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음 May 18. 2024

사회적 틀을 깨고 나를 드러내는 용기

내 안의 아름다움을 지켜내는 것

눈썹은 양쪽 다 그렸는지, 옷 단추는 제대로 맞춰서 잠갔는지, 스타킹은 신었는지, 방에 불은 다 끄고 나왔는지 확인할 시간도 없다. 일단 딸아이와 엘리베이터 급하게 몸을 실은 후, 한발 느린 정신도 이어 싣는다. 간신히 깊은 숨을 내쉰다. 서둘러 준비하는데도 왜 결국 똑같은 시간에 현관을 나오게 되는지 누가 좀 알려주면 좋겠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답을 찾을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안녕. 요즘 피곤해 보이네. 시험 준비는 잘하고 있어? 지난번에 줬던 과자 너무 맛있더라.”

약속이라도 한 듯, 매일 같은 시간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중고등학생 멤버들이 있다. 아침마다 엘리베이터를 내릴 때까지의 짧은 시간을 이용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토막 같은 대화가 블록처럼 쌓여서, 학업 스트레스에 대한 하소연까지 털어놓은 사이가 되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당장 이 숨 막히는 현실을 탈출할 수 있는 보라카이 해변이 펼쳐지면 좋겠지만, 역시 그럴 리는 없다.


“어깨 펴고, 급식 많이 먹고, 오늘 하루도 잘 보내.”

짧은 인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딸아이 손을 잡고 주차된 곳까지 뛰기 시작한다. 

“헥헥. 후후. 조금만 천천히 가자. 엄마, 13층 언니가 교복 치마를 엄청 짧게 입었어. 화장도 점점 더 진해져. 그래도 돼?”

내 속도를 맞추려 쌕쌕거리는 와중에도 그게 궁금했나 보다. ‘나는 혼이 나가 있었는데, 너는 언니 오빠들을 살필 여유도 있구나.’ 괜한 심술이 난다.  

“너무 짧게 입거나 과하게 화장하고 학교에 가면 안 되지.”

“왜 안돼?”

“....”

“아, 몰라! 일단 빨리 뛰어.”     




출근 후 자리에 앉아, 갓 내린 커피 향을 마신다. 벨벳 같은 액체가 목구멍을 따라 내려가며, 죽어있던 감각을 하나씩 깨우자, 딸아이의 “왜 안돼?”라는 말이 마음에 울려 퍼진다. 『고슴도치 X』라는 책이 떠올랐다. 


『고슴도치 X』는 ‘올’이라는 고슴도치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도시는 가시의 부드러움을 중요시하고 엄격하게 관리하는 곳이다. 그런데 주인공 X는 자신의 뾰족한 가시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간다. ‘올’ 안에는 부드러운 나무와 가시 없는 꽃들만이 존재하고, 뾰족한 장난감은 금지되어 있다. 어느 날 X는 등굣길 가시 검사에서 교장선생님한테 걸려 도서관 청소를 하게 된다. 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을 통해 뾰족한 가시의 가치를 더욱 깨닫게 되고, 자기 가시에 대한 자부심은 더 커진다. 결국 X는 가시를 통제하는 도시를 벗어나 새로운 모험을 떠난다.      


작가가 도시 ‘올’과 고슴도치 ‘X’의 이름에 부여한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도시 ‘올’은 ‘모두, 전부’를 의미하는 ‘ALL’에서 따온 것 같다. 도시에 사는 모든 고슴도치들이 자신의 뾰족한 가시를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살아간다. ‘올’에서는 자신의 개성을 억누르고 숨겨야 한다. 주인공 ‘X’는 이런 상황에 도전하는 고슴도치다. 자신의 뾰족한 가시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도시의 규칙과 관습에 맞선다.


“엄마, 고슴도치 가시는 원래 뾰족한건데, 왜 이런 이상한 법을 만들었어?”

고슴도치의 도시에서 가시 금지령은 이해하기 어려운 규정이다. 책에서는 ‘올’을 안전하고 세련된 도시로 표현하고 있다. 보통 고슴도치의 가시는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지만, ‘올’에서는 그렇게까지 방어가 필요한 곳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다. 아마도 다른 고슴도치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날카로운 가시를 부드럽게 해서, 시민들을 보호하고자 했을 것이다. 또한 서로를 방어하기보다는, 부드러운 가시를 통해,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시는 ‘방어’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 고유한 ‘특성’이다. 타고난 특성을 억압하는 것이 진정한 조화와 연결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다. 진정한 유대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존중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가시를 숨기고 있는 도시에서도 X는 자신의 뾰족한 가시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다수와의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강한 확신이 필요한 일이다. 아마도 X는 어릴 적부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주고 지지해 준 사람을 만났거나, 특별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가시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 같다.


그림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시 안에서는 가시가 보이지 않지만, X의 방 안에는 파인애플 모자와 가시가 있는 장미와 선인장이 있다. X에게는 자신을 탐구하고 수용하고 존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 부모님이 계셨다. X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받아들여지는 공간에서, 자신을 지지해 주는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들의 태도는 X가 자신에 대한 확신을 키우고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내 모습 그대로를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사람들을 통해 자신감이 자라고, 나만의 길을 찾고 표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부모님의 지지와 인정으로, X는 자신의 가치를 찾아 나설 용기를 키웠다.    

 



X가 안전한 '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건, 아마도 자신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올'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이지만, X는 그 안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웠다. 자신을 찾고 더 깊이 알고 싶었던 X는 자유롭게 자신을 더 표현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만 했다. 


진정한 부모란 자녀가 자신을 알고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다. 자녀가 ‘올’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잠재력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어야 한다. 나 역시 딸아이를 향한 지원과 격려가 진정 그녀의 성장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사회적 틀에 얽매이지 않고 딸아이의 관심사와 성향에 더 집중해야겠다. 그녀가 자신의 길을 확신하고 찾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작가는 ‘올’이라는 도시를 통해서, 한 방향으로만 몰아가는 무차별적 사회 풍조와 이러한 사회적 시선에 얽매이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같다. 오늘날 우리는 성공에 대한 일률적인 기준이 존재하고 이를 향해 우리를 한 방향으로 밀어붙이는 사회에 살고 있다. 외모와 자아실현에 대한 기준조차도 편향된 분위기다. 우리는 타인의 긍정적 평가와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개인적 가치와 관심사를 숨기기도 한다. 우리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해도,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에 얽매이는 것은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결국 ‘올’은 외부적인 환경과 우리 내면의 내부적인 환경이 결합 되어 만들어진 도시인 것이다.


X도 ‘올’에서 뾰족한 가시를 추구하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불편하고 위험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올’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가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할 수 있었던 건, 두려움에 맞서는 ‘강한 자기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올’을 벗어나고 싶지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행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두려움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의 불안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자아를 찾고 드러내기 위해서는 주변 세상만 바꾸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외부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내부적인 마음의 환경도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작은 목표부터 시작하여 조금씩 나를 믿어보는 연습을 하며, 나에 대한 믿음을 키워가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의심의 족쇄를 풀어야 한다. 




지나친 화장과 너무 짧은 교복 치마를 규제하는 것도 학생들의 질서와 안전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너무 짧게 입거나 과하게 화장하고 학교에 가면 안 되지.”

라는 내 대답의 태도는 X의 교장선생님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모나 스타일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너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존중하는 데 있음을 전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관찰. 자세히, 오래 보고, 살피는 것. (후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