍼 히어로가 된다는 것은 특별한 힘을 갖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믿는 것을 위해 싸울 용기,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킬 힘, 흔들리지 않는 결의만 있다면 이미 슈퍼 히어로이다.     



“너 참 예쁘다. 추운 날 견디느라 고생했네. 고마워.”

나무나 바다, 하늘을 보면서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바람이 나무 사이로 스쳐 지나가고, 해가 수평선 너머로 지고, 파도가 해안에 부딪히는 모든 순간에 자연의 속삭임이 있다. 난 절대 미치지 않았다. 내 아이가 살아갈 시간이 우려되어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자연은 내게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돌려주었다. 자연과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때면, 깊은 평화가 밀려온다. 내쉬는 안도의 한숨으로 내 안의 상처도 함께 빠져나간다. 자연만이 채울 수 있는 영혼의 무언가가 있다. 




“엄마, J는 통에 물 받아서 샤워한대. 그리고 J엄마는 물티슈도 빨아서 쓴대.”

순간 숨어 있던 히어로를 한 명 더 찾았다는 생각에 마음에 불꽃이 튀었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J엄마, 환경 동아리 활동 같이 하지 않을래? 이번 주에 마침 프레셔스깅도 있어.”

“.... 프레셔스깅이 뭐야?”

알고 보니 그녀는 환경 보호보다는 돈 절약에 더 관심이 많았고, 소득 없이 그저 그녀의 검소함에 감탄하며 통화를 마쳤다. 



환경을 생각하면서도 돈을 절약하는 이중 이점에 대해 교육을 하면, 반응이 폭발적일 것 같다. 비용 절감을 위한 실용적인 팁은 J엄마에게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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