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다. 나도 몰랐는데, 어쩌면 알고 있었지만 크게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 난 문학과 지성사가 낸 시집을 꽤 신뢰하며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빌린 시집 2권도 모두 문학과 지성사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도시가스>이다.
시집 제목이라고 하면 뭔가 의미심장하고 참신한 표현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저렇게 정직하고 무뚝뚝하게 <도시가스>라고 적혀있는 것이 더 뭔가 있어 보였다. 말 그대로 느낌이 좋아서 무턱대고 빌렸다. 그리고 역시나 펼쳐본 시집은 정말 내 스타일인 것 같았다. 너무 어렵지도 않으며 뭔가 알 것도 같지만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단정한 느낌이 좋았다.
이번에 고른 시의 제목은 "옥상"이다. 옥상을 단편적인 느낌을 보고 골랐다. 옥상에 대한 추억이 있다. 큰집이 단독주택일 적의 옥상도 있고, 다니던 회사의 옥상도 있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후자이며 되게 우중충한 추억이다. 그런데 첫 번째 연이 마음에 들었다.
"오늘은 옥상을 개방하지 않습니다"
최근 어떤 카페가 루프탑이 아름답다고 해서 실내를 구경하고 계단을 타고 올라가려 했지만 열리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고등학교 다닐 때도 옥상은 개방하지 않았다. 또 아파트에서도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옥상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만큼 '옥상'이라는 하나의 단어에 다양한 상황이 있는 것 같다.
아마 옥상이 주는 어떤 자유로움과 동시에 추락이 주는 두려움이 공존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옥상>이라는 시에서도 화자는 하루에 한 번씩 옥상에 가며 하루에 한 번씩은 사라지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화자도 나처럼 아무도 없는 옥상을 빙빙 돌고, 길 너머에 있는 이팝나무 명자나무 치자나무를 빙빙 돈다고 말했다. 이팝나무와 치자나무는 하얀색 계열이고 명자나무는 빨간 꽃이었다. 되게 계절이 막연하게 겨울 아닐까 했는데 여름 내지는 가을 아닐까 추측한다.
화자는 어느 날 새를 주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너에게 새를 알려주는 방법을 한 번에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여기서부터 아주 시가 마음에 들고 미스터리해진다. 4, 5, 6연에 걸쳐서 새도 되었다가 새가 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새를 동그랗게 뭉쳐 나무 위에 다시 올려놓는 거야'라는 구절이 가장 마음에 든다. 원래 새는 자유롭게 날아다닌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것을 인위적으로 뭉치고, 그것을 나무 위에 올린다니. 굉장히 어불성설 같았다. 그런데 직장 생활에 무료해지고 우울해지던 옛날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자유롭고 싶어서 들어갔지만 실상은 자유롭지 못하던 나날들이 말이다. 그리고 시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멀리 갈 필요 없다고, 옥상에 올라가라고.
그리고 옥상도 너무 자주 올라가면 그 옥상이 그 옥상이다. 처음에는 이팝나무 명자나무 치자나무가 어떤 색다른 즐거움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점차 그것도 사무실처럼 익숙해지고 무뎌졌을 것이다. 그리고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옥상에서 늘 쫓겨난다고' 말이다. 맨 처음 나왔던 문장처럼 옥상을 개방하지 않는 문구에 화자는 옥상 출입을 제한당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리 말한다.
"새가 되는 법을 알 수가 없게 된다."라고. 아마 나무 위에 새를 동그랗게 뭉쳐 올려놓았던 것이 마치 옥상 위에 화자를 잘 동그랗게 뭉쳐 올려놓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멀리 달아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제한된 상황 속에서 자신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되게 신기한 게 1-5연까지는 어미에 마침표가 없다가, 6연부터 9연까지 있다가, 10연에는 또 없고, 마지막 11연에는 마침표가 있다. 내가 추측하기로는 자유로운 것을 상징할 때는 마침표가 없고 단절된 생활을 상징할 때는 마침표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올라갈 수 없다는 문구 자체를 단절로 보지 않는 것 같다. 10연에 '오늘은 옥상을 개방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막아서는 문구처럼'에는 마침표가 없는 것을 보아 말이다.
나는 보면 '자유'라는 주제를 되게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라는 인물이 고뇌한다고 느낄 때 감정이입도 잘 되고 그 시에게 더 다가가는 것 같다. 나도 뭔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쫓겨나는 기분, 혹은 쫓기는 기분' 말이다.
<옥상>이라는 시는 궁금한 점이 많은 시다. 여기서 화자가 '새가 되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한 '너'는 누구일까. 화자는 왜 옥상에 계속 가며, 새를 주웠다면서 왜 새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옥상에서 늘 쫓겨날 만큼 화자는 옥상을 매우 좋아했던 것일까. 화자는 왜 새가 되고 싶었을까.
옥상이라는 단어 뒤에 새가 붙으니까 어쩐지 자연스럽게 새장이 떠오른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도 자유를 추구하며, 자신의 상황을 제삼자에게 설명하고 싶은 화자의 심리가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다. 난 <옥상>이란 시가 좋았던 이유는 바로 이런 제한된 상황 속 몇 개 안 되는 단어를 이용해서 어떤 상황 및 감정을 보여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가 너무 설명적이어도 재미없고 너무 유추가 안 되어도 흥미를 잃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수명 시인은 구체적인 단어와 상황 속에서 다른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게 해 줘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