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이 지치도록 길어 선선한 가을이 유독 더 반가운 마음이 든다. 주말이 되어 아이들 옷을 모두 꺼내어 옷 정리를 해본다. 해진 옷, 작은 옷, 내년에 한 번 더 입힐 옷들을 나누고 나눠 줄 만한 옷을 골라본다. 이렇게 고르려면 아이들의 패션쇼가 필요하다. 하나씩 옷을 다 꺼내 입어보고 작은지, 흠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 봄에 입었던 옷들이라 몇 개월밖에 안 지났을 건데 아이들이 많이 자랐나 보다. 옷들이 죄다 쫄쫄이가 되어있다. 앞으로도 볼록, 뒤로도 볼록 어떤 옷은 볼록이다 못해 배 위로 올라가 크롭티가 된 옷들도 있다.
옷을 입을 때마다 가족 모두가 배를 부여잡고 웃느라 정신이 없다. 서로 더 웃기려고 작은 옷을 찾느라 경쟁까지 붙는다. 매일 봐서 몰랐나 보다. 항상 반에서 1번, 2번 하는 키들이라 걱정하고 있었는데 우리에게 키성장으로 이런 행복과 웃음의 시간이 있을 줄이야. 감사한 일이다.
버릴 옷들이 산더미
아이들과 산더미 같은 옷을 정리하고 아웃렛으로 가서 가을에 입을 옷을 사기로 했다. 아동도 아니고 청소년도 아닌 애매한 150~160 사이즈의 아이들은 이곳저곳 브랜드를 돌아다니며 이 옷도 입어보고, 저 옷도 입어보며 사고 싶은 옷이 아닌 맞는 옷을 찾기 바빴다. 그런 정신없는 와중에 1호가 슬쩍 가게들 사이로 옷자락을 잡고 나를 데리고 나온다.
"나는 노브랜드 말고 아디다스나 나이키 같은 브랜드 하나면 되는데?"
"이거 노브랜드 아니야. 다 이름이 있잖아. 브랜드가 있는 거라고"
"아무튼 이런 거 말고~"
"한창 그럴 때잖아. 가자, 가!"
"아니, 가격차이가 2배야! 어차피 한 철 입을 건데.."
남편은 한창 그럴 나이의 아이들은 이해하면서 가정경제는 이해하지 못한다. 난들 안 사주고 싶어서 안 사주는 거겠냐고. 괜히 나만 센스 없고 구두쇠 같은 나쁜 엄마로 나쁜 남편에게 입을 삐쭉 내밀어 본다.
1호는 언제 가게를 봐두었는지 바로 앞장서서는 아디다스 매장으로 안내를 한다. 주니어 사이즈가 몇까지 나오는지 확인을 하고 마음 편히 둘러보고 있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신이 나서 적극적으로 이것저것 둘러보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 모습을 보니 많이 컸구나 싶기도 하고, 이제부터 돈이 술술 나가겠구나 싶다.
이제 가을이 오면서 아이들도 더 이상 어리지만은 않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몸도 마음도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이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아이들이 한 뼘씩 자라는 만큼, 우리 가족의 추억도 한 겹씩 쌓여가고 있다. 아디다스 매장에서의 순간도 그렇게 작은 일상 속에서 특별한
기억이 되어 남을 것이다.
언제나 경제적인 고민과 아이들의 바람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 부모의 역할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시간들이 결국 우리 가족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임을 안다. 아이들이 원하는 옷을 입고 신나게 뛰어다닐 그날을 떠올리며, 나는 오늘도 미소를 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