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혼돈의 시작.
아무런 정보가 없을 땐? 몸으로 부딪혀 본다!
아주 추웠던 수년 전 어느 겨울, 꽤 오랜 시간 근무했던 응급실을 떠났다. 나도 가슴이 따뜻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고, 이왕이면 자아도 실현하면서 몸도 편하고 싶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나는 그 당시 주변에서 준비하던 공무원, 공기업, 공단 등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공무원 공부는 모든 과목을 암기해야 할 거 같다는 단순한 판단으로 포기. 공기업은 간호사라는 경력을 살릴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포기. 마침 베이비부머 세대의 대규모 은퇴를 앞둬, 신규 직원을 많이 뽑는다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이하 건보- 에 눈길이 갔다. 이만하면 업무내용도 이상적이었으며, 남들 보기에도 좋아 보이는데다 복지혜택마저 훌륭해 보였다.
차근차근 준비해야 했지만 마음이 급했다. 1년 안에 들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샘솟았다. -지금 되돌아보면 이 욕심이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하는데 한 몫했다고 생각한다.- 서류에서 가점을 받기 위해 한국사 검정시험 1급을 따고, 컴퓨터 활용능력 1급을 급하게 땄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 진행되어 당장이라도 입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한다는 서류전형 -자기소개서에서 많은 사람들이 탈락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은 첫 도전부터 붙었고, 첫 NCS는 두 문제 차이라는 간소한 차이로 떨어졌다. 다음 시험에는 내가 필기 합격자 명단에도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최종 합격에 쐐기를 박기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인턴에 지원하고 싶었지만, 불행하게도 내 토익점수는 형편없었다. -현재에도 토익 점수가 형편없다. 하하하.- 그렇다면 기간제 근로자로 지원해서 관련 경험을 쌓아 서류와 면접에서 어필하면 된다. 단순한 생각으로 기간제 근로자에 지원하여 당연히(?) 합격했고, 좋은 팀원들을 만나 입사의 꿈을 활짝 꽃 피웠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락을 하는 주임님이 있을 정도로 좋은 곳이었다.-
두 번째 도전.
이번에는 건보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이하 심평원- 에도 지원해 보기로 한다. 확률을 높이고 싶었달까. 심평원도 건보처럼 대부분의 조건이 좋아보였다.
유명 유튜버의 첨삭까지 받아 건보에 서류를 제출하며, 합격을 기원했지만 서류 탈락이라는 아픔을 맛보고 말았다. 그 날 너무 쪽팔리고(?) 부끄러워서 사무실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눈물을 흘렸다. 며칠 뒤 기대도 하지 않고 있던 심평원 -소수 인원을 뽑고 스펙을 많이 본다고 소문난 곳이었기 때문에, 토익 점수가 없는 내가 붙을 리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서류 합격 소식을 보고, 다시 희망에 불타올라 NCS 공부에 열을 올렸다. 머나먼 서울까지 가서 NCS 시험을 치고 돌아오고 한참 뒤 필기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드디어 내가 공공기관 공채로 들어가는구나! 라는 생각으로 머나먼 타지에 면접을 보러 갔지만, 일을 하러 다니느라 면접 준비를 완벽하게 하지 못한 탓인지 시원하게 말아먹고 말았다. 면접을 보고 나오는 길에 구두굽까지 부러져서 부정적인 예감은 더 짙어졌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결과창을 확인해 봤는데, 역시나 흑백의 슬픈 화면은 나를 격려해주는 내용으로 가득 차있었다. -합격 시에는 글을 읽을 필요도 없이 화려한 컬러로 축하해준다.-
두 번의 도전으로 최종까지 왔으니, 한 번만 더하면 최종합격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