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잘알에게 주어지는 취한 사람의 뒤치다꺼리를 아시나요? 저는 음수저입니다. 부모님께서 금수저 대신 음주 능력을 물려주셨죠. 술이 잘 받는 타입이에요. 똑같이 마셔도 덜 취하고, 술 마시고 자신을 잘 컨트롤해서 귀가도 문제없습니다. 술 마신 다음 날도 개운한 편이에요. 술 병도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같이 마셔도 남들보다 정신이 맑은 탓에 취한 사람들을 똑똑히 보고 기억해 왔어요.
취객의 천태만상을 보고 있노라면 사실 기가 막혀요. 정도 많이 떨어지죠. 그들은 이미 친한 친구, 선배, 동생이 아닙니다. 제3의 자아가 튀어나온 좀비에 가까워지죠. 취해서 아름다운 사람은 없잖아요. 문제는 뒤 처리(?)에요. 인사불성이 되어 주정, 술버릇을 해대며 막무가내인 그들을 아무리 성인이라도 놓고(?) 갈 순 없고 곤란해집니다. 네, 술에 취해 제 발로 집에 못 갈 때까지 마셔버린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취객에 대한 가장 좋은 대처는 가족에게 인수인계하는 겁니다. 보호자를 부르거나 보호자에게 데려다주면 깔끔합니다. 이것도가족에 대한 정보가 있었거나 최소 취객이 전화번호, 주소라도 불러 줄 정신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술이 조금 깰 때까지 같이 기다려 주기도 합니다. 숙취해소제나 시원한 음료라도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정신이 들면 헤어집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술이 깰 사람이면 그렇게 마시지도 않았고, 술이 빨리 깨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럴 때 동성이고 친분이 있는 사이라면 집에 데려가 재워 주기도 합니다. 누가 취한 나를 데려가서 안전하게 재워줬다면 그분에게 삼천배를 올리세요. 찐친이 맞고, 아끼는 마음이 없다면 절대 하지 못합니다.
술잘알인 덕분에 위 사례는 제가 많이 했던 뒤치다꺼리입니다. 사실 저 과정에서 열거하기 어려운 지저분하고 인간 이하의 꼴을 많이 봤습니다. 취해서 옷이 올라갔는지 반쯤 벗겨졌는지 알지 못했던 대학 동기, 회식 중 취해 직장 상사를 넘어 뜨려 이빨까지 부러지게 한 김대리, 술 마시다가 호프집 유리문을 깨뜨린 K, 취해서 귀가하다가 명품 클러치 잃어버린 박차장님, 술 먹고 우산, 지갑, 휴대폰 숱하게 잃어버린 남편, 제 신혼집에 구토, 노상방뇨했던 남편 후배, 온갖 쌍욕을 퍼붓던 점잖았던 선배님, 계속 침을 뱉어서 귀에 봉지를 걸어 주었던 P, 취하면 아무 데나 쓰러져 자던 대책 없던 최과장, 취기에 아무 사람이나 껴안고 뽀뽀하던 선배.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꼴들을 많이 본 덕에 저는 술을 잘 먹지만 좋아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저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취하기 전까지만 먹고 일어나려고 노력합니다.
술을 잘 마신다는 건 자랑 거리가 아닙니다. 취한 사람 조금 도와준 것도 생색거리는 아니죠. 술잘알로 한 마디 해야겠다 생각한 건, 며칠 전 지하철에서 생긴 일 때문이에요. 야근하다가 환승하려고 지하철에서 막 내렸을 때였습니다. 취한 여학생이 정신을 잃고 기둥에 기대 주저앉아 있더군요. 그 주위로 토사 무덤이 몇 곳 있었고, 비둘기 백 마리는 먹어 살릴 양이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자원봉사자가 행인들이 토사물을 빙 둘러서 가도록 안내하였고, 두 명의 환경 미화 여사님이 토사물을 치우고 계셨습니다. 일행으로 보이는 여성 두 분도 안절부절못하며 여학생을 지키고 서 계셨어요. 이미 뒤치다꺼리를 하는 분들이 있었음에도 술잘알로서 같은 여자로서 딸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발이 안 떨어지더군요.
여학생 곁의 여성 두 분은 지인이 아니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마음에 차마 자리를 뜨지 못했던 거지요. 한 분은 이미 경찰 신고를 하셨고, 여학생 부모님께 전화도 해 주셨더라고요. 요즘 세상에 이렇게 고마운 분 또 없습니다. 불행인 것은 부모님께서 지방에서 올라오는 길이라네요. 우리는 경찰관을 기다렸습니다. 그 사이에 조금 더 토하고 우는 그 학생을 환경 미화 여사님들이 토닥이고 침도 닦여서 의자에 앉혔고, 자원봉사자께서 생수도 사다 주셨습니다.
밤이 늦은 시간이었는데 다들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자식 대하시듯 염려하며 도우셨어요. 저도 그분들을 도와 여학생을 부축하고, 달래기도 하고, 신상을 물어보기도 하였습니다. 경찰관이 와서 다시 부모님과 통화를 했지만 집에 아무도 없어 데려다줄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여학생이라 각별히 더 조심하시는 게 느껴졌습니다. 여학생을 파출소에 보호하고 있겠다고 데리고 가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습니다.
짐작건대 그 여학생은 이번에 스무 살이 된 새내기가 아닐까 싶네요. 이제 나도 성인이니 친구들과 금기였던 술을 마음껏 마셨겠죠. 머리는 빙그르르하면서 몽환적인 기분도 들고, 얼굴은 발그레지면서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을 겁니다. 친구들도 즐기니까 비우고 마시고, 마시고 비우고 그랬을 거예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 학생과 다른 점은 음수저라서 덜 취했고, 실수하기 전에 술잔을 내려놓았고, 술과 내 몸이 반응하는 상관관계를 일찍 파악해서 컨트롤했다는 점입니다. 막 먹지 않고, 조심해서 먹었고, 어떤 술을 얼마나 어떻게 먹었을 때 내 몸이 어떻게 변화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자제했습니다.
경험이 쌓이면 알 수 있는 것들이죠. 하지만 새내기 여학생은 음주 노하우를 갖기도 전에 실수를 해 버렸네요. 그전까지 국영수만 익히느라 배울 길이 없었겠죠. 그래서 제가 음주 행동 요령을 가르쳐 드리려고 합니다. 잘 들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