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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Jun 15. 2024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작은 시작

소통과 공감에서 나오는 윤리적 힘

도서관이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스스로 도서관 문을 열기 어려운 현실이다. 학업과 과제만으로도 잠을 줄여야만 하는 학생들에게 독서는 부담이다. 장기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길 희망하여, 바쁘지 않은 날에는 작은 도서관 이벤트를 열고 있다. 학생들을 도서실로 유인하기 위한 유혹책이다.     


『꽃을 선물할게』라는 책에서 영감을 받은 이벤트는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 두 번이나 운영되었다. 책가방에 읽을 책이 있는 학생들에게 꽃 한 송이를 선물하는 단순한 이벤트이다. 학생들에게 기분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책과 도서실을 홍보하는 목적을 가졌다. 슬로건은 '독서가 네 마음의 정원에 꽃이 피게 할 거야.'였다.




『꽃을 선물할게』는 아침, 점심, 저녁의 세 시점으로 나누어 펼쳐지는 곰과 무당벌레의 이야기이다. 아침 산책 중인 곰에게 거미줄에 걸린 무당벌레가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곰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거절한다. 몇 시간 후, 무당벌레가 있는 곳을 또 지나던 곰을 본 무당벌레는 불쌍한 척하며 곰에게 거짓말을 시도하지만, 곰은 이를 간파하고 다시 외면한다. 저녁이 되어 곰이 다시 그곳을 지나가자, 무당벌레는 곰이 꽃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자신이 진딧물을 잡아 꽃이 만발하게 돕는다고 말하며 마지막으로 도움을 청한다. 곰은 잠시 생각에 잠겼고, 다음 장면에서는 찢긴 거미줄과 적막을 깨는 화가 난 거미의 씩씩대는 소리만 들렸다. 그림책은 봄이 돌아와 만개한 아름다운 꽃들 사이에 곰이 서 있는 곰의 장면으로 끝이 난다.




“저기요, 곰님. 여기요, 여기입니다.”

“죄송하지만 거미가 돌아오기 전에 저를 이 거미줄에서 구해 주실 수 있을까요?”

거미줄에 걸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무당벌레가 곰에게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한다.

“엄마, 살려달라고 하는 게 죄송한 일이야?”

“그러게. 아주 공손한 무당벌레인가 봐.”

무당벌레는 곰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곰의 거부감을 최소화하려고 ‘죄송하지만’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사과해야 하는 무당벌레의 처지는 작고 연약한 존재가 겪는 절박함과 두려움을 생생히 보여준다. 이야기 속 무당벌레는 현실 사회에서 소수자나 약자를 상징하며, 이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해결할 힘이 없기에 강자의 도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무당벌레의 목소리는 작고 미약하지만, 그들이 직면하는 어려움과 절박함은 매우 시급하다. 우리 주변에는 무당벌레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표현하기 힘들어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상황을 이해시키기도 어렵다. 어린이나 노인의 호소가 작다고 해서 그들의 상황이 덜 절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긴급한 대응이 필요한 경우가 더 많다.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게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들이 떠오른다. 이들은 대부분 조용하고 소극적이어서 그들의 고통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고통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지지와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작은 관심과 배려를 통해, 그들의 마음에 희망의 불씨를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절망적이고 무력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설명하며 곰을 설득하려는 무당벌레의 끈질긴 시도는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이 작은 생명체가 보여주는 모습은 우리에게 사회에서 약자와 소수자가 직면하는 어려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거미님은 못된 모기를 잡지만 저는 꽃을 못살게 구는 진딧물을 잡아먹어요.”

무당벌레가 진딧물을 잡아 꽃이 만발하게 돕는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소수자나 약자가 단순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큰 기여를 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약자로 여겨지지만, 각자의 역할과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존재들이다.     


우리는 종종 약자나 소수자의 목소리를 듣고 존중하는 것이 단지 그들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자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들의 존재와 기여를 인정하는 것은 마치 우리 삶에 꽃을 선물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작가는 서로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 우리 사회를 더 따뜻하고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 같다.




