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같았던 나의 치료 여행
나에게 치료는 즐겁고 의미 있게 하루하루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축제 같은 경험이었다.
지난달, 대구 행복한 H병원에 외래로 가던 날이었다.
원장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리나님이 힘든 자율신경 치료 과정을 이렇게 잘 이겨내 주어서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희망이 될 거예요.”
그리고는 당시의 치료과정에 대해 유튜브 촬영을 제안하셨다.
뜻밖의 순간에 처음이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설레는 마음도 있었다. 해서 흔쾌히 동의했다.
https://youtu.be/PdIvX-iNOPU?si=hu9sB7HiWqZLUw4P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긴장한 티가 역력하다. ㅎㅎ
환자가 자고 있으면
편지 두고 가는 의사
지난 9월 8일...아침 8시쯤 되었을까?
잠에서 막 깨어나려는 찰나, 주치의 선생님께서 살포시 편지만 두고 가셨다.
환자들이 자고 있으면 굳이 깨우지 않고 조용히 편지를 놓고 가신다.
몇 시간 후 외래에서 뵙는데도 그러신다.
그간 입원으로 머물렀던 병원에서는 의사 한 번 만나기 어려웠는데 행보칸 병원에서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의사 선생님을 자주 만날 수 있다.
하루에도 많게는 세 번,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가 있으면 주말조차 빠짐없이 회진을 오신다.
그 정성 덕분에 힘이 난다.
환자 한 명 한 명을 세심하게 살피며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깊이 감사하다.
병원에서 환우들을 위한 행사도 많아서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의미 있게 느껴진다.
나의 통증&자율신경 증상들은 생명을 앗아가진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삶을 이어가는 데에 제약을 만든다.
생업이라는 말 대신 나는 그것을 생활의 기반, 일상의 지속성, 혹은 내가 감당해야 하는 역할이라 부르고 싶다.
돈을 벌고 직업을 유지하는 문제를 넘어서 내가 서 있는 자리와 책임,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까지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 속에서 어떤 존재로 남을 수 있는가.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만은 없다.
증상이 주는 불편함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대처는 속도를 늦추고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예전의 속도를 낼 순 없지만 천천히 숨 쉬듯 버텨볼 수는 있다.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며 때로는 멈추고 쉬는 것도 대응이 된다.
중요한 것은
비틀거리더라도 버티는 법을 배우는 것.
생명은 유지되지만 삶은 자꾸 흔들린다.
나는 그 흔들림 위에 임시 가설물을 세우듯 하나씩 새로운 질서를 붙잡아야 한다.
느리고 어설프더라도 지금은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왜 나는 매번, 특히 급 아픈 걸까.
곱씹을수록 마음은 음울해진다.
그러다 통증이 없는 어느 날을 맞이하면 그 하루는 우주 저편에서 흘러내린 작은 유성처럼 반짝인다.
얼마나 드물고 우연과 결핍 사이에서 간신히 맞이한 기적일까.
그래서 더는 매일 왜 아픈가! 를 생각하기보다 오늘 하루 통증이 없다는 것에 눈물 나게 감사하다.
그 감사는 삶의 섬세한 순간들을 인식하게 해주는 ‘눈’이 되고 세상이 얼마나 생기로 가득한지, 얼마나 경이로운지를 숨죽여 바라보게 만든다.
아프지 않은 하루가 얼마나 드문 축복인지.
그 하루가 얼마나 찬란하고 귀한 선물인지.
그리고 나는 또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내면의 목소리를 마주한다.
"나는 이렇게 되어야만 해"
"이만큼은 나아져야 해"
이런 생각들은 늘 나를 옥죄는 잣대가 된다. 기준이 높을수록 지금의 나는 항상 부족하게 느껴지고
그만큼 삶은 무거워진다.
삶은 병이든 회복이든 직선처럼 뻗어 나가는 것이 아니다.
손끝으로 만져지지 않는 어떤 기류...
물결처럼 부서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파도처럼 고요와 소란 사이를 출렁이며 지나간다.
나는 자주 오해한다.
버틴다는 것은 끝까지 쥐고 놓지 않는 일이라고.
그러나 때로는 손을 놓는 것이 버팀이다.
고집을 내려놓는 일이 무너짐이 아니고 흐름에 나를 얹는 일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 오래 걸렸다.
삶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무엇이 되어야 마땅한가!
를 묻는 질문에 끝내 답하지 않고 되묻는다.
“지금 너는 어디쯤 흘러가고 있니?"
그 물음 앞에서 나는 나를 겨우겨우 가볍게 만든다.
조금은 비틀거려도 흘러갈 수 있는 쪽을 택한다.
스윗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니 내 통증도 한결 스윗해져 간다.
문득 통증이 자취를 감출 때면 삶이 준비한 작은 깜짝쇼를 선물 받은 듯하다.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내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을 신뢰하고 스스로의 회복력을 믿을 때 치유의 절반은 완성된다.
내 마음과 몸이 함께 호흡하고 나란히 움직일 때 진정한 완전함에 다가갈 수 있다.
내재된 회복력의 최대화
아직도 수 없이 흔들리고 많은 감정이 오고 가지만 나는 지금의 통증은 과거의 치료 덕분에 좀 더 잘할 수 있는 회복력이 생겼다.
경험은 이토록 소중한 것이다.
원장님께서 이대로 가면 다음 주 퇴원해도 되겠다고
어제 말씀하셨는데 어째서일까 아쉽다. ㅎㅎ
오늘도 행보칸 병원 생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