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다가오면서 마음이 무겁다. 명절이라는 단어는 한편으로 가족과 함께하는 따뜻한 시간을 떠올리게 하지만, 나에게는 여러 가지 책임과 부담이 더 크게 다가온다. 장녀로서, 그리고 며느리로서 지켜야 할 역할들이 머릿속을 떠돌며 명절 전부터 몸과 마음이 지친다.
나는 장녀로서 딸이 귀한 집에 시집왔다. 장녀라는 책임감과 '딸 노릇'을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10년 넘게 살았다. 친정엄마를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시댁에도 신경을 써야 하니 늘 균형을 맞추는 것이 힘들었다. 우리 집 살림도 엉망인데, 시댁과 친정의 기대를 모두 충족시키려 애쓰다 보니 나는 늘 사서 고생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스스로를 힘들게 하면서도 명절을 앞두고 있는 나를 보며, 다른 사람들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묻곤 한다. 하지만 장녀로 태어난 이상, 나는 당연히 책임감을 느껴야 하고, 그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옥죄어 왔다.
이런 고민은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장녀가 느끼는 책임감이 전 세계적으로 공감받는다고 말한다. 상담심리학자인 리나 바하즈 박사는 "첫째 딸들은 종종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경험하며, 가족 내에서 지도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장녀로서 가족들이 기대하는 바가 크고, 이는 자아를 희생하면서까지 그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자기희생만으로는 내가 나 자신을 지킬 수 없다. 가족의 기대와 나의 삶 사이에서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깨닫고 있다. 명절을 앞둔 이 시점에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가족들에게는 적당한 선을 긋는 것이 정말 이기적인 것일까? 나는 매번 후회하면서도, 이번에는 조금씩 변화해 보려고 한다.
이제는 내가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조금 더 단단해져야 할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