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도움 없이 일과 육아의 균형을 맞춘다는 것은 모순적 삶의 한가운데로 내몰리는 일이었다. 아파도 참아야 했고, 지쳐도 버텨야 했고, 포기하고 싶어도 일어서야 했다. 달빛어린이병원만 이용할 수 있었고, 아이가 입원하는 동안은 연차를 쓰면서도 출근 직전까지 학교 눈치를 봐야 했다. 시간을 쪼개 썼지만, 휴일은 당연히 없었다.
내 인생의 빛과 같은 아이로 인해 행복하고 또 불행했다. 매일 이름 모를 감정들이 불쑥불쑥 올라왔고, 별안간 눈물이 쏟아질 때도 많았다. 짜증이 폭발할 때마다 아이에게 미안했고, 자책했다. 아이에게 내 모든 걸 주고 싶으면서도, 정작 나를 주고 싶지는 않은, 모순적 삶이 반복됐다.
“엄마, 나 배 아파.”
“갑자기 왜?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걱정이 돼야 하는데, 화가 났다. 하필 왜 지금 아프냐는 말도 안 되는 짜증이 올라왔다. 일요일 밤 9시가 넘었다. 업무와 일과가 우선되는 평일을 보상하기 위해, 주말 내내 ‘완벽한 놀이 파트너’까지 되어주었건만. 어떻게든 아빠의 빈자리를 메꿔보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겨우 씻고 침대에 누울 만큼의 에너지만 남겨 놨건만. 하루 종일 힘을 빼놨으니, 아빠를 그리워할 새도 없이 잠이 들어야지. 왜 이 시간에 배가 아프냐고.
“엄마가 배 마사지해 줄게.”
고작 10분 남짓이지만 진이 다 빠졌다.
“엄마, 근데... 배가 계속 아파.”
마사지한 노력은 간데없이 딸아이는 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순간, 눈물이 왈칵 터졌다. 책임감이란 이름 아래, 깊이 묻어뒀던 피로. 이따금 밀려왔던 외로움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마침내 내 안의 댐이 무너져버렸다. 멈출 수가 없었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물줄기를 손으로 연신 닦아내며, 당황한 딸아이의 눈에 말했다.
“미안해. 다온이 배가 아파서, 병원 데리고 가야 하는데, 엄마가 자꾸 눈물이 난다.”
“엄마, 울어도 돼. 아파서 미안해.”
울먹이는 그녀의 가냘픈 목소리가 온몸을 휘감았다. 그 작은 가슴으로, 내 안에 뒤엉킨 감정의 무게를 어떻게 알아챘을까? 내 목덜미를 감싸안은 두 팔의 미세한 떨림이 심장까지 전해졌다. 목뒤로, 따뜻한 물방울이 떨어졌다.
순간, 모든 감각이 확 깨어났다. 아파서 미안하다니. 내 눈앞에, 그런 깨끗한 존재가 있었다. 심지어, 이토록 깊고 순수하게 나를 사랑하면서. 그녀의 온기는 잠시나마 느꼈던 엄마로서의 굴욕과 수치심을 녹였다. 무너졌던 나를 다시 일으킬 힘이 솟았다. ‘책임감’으론 설명할 수 없는 힘이었다. ‘사랑’이라는 말로도 다 담아낼 수 없는 감정. 단숨에 일어나 자동차 키와 카드를 챙겼다.
“병원 가자. 아픈 건 미안한 게 아니야. 엄마가 미안한 거지.”
응급실에서 진통 주사를 맞았고, 그제야 그녀의 고통이 가라앉았다. 가끔 아이들은 장의 일부가 잠시 멈추는 일이 있다고 한다. 몇 시간 뒤, 다행히 그녀는 다시 까불이 모드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자신을 돌보지 않고서는, 아이도 돌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 자신의 컵에 물을 채워야 타인에게 쏟아부을 물도 있다는 단순한 진리다. 작정하고 이기적인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날의 사건은 내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했다.
육체적으로 지치지 않도록 에너지를 잘 분배해서 일정을 짜고 움직인다. 집에 와서 갑자기 병원에 갈 일이 생겨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일은 없다. 정신적 에너지도 고갈되지 않도록 매일 40분씩 책 읽는 시간을 갖는다. 눈치 100단인 딸아이는 조용히 옆에서 그림을 그리며, 그 시간만큼은 나에게 말 한마디 걸지 않는다. 자연스레 아이도 자기돌봄이 어떤 건지 배워가는 듯하다.
자신의 컵에 물을 채운다는 건, 단지 에너지를 보충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세우고, 키우는 일이다. 아이를 돌보는 것만큼, 나를 돌보는 일도 중요하다. ‘엄마’라는 건 내가 가진 여러 역할 중 하나일 뿐, 그 자체가 ‘나’는 아니니까.
새벽마다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미술이나 요리 클래스에 참여하며 삶의 다른 면을 만난다. 미술관이나 전시회, 공연을 보러 다니며 영감을 얻고, 독서 모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세상을 넓혀간다. 엄마가 아닌 나로서의 모습을 되짚으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의 핵심은 ‘나’라는 진짜 얼굴을 잊지 않는 것이다.
아이를 위해, 무조건적인 헌신만이 좋은 엄마라는 틀 안에 나를 가두지 않기로 했다. 나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더 인내심 있고 이해심 많은 엄마가 되었다. 아이의 말과 행동 뒤에 숨은 진짜 마음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때로는 이기적인 선택이 나를 돌보고, 삶의 균형을 되찾게 해준다.
눈뜨자마자 카페인 충전으로 전투 준비 완료한 엄마들이여, “엄마, 배고파.”라는 말에 “미안해.” 대신, “나도 그래.”라고 대답해 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