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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온 Jan 19. 2024

내 눈에 마이 베이비

13살 어린이도 괜찮아 


6학년이면 다 컸네, 13살이면 다 키웠네. 지인과 첫 째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솜털이 뽀송한, 뽕실이를 생각하면 도리도리다. 몇 학년이면, 몇 살이면 어때야 하는 고정관념을 자꾸 아이에게 기대한다. 그게 우리 아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너는 그냥 너일 뿐인데,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규정해 버린다. 


모순투성이 애미는 네가 이 나이면 예비 중1로 의젓하고 점잖은 청소년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훌쩍 성장해서 어른이 되기 전 단계로 내가 알던 ‘애’가 아닌 ‘세미 어른’ 정도로 상상해 온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간 단계인 중학교에 가니까 뭐가 달라져도 다르지 않겠냐는 바람이었다.  




여행 와서 며칠을 붙어 지내니 진짜 네 모습이 들어온다. 너와 차를 마시러 카페에 가 본다. 앞으로 중학교에 가면 어떻게 지낼지 원대한 계획을 들으며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리라. 애피타이저로 김칫국부터 들이키고 자리를 잡는다. 네가 시킨 아이스티를 탐닉하는데 10 분, 동생 음료를 탐색하고 뺐어 먹는데 10 분, 아빠를 졸라서 스마트폰 게임질에 20 분, 그러고는 엉덩이가 들썩인다. 


곧 14 살인데 어른처럼 진득하게 앉아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는 건 어려운 건가. 가끔은 말없이도 서로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차를 홀짝이면서 말이다. 나는 너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존재하고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좀이 쑤시는 넌 그렇지가 않았다. 


누가 네 의자를 달궈 놓기라도 한 거니? 결국에는 못 견디고 뛰쳐나갔구나. 바닷가로 내닫는 네 모습이 2층 테라스에서 조그맣게 보인다. 물멍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돌 던지기를 하고 있었구나. 그래 그럴 수 있어. 6 학년은 돌 던지며 놀지 말라고 누가 그래. 그렇게 재미있으면 해야지. 너의 미련, 근심, 후회 그런 것까지 바다로 멀리 던져 버리자. 네 맘이 풀리도록 더 힘껏 던지자. 


자갈을 주워서 한 주먹에 들고, 다른 손은 그걸 바다로 던지고 반복이구나. 꽤나 몰입한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이렇게 돌 던지고 노는 걸 좋아하는데 학교나 놀이터에서 그러면 안 되니까 얼마나 답답했을까. 너는 그렇게 한참을 놀고, 들어오라는 고함을 듣고 서야 고개를 돌렸다. 


이제 그만 가자니까 주차장 구석에 쭈그려 앉아 또 뭘 하고 있다. 아, 돌을 쌓고 있었구나. 제주에는 돌이 많으니까 어딜 가나 돌탑이 있긴 하지. 그래 그럴 수 있어. 무너지지 않게 단단하게 높이 쌓아 올리는 데 성취감과 쾌감이 있으니까. 아슬아슬하게 조약돌 하나하나 끼워 맞춰 올리는 그 재미가 좋았구나.


높다랗게 다 쌓아서 소원은 빌었니. 네 소원은 뭐였을까. 동생이 네 말 잘 듣게 해 달라는 언제나 1번으로 나오는 그 소원을 또 말한 건가. 돌도 던졌고, 탑도 쌓았고 이제 좀 고상한 데로 가보자. 너의 지적 호기심에 딱 맞는 곳으로 데려다줄게.  


제주 박물관에 가면 네가 좋아할 줄 알았어. 학구적인 모습을 상상하며 그런 너를 보는 내가 흐뭇할 거 같았거든. 시대별로 제주 사람들이 살아온 모습을 보여 준다더라. 그렇게 제주에 왔어도 이곳은 처음이라 강 남매가 어떻게 즐길지 궁금했어. 어린이 박물관이 따로 있는데 둘째가 그곳을 보자마자 들어가버리네. 어라, 첫째 너도 따라 들어갔구나. 둘째 노는 거 보다 시시하면 바로 나오겠지 했는데 네가 안 오더라. 


녀석이 뭘 하나 가봤더니 고구마, 감자 같은 야채 모형을 땅에 심었다가, 바다 풍경을 보겠다고 작은 구멍에 얼굴을 들이 밀고 무릎까지 꿇은 꼴이라니. 나를 보더니 정낭의 정주목을 빼어 들고 칼싸움까지 걸어온다. 언뜻 보면 어른 같은데, 행동은 아가아가한 큰 애기다. 나중에는 종이접기를 따라 하다가 마음대로 안 되는지 완성이 안 됐다고 성질까지 냈지. 너한테 그런 게 중요할 수 있지. 그래 그럴 수 있어.      




덩치는 산만한데 하는 짓은 아직 세 살 배기 같고, 부조화에서 자꾸 웃음이 터져 나온다. 마냥 어리고 천진하고 순수한 널 내가 단단하게 착각을 했었다. 세상만사가 다 궁금하고 직접 만져보고 느껴봐야 직성이 풀리고 부딪쳐서 알아보고 싶은 몸집만 커진 아이가 너였다. 그런 너를 내가 자꾸 붙들어 매고, 다그치고, 내 틀 안에 가두려 들었나 보다. 천천히 네 방식대로 해 나가면 어떤가. 어차피 나중엔 다 똑같은 어른이 될 텐데. 너는 너의 속도로 자랄 텐데. 왜 너를 나에게 맞추라고 했을까. 


너는 13살이니까, 6학년이니까, 오빠니까, 남자니까 그런 하찮은 이유를 들이대면서 널 얼마나 갑갑하게 했을지 새삼 미안해진다. 여행이 주는 여유에 한껏 풀어진 마음을 단단하게 옥죄여 매지 말아야겠다. 너그러운 시선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 지켜보리라. 중학생이 됐다고 어린이날 선물은 패스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돌 장난이 재미있고, 어린이 박물관이 더 좋으면 어때. 그래 그럴 수 있어. 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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