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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이 아쉬울 정도로 행복했던 병원 생활

25년 8월 27일~9월 16일 입원

by 미리나


아픔은 사라지는 게 아니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통증은 선물이다.
아픔은 나를 깨우는 북소리였고
고통은 나를 무릎 꿇게 한 뒤
다시 일어서게 한 손길이었다.

그때의 나는 도망쳤다.
아프다는 사실이 무섭고 두려워
감추고 잊으려 만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통증은 나를 향한 초대장이었고
아픔은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서명이었으며
고통은 끝내 나를 통과시켜 내 안의 빛을 꺼내놓은 은총이었다는 것을...


도망치던 자리가 기도하는 자리가 되었다.







25년 8월 27일, 수요일

행복한 H 병원에 입원해 9월 16일 화요일 퇴원했다.




퇴원 전 날 밤, 병원 1층 로비부터 쭉 돌아보았다.


여기는 리조트인가...




병원 생활을 하다 보면 며칠이 지났는지, 무슨 요일인지 가끔 잊을 때가 있다.
벌써 3주가 지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흉통, 공황과 비슷한 증상, 거대하고 지독하게 느껴졌던 통증, 동반된 발열, 식사 후 구토, 혈뇨, 방광염까지.
지금은 모두 좋아졌다.





입원 전, 산부인과 진료에서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했지만 증상은 여전히 불편하고 찝찝한 느낌이 남아있었다.


병원 병실 자리가 없어 대기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고 입원이 간절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차를 보내주셨다.


사무국장님이 연락 오셔서 동 앞까지 오셔서 정말 감사하고 편하게 왔다.

누워서 오는데 안심이 되니 벌써 다 낫는 것 같았다.






입원 시 필요한 검사들과 그동안의 고통을 설명하고 설명 듣고 입원실 배정을 빨리 받았다.




이때만 해도 무력하고 힘이 없어서 병실 오자마자 환복하고 누워버림



입원하면 루틴 중 하나는 피 뽑기다.

각종 검사가 이어지고 몸은 늘 누군가의 관찰 속에 있다.

그 모든 과정이
나를 살리기 위한 확인 작업ㅎㅎ



밤에 일기를 썼다.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병원 오자마자 주사치료를 받았고 저녁 되니 좀 좋아졌다.



며칠 후 병원 식당의 떡볶이와 누룽지는 왜 이렇게 맛나던지...



밥을 못 먹던 날에는 환우분 한 분이 먹으라며 챙겨주셨다.



며칠 정리도 못하고 얼음물도 날 살려주었다.



예쁜 풍경을 보며 잠시 마음의 여유!


보고 있노라면 자연 속에서 휴식을 이렇게 공짜로 얻어도 되나 싶어 괜히 자연에게 빚진 기분이 들었다.
아마 이 뷰가 없었으면 우울증에 당첨되었을 거다.

자연이 나에게 무료 심리치료를 해주는 기분이었다.



이 병원은 인기 많은 심리치료 선생님도 계셨지만 이 뷰 덕분에 마음이 좀 더 빨리 좋아지지 않았을까 싶다.ㅎㅎ


지난번 입원 시까지는 식당이든 엘베든 어디서나 마주치면 언제든 오라고 하셨던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치료비도 보험이 되어 부담이 없었고 단 한 번의 검사와 치료만 했는데도 나를 볼 때마다 얼른 오라며 세 번이나 상담을 해주셨다.


게다가 나랑 이야기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근무하셨다는 경험 많은 선생님이 내 이야기가 자신에게도 치유가 된다고 하셨다.


그 말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어쩌면 우리의 상처는 서로에게 약이 되어 결국 둘 다를 낫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선생님이 아프셔서 수액을 맞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도 걱정이 되었다.


이 병원에서는 의사 선생님이 계셔도 누가 치료자고 누가 환자인지 모르겠다.



행복한 에이치 병원 부속 GWG힐링센터 관장님이 환우분들께 기본적인 근력 운동도 알려주셔서 운동도 하고 나 혼자 병원 근처 모명제라는 곳에서 맨발 걷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병원장님은 진료 끝나면 의사가운 집어던지고 골프 치러 다니고 그러실 줄 알았는데...

