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정장을 입는 나의 이상한 습관에 대하여(마지막, 구두 편)
브로그 없는 옥스퍼드
'킹스맨 1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나온 명대사다. 비록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에 많이 묻히긴 했지만, 최소한 의미나 뜻, 이야기를 풀어내는 중요한 연결고리로서 밀리지 않는 대사라고 자부한다. 최소한 나에게도 그랬다.
정장의 핵심 아이템 중 하나는 구두다.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할 수도 있다. 맨발로 다닐 수는 없으니까... 저 대사는 특정한 스타일의 구두를 지칭한다. 예전에 내가 구두를 고르는 기준은 사회 초년생 때는 '가격'이었다. 그러다 한 사회생활 10년까지는 특정 브랜드(탠*, 이유는 그냥 처음 시작해서) -> 그리고 킹스맨을 본 이후 브랜드를 따지진 않고, '브로그 없는 옥스퍼드'를 고른다.
킹스맨의 대사가 멋있어서 선택하는 이유도 있지만, 사실 뜻이 재미있다. 구두를 보면 막 구멍으로 장식이 되어 있는 신발들이 있는데, 그 구멍 장식을 지칭하는 것이 브로그다. 즉 아무 구멍이나 장식 같은 것이 없는 깔끔한 옥스퍼드화[복사뼈 길이의 클로즈드 레이싱(closed lacing)이 특징인 레이스업(lace-up) 구두]를 지칭하는 것이다. 뭐 어렵게 얘기하지 않고, 그냥 깔끔한(포멀 한) 신발이라는 거지.
이 어떻게 보면 깔끔함을 지칭하는 그 의미가 나에게 꽂혔다. 아무런 장식이나 어떻게 보면 심심하고 고지식한 영국신사를 지칭하는 단어인 '브로그 없는 옥스퍼드' 나의 강직함, 보수성(정치 아님..), 격식 있음 등과 같이 심플하고 깔끔한 그 자체다. 그런데 의미는 좋지만, 좀 심심할 수는 있다. 특별할 것이 없으니 어떻게 보면 개성이 떨어진다고도 오해할 수 있다.
요새 미술을 보면, "이런 건 나도 그리겠다." 싶은 작품들이 꽤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현대 미술의 특징으로서, 사진 기술의 발달로 인해 우리가 평상시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닌, 시각적 형상을 파괴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막 풍경화 정물화 같은 것이 아닌 다소 단순하고 난해한 작품들, 그것이 바로 포스트 모더니즘의 미니멀리즘에 해당될 수 있다. - <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 참조.
도서 <마음을 꿰뚫는 일상의 심리학>에서는 다양한 심리이론이 나오는데 그중 특히 '오컴의 면도날' 효과가 있다. 절차를 최소화하고 간결하게 증명하는 것이 제일 효과적이고, 필요하다면 곁가지를 늘리지 말 것. 디자인 면에서는 미니멀리즘을 따지고, 조직관리에 있어 행정 간소화를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맞닿은 이야기이다. 내가 추구하는 바와도 같다.
그리고 또 바뀌었다. 지금은 구두를 신지 않고, 운동화로 바꿨고, 정확히는 '검은색 러닝화'를 신는다. 이것은 나의 스타일에 화룡점정이다(畵龍點睛). 사실 정장에 있어 가장 불편한 요인은 발이다. 구두를 하루 종일 신고 다니면 발이 아프고, 하루의 피로가 더해지는 느낌이다. 우리나라 정장 시장의 위기는 다른 무엇보다 불편함이 큰데, 특히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구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 구두를 한 번 안 신어 보기로 했다. 출근 시에 걸어가자는 생각으로 정장에 운동화를 신고 가봤다.
그런데 웬걸, 너무 편했던 것이다.
그렇게 며칠을 계속 걸어 다니다가 좀 심심했다.
그래서 몇 번은 땀이 많이 안 날 정도로 뛰어서도 출퇴근을 했다.
그리하여 답답하고, 불편함의 상징인 정장을 입고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자신감 있고, 심지어 신체능력도 강한 킹스맨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연재의 시작처럼 나의 스타일은 정장에 운동화를 신고 선거유세(?)를 하는 것 같은 '현실은 지역의원'이 되었다(정치 안 합니다...). 뭐 상관은 없다. 검은색을 신으면 크게 티도 안 나고, 나는 편하고, 더욱 나의 복장의 의미도 높여준다. 멋진데 편하고, 강한 복장이라니 완벽하다. 심지어 러너로서 나의 정체성을 잊지 않게 해 준다는 의미부여도 된다.
사실 어렸을 때 나는 무언가 멋진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지구를 지킬 줄 알았고, 세계를 위해서 일하고, 최소한 유명인 정도는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말 그냥 리얼이더라. 심심한 리얼. 하지만 가끔은 어린 날의 이상을 꿈꿔본다.
영화처럼 멋진 무언가가 되는 상상으로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며 운동화 끈을 매 본다.
뭐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
어쨌든
그래도 이상은 킹스맨 이니까!
이상은 킹스맨 연재를 마칩니다.
연재 힘드네요... 다작하시는 작가님들 대단하십니다.
개인적으로 제 자신을 많이 정리하고, 배운 시간들이었습니다.
미숙하고 부끄러운 글 봐주시고, 라이킷 해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