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동생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아침부터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기대감에 설렜다.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고, 축복 가득한 자리에서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식장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온 첫 마디는 나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어머, 너 왜 이렇게 쪘니?"
웃으며 던진 그 말 한마디에, 내 웃음은 굳어버렸다. 속으로는 '역시 이 말을 듣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들으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아팠다. 그래도 처음엔 웃으며 "몸이 좀 안좋아서요..."라고 준비했던 대답을 했다. 하지만 그 대답이 무색하게도, 나를 향한 관심 아닌 관심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혈압이 있는 거 아니야? 살이 쪄서 혈압이 오른 건가?" "식단 좀 조절해봐. 이렇게 가면 큰일 난다." "혹시 갑상선 문제 있는 거 아니야?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들은 내 건강을 걱정하는 척하며 나를 마치 병원에 가야 할 환자처럼 대했다. 나는 그들의 시선과 말투 속에서 스스로를 점점 더 작아지게 느껴진다. 도대체 왜 이렇게 다른 사람의 몸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걸까? 정말 나를 위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들일까? 아니면 그저 남의 삶에 참견하며 우월감을 느끼려는 걸까?
아무도 "힘들지 않니?"라거나 "괜찮아?"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의 감정, 나의 상황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그저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거리에 불과했다. 마치 나는 그들의 대화 속 한 조각 퍼즐일 뿐, 나 자신으로서 존중받지 못한 느낌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이어진 식사 자리에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건 좀 먹어봐. 그래야 살이 빠지지." "그런 걸 먹으니까 살이 찌는 거야."
그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죄인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냥 평범하게 식사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들은 나의 모든 행동을 비난하고 지적하려 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남의 삶에 참견하는 걸 좋아하는 걸까?
마치 삐에로가 웃고 있지만, 그 웃음 뒤에는 슬픔이 가득한 것처럼, 나는 웃으며 그들의 말을 넘기려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깊은 외로움과 슬픔이 차올랐다. 그들은 나를 향해 관심어린 애정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 관심 속에서 홀로 외로웠다. 결혼식이라는 기쁜 날에, 나는 다수의 인사와 대화 속에서 더욱 고립된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오늘의 경험을 곱씹으며 대한민국 사람들의 이러한 문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왜 우리는 타인의 외모나 건강 상태를 너무 쉽게 평가하고,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걸까? 왜 남의 삶에 대해 지나치게 참견하며, 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 걸까?
이러한 현상은 단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화적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최근 몇 년 동안 방송된 여러 TV 프로그램과 신문 기사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특히, '건강 염려증'이나 '외모 지상주의' 같은 주제는 대한민국 사회의 병리적 현상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이 중 한 프로그램에서는 '오지랖'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다른 사람의 삶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행동이 어떻게 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지 다뤘다. 또한, 이와 관련된 기사에서는 우리가 타인의 외모나 건강 상태에 대한 평가를 하기 전에,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먼저 헤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오늘 내가 겪은 일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더 배려하고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진정한 관심이 아닐까? 앞으로 나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오늘의 외로움이, 더 나은 내일의 배려로 이어지길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