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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앞두면 저마다의 방식으로 마음의 준비를 한다.
마음의 준비 운동이라고나 할까.
가볍게는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부터 시작하여, 산에 오르거나 목욕재계를 하는 등 자신만의 루틴을 따르는 이들도 있다.
나의 경우로 말하자면, 새로운 일을 앞두면 그와 관련된 책을 읽는 습관이 있다.
임신과 육아 역시 예외는 아니라, 나는 아이를 뱃속에 품은 채로 여러 육아서를 읽었다.
신생아 육아서는 공통적으로 먹, 놀, 잠, 이 세 가지가 신생아에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먹'은 먹기, '놀'은 놀기, '잠'은 잠자기이다.
나는 갓 태어난 아이일수록 '먹잠'을 반복하다가 개월수가 늘어나면 '먹놀잠'의 패턴을 형성한다는 본문에 밑줄을 그으며 머릿속에 그 내용을 되새겼다.
먹놀잠. 이것만 잘하면 된다는 거지.
다음으로 나는 개월수에 따른 분유 수유량과 수면 시간을 확인했다. 내용은 보기 쉽게 표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아이는 이렇게 먹고, 이렇게 자는구나. 오케이.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충격적이었던 산후조리원에서의 마지막 날 밤을 시작으로 쌍둥이 육아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아이들은 육아서처럼 꼬박꼬박 잠들지 않았다. 분유를 먹는 양도 들쭉날쭉했으며 잠드는 시각, 일어나는 시각 역시 정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최대한 아이들에게 '루틴'을 적용하려 했다.
당시에는 루틴을 지키는 게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여러 육아서에도 큰 글씨로 적혀 있지 않았던가. 일정한 수면 의식을 반복하는 것이 아이들의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루틴을 지킨 건 나의 강박 때문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상상도 못 한 일이다. 내게 강박이 있다니. 나는 스스로가 적당한 틀 안에서 자유를 추구하며 산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출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정한 '적당한 틀'이 무너질 일이 없었단 점이었다. 먼저 나는 수면 시간이 굉장히 규칙적이었다.
평일에는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어 6시 30분경에 일어났다. 주말에도 밤 12시를 넘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기상 역시 오전 10시를 결코 넘기지 않았다.
식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일에는 삼시 세끼를 일정한 시간에 챙겨 먹었고, 주말이면 두 끼를 배부르게 먹었다.
수면 시간과 식사 시간이 불규칙하게 변하면 나는 굉장한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나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내가 그렇게까지 예민하다는 걸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체력에 맞추어 최적화된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
수면 시간이 확보되지 못하자 나는 매일을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살았다. 그탓에 신경은 예리하게 날이 섰고, 통제되지 않는 모든 상황에 나는 화가 났다. 신생아 육아란 전적으로 내 통제 밖이니, 나는 하루 종일 화가 나 있던 셈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분풀이를 할 리도 없었다. 간절한 기도 끝에 만난 아이들은 내 삶의 유일한 낙이자 한 줄기 빛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통제할 수 있는' 자잘한 일상에 신경을 쏟았다.
실내 온습도는 일정 수준을 반드시 유지해야 했다.
아이들은 개월 차에 맞는 분유량을 반드시 먹어야만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이들은 분유를 잘 먹었다.)
아이들의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은 매일 같이 기록되었으며, 나는 그 시각이 삼십 분 이상 차이 나지 않도록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두 아이를 모두 만족시켰으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소망이와 희망이는 먹, 놀, 잠습관이 전부 다른 아이였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소망이는 육아서에서 튀어나온 듯한 아이였다. 먹는 시간, 자는 시간이 대체로 일정했고, 우는 것을 달래주고 조심스레 침실을 떠나면 혼자서 조금 칭얼대다가 잠이 들었다.
반면 희망이는 육아서에서 '안 된다'는 것만 원하는 아이였다.
희망이는 항상 안겨 있길 원했고, 누군가와 살이 맞닿아있는 걸 좋아했다. 따로 재우기 위해 울려보았더니 한 시간이 넘게 목이 쉬어라 울고도 잠들지 않았다. 그 뒤로는 밤에 잠드는 걸 더 무서워해서 결국 나는 밤새 희망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자야 했다.
'백일의 기적'이라고 하는 통잠 역시 희망이와는 먼 얘기였다. 희망이는 24개월, 두 돌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밤에 쭉 잔 적이 없었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희망이를 맡길 순 없었기에, 나는 밤마다 잠들지 않는 희망이와 전투를 벌였다.
제발 자라, 제발 잠 좀 자.
신경이 곤두서서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현재 나는 1년이 넘게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으니, 그때 느꼈던 신경통은 거짓이 아니기도 했다.
브런치 첫 글에 나는 이미 밝힌 바가 있다.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파도타기에서 나는 번번이 짠 바닷물을 들이마시기만 했다고.
돌이켜 보면 이 글은 제목부터 말이 안 된다.
먹, 놀, 잠습관이 '다른' 아이를 '같이' 키운다니.
다른 것은 다른 것이다. 다른 것을 같게 만들면 안 된다. 먹, 놀, 잠습관이 다른 아이를 하나의 루틴에 맞추어 키우는 건 완벽한 실패였다. 초보 엄마였기에 했던 무식한 실수였다.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결코 아이들의 먹놀잠을 정해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이가 먹고 싶어 할 때 먹이고, 졸릴 때 재울 것이다.
놀고 싶을 때 놀아줄 것이고, 예쁘게 웃을 때마다 같이 웃어줄 것이다.
한 끼를 좀 적게 먹으면 어떤가. 다음 끼니때 많이 먹으면 된다.
하루 좀 적게 자면 어떤가. 사람은 피곤하면 자게 되어 있다. 전날 적게 잤다면 다음 날은 오래 잘 것이다.
소망이는 소망이대로, 희망이는 희망이대로, 나는 또 그에 맞추어 적당히 그때그때 하루를 보낼 것이다.
정답이 없는 것이 정답인 것을, 따로 정답이 있는 줄 알고 고생만 잔뜩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