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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계 방랑자 Feb 20. 2024

갈 곳 잃은 이세계 방랑자

기한 없는 백수 생활 N개월 차 어디로 흘러갈지 나도 모르겠다.

2024년 2월.

뜻하지 않은 백수 생활 8개월 차

8개월의 시간 동안 크고 작은 여행들을 떠났다.

첫 번째 여행에서 나는 지금껏 백수로 지내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기한 없는 백수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2020년.

대학 졸업 후 나는 전공을 살리지 않고 전혀 다른 일을 시작했다. 남들 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 준비를 하며 번듯한 직장에 들어갈 때 나는 시급제 알바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작은 직장에 들어갔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던 일을 하게 되어서 매일 웃으며 일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엄연한 '직장'이었다.


2년 6개월을 성실히 일했다. 일을 하며 매일 즐거웠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 사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사장님은 나를 응원한다며 좋은 곳으로 이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나의 커리어와 더 많은 발전을 위해 이직을 준비했다.


2년 6개월의 경력이 헛되이 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나는 누구나 알만한 큰 기업에 이직을 성공했다.

그 시작이 나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새로운 직장에서의 3개월은 참 행복했다.

그 행복은 딱 3개월뿐이었지만.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한 선택이었는데 달라지는 것 없이 오히려 역행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뭔가 잘못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되돌리기에는 내가 선택한 일을 후회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후회한들 되돌릴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바라왔던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는데 그 어디에서보다 불행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나약하게만 보였을 내 모습이 너무 미웠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목이 메고 눈물이 났다.


"안 힘든 사람이 어딨냐.", "너는 왜 못 버티냐."라는 말들을 나에게 했다.

버텨내기 위해 그렇게 말을 했는데 돌아온 건 더 나약해진 모습의 '나'였다.


6개월이 더 흘러 9개월 차가 되었을 때 더는 버티기 힘들었다.

3개월만 더 버티면 퇴직금이 나온다라는 것은 이미 나도 알았다.

내 상황에 퇴직금을 위해 버틴다는 것은 나를 혹사시키는 것이었다.

더 이상 불행하고 싶지 않았다.


이직 9개월 차 퇴사를 결정했다.

퇴사 후 백수로 시간을 보낼 생각은 없었다.

바로 다른 직장을 알아봤고 운이 좋게도 바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이것은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은 바로 나였다.


또 다른 불행이 시작될 거라는 미래는 모르는 채 퇴사 후 마음 정비를 위해 일본 후쿠오카로 떠났다.


2023년 5월.

후쿠오카로 떠날 당시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으로 지난 6개월간의 불행은 깨끗하게 잊었다.

앞으로의 모든 날들이 파란만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보냈던 행복하기만 한 해외여행이었다.


여행이 끝난 뒤 새로운 직장에 출근한 나는 바로 깨달았다.

어디든 다른 곳은 없구나.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자책뿐인 하루하루를 보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을 했다. 부정으로 물든 어둠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내가 학생 때 공부를 안 해서,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우물 안 개구리 마냥 갇혀있나?' 생각하며 과거의 나를 탓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학창 시절 공부를 안 하고 놀았다는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시절 행복했고, 지금 행복하다면 나에게 불가능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너무 불행하다. 처음으로 내 인생을 통째로 비판하고 후회했다.


나약하기만 했던 나에게 퇴사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찾아온 두 번째 퇴사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2023년 6월 진정한 백수가 되었다.

그저 3개월만 푹 쉬어보자라는 생각뿐이었다.

그 3개월이 지금 현재 8개월이 되어버렸고 언제까지 직장 없는 20대 후반 떠돌이 인생을 살게 될지에 대한 마감 기한은 없다.


퇴사 이후 전 직장 선배들을 만날 때면 항상 듣는 말이 있다.

"그때 3개월만 더 버텼으면 퇴직금 받고 퇴사하는 건데 너무 아깝다."

나는 지금도 그 3개월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백수 생활 3개월 차에 여행을 하며 만들었던 잊지 못할 추억들이 있었고 그 추억들 이후 나를 또다시 여행길에 오르게 만들었던 다소 험난 했던 나의 20대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그저 걸어 다니는 것이 좋다.

이곳저곳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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