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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온 Mar 31. 2024

태풍을 만나도 아빠가 있단다

태하민유네 편지 1. 아빠가 아들에게  

아들, 우선 언제 그렸는지는 모르지만, 이 그림에 편지를 써서 미안해. 

아빠는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참 행복했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감성과 감정, 생각과 표현이 풍부하다는 증거거든. 

그림 몰래 본 건 미안한데, 스케치북을 보다 문득 이 그림이 눈에 들어와서 편지를 쓰게 되었어.

 

사실 민우가 시간 날 때마다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네가 그리는 모습만 보았지 그림에 대해서는 보고 있지 않더라. 

민우도 어릴 적에 "아빠, 나 그림 멋지지?" 이렇게 이야기했었는데 커서는 보여주지 않더라고.

아빠도 잊고 있었고. 그런데 오늘 민우가 속상한 날이라서 민우방에서 아빠가 잠깐 생각을 하다가 

겹겹이 쌓여 있는 스케치북을 보고 궁금해서 펼쳐 보았어. 미대 나온 아빠 아들 맞더라. 


수많은 그림 중에서 이 편지 배경으로 있는 '유조선'을 보다가 

빗방울 속에서 나 홀로 항해하고 있는 모습이 들어오더라. 마치 우리 민우처럼. 

처음에는 배만 보다가 배 주위에 빗금처럼 흘러내리는 연필 선을 보고 알았지. 

그런데 왠지 민우 오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무언가 잔뜩 실어서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태풍하고 암초가 있는 느낌. 

주위에서 항상 도와주던 뱃사람들은 어디로 가고 마치 혼자 있는 느낌. 

그동안 말하려고 했지만 말할 수 없던 상황. 


중학교에 입학하고 할 일도 많아지고 책임감도 커지니까 혼자 막막하고 버겁지 않았을까 싶어. 

할 것 투성인데 방법도 잘 모르겠고 잘해 보고 싶다가도 다 놓고 싶기도 했을 거야. 


네 마음을 진작에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아빠가 널 다그치고 말았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아들이 나보다 더 바르게 살고 

잘 지내고 행복했으면 해서 엄하게 규칙도 잘 가르쳐서 키워야겠다는 생각 했나 봐. 

그것이 강요가 되고 부담이 된 것 같아. 

 

민우야 아빠는 1등, 좋은 성적, 학교 상장, 이런 거를 바라는 게 아니란다.   

민우가 살면서 난 참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면 좋겠어. 

사실 아빠는 엄마와 민우, 유림이와 함께 살면서 내 일을 하면서 행복하다고 느끼거든. 


민우가 뭘 하며 어떻게 살면 만족스럽고 즐겁게 지낼지 한 번 고민해 보겠니. 

그 여정에 언제나 아빠가 함께 할게. 태풍과 암초 같은 시련을 만나도 아빠와 

함께 고민하며 헤쳐나갔으면 한다. 넌 혼자가 아니란다. 

아빠가 네 곁에 있다는 걸 꼭 기억해 줘. 사랑해. 



안녕, 아빠! 

아빠 편지를 읽고 많이 고민이 됐어요.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걱정을 끼쳐 드렸네요.

앞으로 숙제를 귀찮아하지 않고 성실하게 해 볼게요. 

한라산 갔을 때 제가 목이 마를까 봐, 아빠는 물도 드시지 않고 나눠 주셨죠. 

그때 참 감사했어요. 저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느꼈답니다. 

다음에도 같이 산을 다니면서 추억을 많이 쌓아가면 좋겠어요. 

저 다치고 아플 때마다 상처를 치료해 주시고 먹는 약도 챙겨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항상 잘해 주시지만 제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또, 짜장면 먹을 때 꼭 4등분으로 잘라 주시는데 한 번만 잘라 주시면 좋겠어요. 

사랑해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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