거미줄은 보이지 않지만, 작은 무당벌레와 같은 생물들을 포획하는 도구다. 이는 권력자나 권위자가 사회적으로 취약한 이들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고 통제하는 것을 상징한다. 반면 거미는 이러한 권력 구조 안에서 통제력을 가진 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거미줄과 거미는 현실 세계의 권력 구조와 그 안에서 발생하는 억압과 착취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은 종종 눈에 띄지 않는 형태로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거미줄은 우리 주위 곳곳에 얽혀 있다. 그것은 직장에서의 편견이나 교육 기회의 불평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성별, 인종, 경제적 배경에 따라 사람들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일이 여전히 흔하다. 여성이나 소수 인종 출신의 사람들은 승진 기회를 놓치거나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저소득층의 사람들은 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교육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기도 한다. 무당벌레의 이야기는 단순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곰과 무당벌레의 대화는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자주 마주하는 권력과 취약함의 대립을 떠올리게 한다. 곰은 힘과 권력의 상징으로서, 작고 연약한 무당벌레와 대조되는 존재인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 결정권자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나타내다. 그러나 곰은 거미줄에 갇힌 무당벌레의 애원을 듣고도, 자연의 법칙을 들어 도우려 하지 않는다.

“내가 너를 살려 준다면 거미가 굶겠지? 그건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일이야.”

라는 곰의 대답에, 딸아이는 버럭 화를 냈다.

“그냥 무당벌레 도와주기 싫어서 핑계 대는 거 아니야?!”

딸아이는 무당벌레를 돕지 않는 곰이 이해되지 않는 눈치다.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는 곰의   원대한 삶의 철학은 딸아이에게는 그저 핑계로 보일 뿐이다.      


곰의 말은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이기심과 무관심을 드러낸다. 곰이 보여주는 태도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먹는다’는 관념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는 모든 생명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도덕적 원칙과 상반되며, 사회적 연대와 공감을 무시하는 태도이다. 또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먹는다’가 자연의 섭리는 아니다. 자연은 다양한 생물들이 서로 의존하며 생태계를 유지한다. 약한 생물의 무조건적인 희생은 오히려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


이는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약자와 강자가 상호작용하고 서로 지지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건강한 관계와 균형이 유지될 수 있다. 곰은 자신의 이익과 편의를 우선시하면서 사회의 약자를 보호하거나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 책임을 갖지 않는다. 그는 단지 자연의 법칙이라는 핑계를 대고 자신의 이기심을 덮어놓고 있는 것이다.


‘난 그저 자연의 일부이자 방관자. 무리한 부탁은 그만 안녕.’이라는 곰곰의 독백은 그의 태도를 명확히 보여준다. 자연의 법칙에 따르겠다며 무당벌레의 상황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곰의 태도는, 약자의 희생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도 주체적으로 나서지 않는 행동을 정당화하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사랑아, 곰처럼 힘 있는 존재는 그 힘을 어떻게 써야 할까?”

“힘이 없는 사람을 돕는 데 써야지.”

뻔하고 단순한 딸아이의 대답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옳은가? 그들의 행동이 의미를 가질 수 있으려면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필요하다. 우선,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벗어나 다른 이의 감정과 상황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이는 감정적인 이해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시각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려해야 한다.

둘째로, 힘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입장에 서보는 이해를 가져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주변 사회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행동이 어떤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윤리적인 측면에서, 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사회적 정의와 균형을 유지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들은 단순히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정하고 도덕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정의롭게 사용해야 한다. 이는 약자와 강자 사이의 불평등을 줄이고, 모든 이들이 존중받고 평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의미한다. 강자가 되기보다는 보다 공정하고 이해심 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만약 저를 살려 주신다면 다음 해에 수많은 꽃들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무당벌레는 꽃이 만발하게 하는 데 기여하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곰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한다. 과거에는 자신의 목숨만을 구하려는 일방적인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곰의 입장을 이해하고 협력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숲 속에서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두 생명체 간의 소중한 '교감'을 통해, 마침내 무당벌레는 자신의 목숨을 건지게 된다.


무당벌레는 계속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살았을지, 곰은 타인의 입장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았을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둘 다 각자의 삶에서 서로 의미 있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삶의 경험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것이 더 깊이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시작점이 되는 것 같다.




“엄마, 책을 다 읽고 나니까, 앞표지의 꽃 그림이 꼭 거미줄 같아. 그리고 여기 가운데 거미가 숨어있어.”

책을 덮은 후에도 딸아이의 눈에는 여전히 그림책의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다.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고, 다시 표지를 들여다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독서가 네 마음의 정원에 꽃이 피게 할 거야.'라는 도서관 이벤트의 슬로건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그녀의 마음속에서 새롭게 써 내려갈 이야기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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