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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온 Feb 25. 2024

3월 2일마다 새로 태어납니다

to the next level 0302

학창 시절, 새 교실에서 처음 보는 선생님, 낯선 친구와 덩그러니 쓸쓸했던 그날이 생일이었다. 오늘 주인공이지만 누구 하나 알아줄 리 없었다. 억울하고 꽁한 마음에 그날은 입이 삐쭉 나와 있었을 거다. 지난해, 친구 생일을 부지런히 챙겨 준 보람도 없었다. 새 학년, 새 학기의 어색함과 긴장감이 가득했다. 생일자의 존재감을 뽐낼 수가 없어 초조했다.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불시착한 사람처럼, 시공간을 잘못 찾아온 사람처럼 허둥대던 날이었다. 



생일보다 개학, 등원, 입학하는 날로 상징되는 3월 2일. 그날 태어난 대가로 개학식, 입학식이 파티 대신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축하를 즐길 여유도 없었다. 다른 날 태어났다면 초대장 돌리고, 친구를 몰고 집에 가는 신나는 하루였을까? 방학이었으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세리머니를 했겠지? 학기 중이었다면 수북한 편지와 쌓아 올린 선물 상자에 파묻혀 행복했을까? 생일날마다 미련이 가득한 상상을 하곤 했다.  


가끔 3월 2일이 평일이 아닌 주말이면 그 자체가 선물이었다. 운 좋게 방학 끝 무렵에 생일이 걸렸던 적도 있다. 의리 있는 친구들이 집에 찾아와 주인공 대우를 받았다. 드디어 생파란 것을 제대로 해 보았다. 엄마의 생일상도 거하게 받았던 온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머릿속 로망을 실현했던 행복했던 진짜 나의 날이었다. 마흔네 번의 생일 중 이 날을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는 걸 보면 얼마나 기다려 즐긴 것인가 싶다.    


어른이 되면 달라질 줄 알았다. 학교에 얽매지 않고 파티도 마음대로 열고 친구도 많이 초대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모든 시작은 3월부터라고, 3월부터 일을 벌이자고 약속이라도 한 건가? 사회인이 되자, 3월에 시작하는 사내 이벤트, 새로운 프로젝트를 챙겨야 해서 또 생일이 뒷전이 됐다. 결혼해서 자녀를 키우자 아이들의 개학, 입학을 챙기기 바쁘다. 어린이집, 학교에 쫓아다니며 틈틈이 회사 일을 신경 쓰며, 생일 축하 메시지에 답까지 하느라 혼쭐이 난다. 철인 삼종 경기가 아니고 무엇이랴. 분명 만찬을 먹고 있는데 코로 먹는 기분이랄까. 참 고맙고 좋은 날인데 몸과 마음이 이리도 고될 수 없다. 


사실 생일마다 나보다 고초가 큰 사람은 엄마였을 것이다. 아이 생일 챙기며 개학, 입학에 동참하며 이벤트 있는 날 태어나 맘 편히 즐길 수 없다는 원망까지 들으며 눈치를 보셨을 것이다. 엄마는 그날마다 다른 가족의 일상까지 챙기며 철인 4, 5종 경기를 뛰고도 남았으리라. 그런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보다 왜 이런 날에 낳으셨을까 했으니 등짝 스매싱 감이다. 생일날은 축하 파티와 주인공 놀이가 전부인 줄 알았던 철딱서니였다.  




3월 2일 탄생은 낯선 환경에서 두려워하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축하에 소외되는 날도 아니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다음 레벨로 넘어가라는 뜻이었다. 새 학년으로 다시 태어나는 나, 초등학교 학부모로 시작하는 나, 새로운 프로젝트로 성장하는 나처럼 다음 단계로의 진입이었다. ‘탄생’은 ‘태어난다’와 ‘시작한다’는 뜻이 함께 담겨 있다. 시작과 함께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운명의 주인공이었음을, 축복받은 날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더 일찍 알았다면 도전해서 성장하는 사람이라는 하늘의 명을 기쁘게 받아들여 잘 살지 않았을까.  

  

만화 심슨 패밀리의 에피소드에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렸나요, 그건 산타의 생일이죠’라는 대사가 나온다. 산타에 대한 많은 유래, 전설이 있지만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전하는 가상 인물로 탄생했단 점에서 그의 생일은 크리스마스가 맞을 것이다. 나라면 왜 이렇게 바쁜 날 태어나서 축하도 못 받고 고생하나 한탄했을 것이다. 산타는 그런 기색 없이 행복한 미소로 부지런히 썰매를 몰며 온 세상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전한다. ‘축복을 나눠주는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본인의 운명을 선물로 받아들였음이 틀림없다. 


일주일만 있으면 생일이 돌아온다. 무려 토요일이다. 올해는 또 무엇에 도전해서 새롭게 태어날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나의 시작과 출발, 도전은 3월 2일부터니까. 그날부터 나의 성장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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