많은 환우분들을 보시느라 개인적 시간은 1도 없으신 김정훈 병원장님.



늘 이렇게 환자들과 함께 해주심이 존경스럽다.



환자들과 오손도손 이렇게 노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하시는 의사 선생님의 미소는 참 예쁘다.

그래서 여기 많은 암환우분들은 모두 밝다.


같은 병원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삶을 배우는 귀한 시간이었다.








지난달, 주치의 선생님이 입원을 권하셨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옛날 더 심했을 때 병동이 없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어떻게 통원치료했지?" 하며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했다.


병실 자리가 날 때까지 진작 의사 선생님 말 들을 걸 약간 후회스러웠다.

상태가 이럴 때 병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걸 알고 있지만 오히려 좋지 않아 입원 자신이 없었다.



입원이라는 것이 치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었다.


몸만 치료하는 것이 아닌, 심리적으로도 큰 변화를 요구하는 과정이라서 불안감, 고립감, 그리고 ‘내가 이렇게까지 상태가 나빠졌구나’라는 자책감...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감정들...



"내가 여기서 얼마나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상태가 계속 나아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


순간 자신감을 잃었더랬다.


"왜 내가 이런 상황까지 왔을까?"라는 자책이 들 수 있고 그로 인해 생기는 무력감은 입원 자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더라도 입원 자체가 내가 더 이상 "혼자서는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만들어 자존감에 상처를 준 적도 있었다.


세 차례 입원은 쉽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병원은 치료의 장소이지만 불편함도 있는 변화의 장소이기도 하다.


병원에서의 생활은 여러 규칙과 제약이 있기 때문에 불편한 환경을 떠나기가 두렵거나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 상태로라도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거의 없지만 병에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다 보니 그만큼 회복이 부담으로 다가왔었다.


의미심장하게도 나는 재발이 심해 회복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조금 있다.


회복은 나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책임감과 압박감이 입원을 망설이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너무 심하게 자신을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

그러면 불안과 고통을 더 깊게 묻어두려 하는 셈이 된다.


진짜 필요한 회복과 휴식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아플 때는 무조건 강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면 그 스트레스가 병을 악화시키고 마음을 더 지치게 할 수 있다.


나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면 자기 연민이나 이해가 부족해지고 자기 돌봄도 사라진다.


다그침은 나를 더욱 외롭고 고립된 상태로 몰아넣고 나를 지키고 회복하는 데 필요한 힘을 빼앗는 독이 되기도 한다.




그전 일주일 간은 무력감에 빠져 거의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입원이 결정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두 차례 입원 후, 증상이 좋아졌던 기억이 많았지만, 왜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걸까?


첫 입원 때보다 훨씬 더 힘든 날들에 통증이 심해져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통증은 나빠지고 좋아지는 문제는 아니다.


통증과 자유, 허무와 생명의 아이러니.


통증을 겪으며 나는 내 한계와 가능성을 마주한다.
삶은 호전이나 악화로 환산할 수 없는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 같다.


결국 나는 그 강물 속의 작은 물방울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 깨달음은 허무하면서도 나를 자유롭게 만든다.




통증은 불행이 아니다.

그것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는다.


허무함 속에서도 자유와 여유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위로한다.


“그냥 뭘 바꾸려고 하다 보니 힘든 것 같으니까 작은 빛이라도 다시 길어 올려보자.”


이런 생각을 하며 웃음을 지어본다.
나는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알지만 그럼에도 이 강물 같은 삶 속에서 조금씩 스스로를 피워내는 힘을 느낀다.


얼어붙은 어둠 속에서도 책상 위 먼지 한 알이 스스로 별빛을 띠듯, 아주 작은 존재감을 느낀다.




1주째, 공황 비슷한 증상으로 마음은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2주째, 조금씩 병원에 적응하며 치료가 나아지는 모습을 보고 “이 정도면 퇴원해도 되겠다”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3주째, 크고 작은 이벤트가 찾아와 마음이 살짝 흔들렸지만 이제 퇴원을 준비하며 마음을 정리한다.


퇴원은 불편함을 끝내고 감사와 함께 떠나는 일이다.


