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어 동매의 어무니는 소고기를 싸서 동매를 불렀다.
"아재한테 미안하다고 전해래이. 저 인간이 요즘 미칬는 갑다. 와 그라는지 모르겠다. 가끔 아지매들 한테도 손을 대는 갑드라."
"아지매들 한테 와요?"
"모르지. 그라니까 미친나 안하나. 가서 아재한테 니가 얘기 좀 잘해라"
동매는 돌아서던 서늘한 철이아재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가서 무슨 말을 잘 한단 말인가.
그것보다 동매는 이 기회에 아재에게 물어볼 게 많았다.
철이 아재는 역시 초를 켜고 있었다.
"아재, 고기 갖고 왔어예."
"그런 거 안 갖고 와도 된다."
"몸은 괜찮아예?"
동매는 아재의 얼굴을 살폈다.
철이 아재의 얼굴은 멍과 터진 곳으로 울긋불긋했다.
"아부지가 와 때렸는지 물어봐도 되예?"
"모린다. 갑자기 니한테 손대지 말라카믄서 때맀다."
아부지는 동매를 향한 아재의 마음을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아부지가 걱정해야 할 건, 동매를 향한 아재의 마음이 아니라, 아부지 본인을 향한 아재의 마음이었다.
동매는 차마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아재집을 나섰다. 그때, 망설이는 듯한 목소리로 철이 아재가 동매를 불렀다.
"동매야, 오늘 집에 가자마자 짐 싸서 어매랑 도망가라. 아부지 한테 들키지 말고. 돈 될 것도 단디 챙기가 무조건 가라"
"아재, 그기 뭔말인데예. 와그라는데예."
"오늘... 느그 아배 죽을지도 모린다."
"예....? 와예?"
아재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동매를 집 안으로 들였다.
"니, 느그 아부지가 어떤 사람인 줄 아나?"
아부지가 좋은 사람이 아니란건 동매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한 건 알지 못했다.
"우리 아부지 마니 나빠예?"
"사실 나도 느그 아부지 한테 잡혀왔다. 이 동네 아지매들도 거의 그렇다"
"예....?"
동매의 눈에 눈물이 그렁했다.
"니한테 말하기 좀 그렇지만, 나는 이 동네 아지매들이랑 거의 잤다. 아를 만들었다 이말이다. 그래가 동매 니를 건드릴까봐, 느그아부지가 그라는기다."
근데 내 아들을 느그 아부지가 다 팔아묵었다.
아들이 열 살만 되믄 좋은데 입양 간다고 갔제? 니 빼고. "
"예... "
"그건 니가 아부지 친딸이라 그런기다. 안가는기라꼬.
암만 나쁜 놈이라도 지 자식은 귀하다 아이가. "
"근데...아재.. 우리 아부지를 꼭 죽여야 겠으예?"
동매는 이상하게 그 질문을 하면서 가슴 한쪽이 시원했다.
"아재. 그럼 나머지 아들은 어디 갔는교?"
아재는 약간 망설였다.
"말해주이소"
아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동매야, 생각해봐라. 느그 아부지가 판 아들은 다 내 아들이다. 누가 나았든 다 내 새끼란 말이다. 가들 중엔 어려서 입양간 아도 있고. 장기를 판 아들도 있다. 차라리 입양은 개안타. 딴데 가서 잘 살믄 된다 아이가. 근데 그 어린아를 데리다가 장기를 팔았다. 느그 아부지가... 내 아를..."
동매는 일그러지고 속이 썩어가는 아버지의 얼굴을 아재에게서 보았다.
그 순간 철이 아재는 아버지였다. 누군가의 아버지...
"동매야... 우리는 더는 못당한데이. 느그 아버지 죽일끼다. 가서 말할라면 하든가. 그럼 니랑 아지매도 죽는다."
동매는 자기도 모르게 몸이 벌벌 떨렸다.
"우리 도망가면 안죽입니꺼."
"니랑 느그 엄마는 착하다 아이가. 잡으러 갈 사람은 없을끼다. 근데 혹시 신고 할까봐 같이 있으면 니도 어매도 죽는다. 무조건 가라. 알았나? "
동매는 멍하니 철이 아재 집에서 나왔다.
아부지가 죽는다꼬...?
아무리 생각해도 상상이 안된다.
세상에 아부지가 없는 것.
마음 한 구석에 아부지 없는 상상을 해본다.
왠지 마음이 편하다. 이런 마음이 든다는 게 무언가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
멍하니 들어오는 동매의 모습을 본 어매가 동매를 잡고 물었다.
"니 와그라노? 뭔 일 있나?"
"어매..."
"그래. 말해봐라. 아재가 뭐라카드나?"
동매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돌아보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아부지는예?"
"술 쳐 묵고 잔다. 내 저 인간 마, 짐승 같다. 확 죽었뿌믄 좋겠다"
"..... 어매."
"야가 와 이라노? 뭔 소리를 듣고 왔는데 이카노? "
갑자기 아부지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아재의 말이 떠오르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동매는 어매를 집에서 떨어진 곳으로 끌고 가 철이 아재가 한 말을 들려주었다.
"... 결국 그란다 카드나. 언젠가 그랄줄 알았다"
생각지 못한 어매의 침착한 반응이 낯설었다.
"어매... 우리 우야노."
"동매야. 단디 들어라이. 내가 아부지 술을 마이 마시게 했다."
"어매도 알고 있었단 말이가?"
"아이다. 몰랐다. 근데 니 요새 철이아재 표정 못봤나? 느그 아배 보는 게 달라짔다. 인제 때가 왔는가 싶다."
동매는 이 모든 상황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이런 일들이 왠지 당연하게 느껴졌다.
"내가 돈 되는 거 다 챙기가 숨카났다. 이제 가자."
어매의 눈빛이 단호했다.
"어매... 그래도..."
"동매야, 이제부터 맘 단디무라. 열심히 살아야 된다. 니캉내캉 둘 밖에 없다. 알았나?"
동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어매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어매는 창고에 숨겨놓은 보따리를 찾아서 동매에게 하나 주고, 어매는 두개를 들었다.
여전히 아배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동매는 방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배, 미안해예..."
어매도 맘이 좋지 않은지 방을 한 번 돌아봤다.
"이제 가자."
어매가 동매의 소매를 끌었다.
둘은 열심히 걸었다
거의 뛰다시피 걸었다.
그리고 마을 어귀의 언덕에서 집을 한번 돌아봤다.
그때 집에 불이 환하게 일었다.
집이 타고 있었다.
"어매!"
동매는 놀라 어매를 불렀다.
어매는 집을 한 번 돌아보고 눈물을 훔쳤다.
"가자. 동매야, 어매 말 잘 들어라이. 우리는 인자 죽었다. 니는 인자 동매가 아닌기라. 이 마을에 산적도 없다."
"어매..."
동매는 알 수 없는 설움에 눈물을 훔쳤다.
"마음 단디무라. 이제 우리 둘이 살아야 한다."
어매의 눈빛이 단단했다.
어매와 동매는 걸음을 서둘렀다. 눈물이 났지만 닦지도 않고 그저 걸었다.
걸으면서 죽은 아배를 생각했다.
어쩌면 죽고 있을 아배를 생각했다.
그렇게 동매는 어매와 함께 걷고 또 걸었다.
아배의 영혼조차 쫓아올 수 없는 곳으로.
등에 동여 맨 보따리의 무게가 느껴지면서, 왠지 마음이 든든해졌다.
동매는 앞서가는 어매를 쫓아가 어매의 소매를 쥐었다.
동매를 보는 어매의 눈에 비치는 것은.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