때로는 내 의지를 녹일 정도로 힘들었지만 퇴원 하루 전날인 9월 14일 월요일, 참을 만한 발열과 조금 덜 힘든 통증이 나를 맞이했다.


9월 15일 화요일, 퇴원을 향한 작은 배를 띄웠다.


병원이라는 바다에서 나는 매번 험지를 헤쳐 나가는 개척자처럼 통증과 발열이라는 파도를 헤치며 무사히 험지를 빠져나왔다.


이 병원이라는 작은 세상 속에서 나는 의식적으로도, 무의식적으로도 보호받고 있었다.


다른 병원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한 H 병원이라는 이곳에서의 삶은 유일하게 내게 안전한 곳이 되어 주었다.




그 안정감이 그리워기도 할 것이다.
통증이 다시 무서워져 그 안에서 조금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 익숙함이 더 무섭다.


병원에 있을 때는 처치가 바로 되니 모든 것이 분명히 보였지만 그 분명함이 결국 나를 가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시는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잡는다.


익숙해지는 것, 편안해지는 것, 그것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는 것과 같다.


안정감은 놓아주지 않으려는 억제의 힘이지만 진정한 자유를 빼앗는 감옥일지도 모른다.


통증이 나를 두려움 속에 가두려 하지만 익숙함은 그보다 더 큰 속박을 만드니까...


익숙함 속에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






내가 같은 통증이라도 달리 느낄 수 있었던 건
주치의 선생님 덕분이었다.

늘 아픔을 고통이 아니라 불편함으로 인식하도록 이끌어주셨다.


주사가 아프다고 하면 “참아라”가 아니라
“이 부위가 왜 아픈지, 무엇을 위해 필요한지” 설명해 주셨다.


그때 나는 아픔과 불편함의 경계를 그어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의사가 나를 그렇게 만든 이유는 치료 효과 때문만은 아니라고 느낀다.


아픔을 이해하고, 느끼고,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셔서
나 자신과 몸, 마음을 바라보는 눈이 길러졌다.
같은 통증도 이제는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니까.

통증이 나를 삼킬 때 종종 두려움과 불안, 서러움에 휩싸인다.


하지만 주사 한 번, 통증 한 점마다
“아, 이건 내 회복의 지도구나” 하고 깨닫는다.

내 몸이 나한테 보내는 GPS랄까,
길 잃은 척하면서 결국 나를 안내하는 꼴이다.






통증을 견디기만 하면 죽을 맛이다.
숨 쉬듯, 이해하듯, 받아들이듯 그렇게 통증과 함께 걸어야 한다.


주치의 선생님은 내 아픔 속에서
배움과 성찰로 나를 안내하는 가이드였다.

아픔이 우리에게 시련일 수 있지만 내 마음과 몸을 연결하고 삶을 더 깊이 맛보게 하는 작은 연습장일 뿐이다.

통증을 불편함으로 재정의하고 의미를 뒤집어버리면
그 배움은 어느새 값진 경험으로 다가온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든, 통증이 남아있든
결국 나는 오늘도 내게 남아있는 통증 덕분에 조금 더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는 통증 때문에 입원했었다. 행복한 H 병원은 암과 통증 재활 치료를 중심으로 항암 부작용을 완화하고 암 크기를 줄이거나 사멸시키기 위해 광면역/고주파 치료와 면역주사를 맞으며 회복을 기대하는 환우들은 90%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코로나 백신 때문에 암에 걸렸어요.'

어떤 이는 과거를 돌아본다.

'나는 이렇게 잘 살았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스트레스와 원망을 마음에 담고 눈물로 밤을 적신다.

질병 앞에서 인간은 이유를 찾고 싶어 하지만
그 이유가 꼭 사실과 맞닿아 있지는 않을 텐데 안타까웠다.
나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우리는 모두 상처와 혼란 속에서도
어느새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을 다독이며 살아간다는 것을 배웠다.

그 눈물과 말 사이에서 삶의 무게가 느껴졌고 우리는 모두들 연약하지만 그분들의 눈빛에서 굳건한 용기를 보았다.

삶의 무게와 깊이를 나눠주는 좋은 환우분들 덕분에 행보칸 병원생활이었다.

암환우분들을 존경하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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