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그저 그런 생활의 한 묶음이었다.
태어나 젖을 먹고, 기어다니고, 걸어 다니고, 유치원에 갔다 학교를 가고 취직한 삶. 너무나 평범하고 고요해서 누군가가 “지금까지 해본 가장 특별한 일이 뭐야?”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 말에 대답 못 할 것이다..
처음으로 ‘퀴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터무니없게도 만화 덕분이었다. 별생각 없이 본 만화에선 그녀들끼리의 사랑이 보였다. 가장 유명한 대사는
“사랑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 였을 만큼 사랑의 힘을 강조하는 듯한 내용 사이에선 초록색 머리의 여성과 노란색 머리의 여성 캐릭터가 가장 많이 생각에 남았다. 서로를 향한 사랑. 나는 그게 우정인 줄 알았으나 검색해 보니 그건 사랑이었다. "그들은 이런 관계이고 이런 스토리가 있구나." 그걸 깨닫고 비로소 나도 첫걸음마를 뗀 것이다.
그 후엔 자연스럽게 그래, 그런 것이 있구나 하고 지냈던 것도 같다. 어렸을 때부터 ‘그래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을 주로 하던 나는 퀴어마저도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겨버리고 자세히 공부할 생각은 하지 않은 체 그저 그렇게 넘어가는 듯했으나 문제는 다 커서 찾아왔다.
어렸을 때는 넘겼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내 주위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았거나 쉬이 인정하고 다니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나서는 ‘퀴어’라는 것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고 그러므로 인해 그에도 종류가 다양하게 있으며 그 종류 중에서도 또 갈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러면서 시작된 내 고민은 “나라는 사람은 대체 무엇인가”였다. 넌 여성이니? 묻는다면 음... 난 분명 여성이 맞았다. 그렇다면 시스젠더 여성에 동그라미, 남성을 연애상대로 생각하니? 동그라미, 여성은 어때?... 잠시 고민했었지만 나는 이내 동그라미를 쳤다. 이로써 난 양성애자, 즉 바이섹슈얼의 시스젠더 여성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성과는 사귀어 본 적이 없는데 내가 정말 바이가 맞을까? 라는 질문에 내 친구는 그럼 바이로맨틱 헤테로섹슈얼이네.라고 대답했다. 처음인 뭐?라고 반문했지만. 말을 들을수록 그에 대해 이해했고 받아들였으며 더 생각할 만한 것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물론 이것 말고도 더 많은 성정체성과 지향성이 있지만 사실 난 아직 공부가 덜 되어있다 나에 대해 알아보는 것만 해도 벅찼기 때문인지 아님 내가 아직까지 그렇게 간절하지 않아서인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아는 정보들은 거의 다 친구들이 이런 게 있어.라고, 말해주어 알거나 추천받아 본 책들에 실린 내용을 ‘그렇구나!’ 하고 습득했을 뿐이었다.
고등학생 때 특별히 좋아하고 따르던 나이 지긋하신 수학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득실한 교회의 신자였다. 한 날은 점심을 맛있게 먹고 운동장에 나가 한 바퀴를 돌려 했더니 선생님이 서 계시길래 쪼르르 달려가 당장 물어보았다.
“선생님, 선생님은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유라야 그것은... 그것은 몹시 나쁜 것이야.”
“네?”
“그건 하나님이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한 짓이다 알긋나?”
그 후였을까. 선생님을 약간 멀리하게 됐다. 차마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생님 앞에서 저는 여성도 좋아할지도 몰라요.라고 말하기엔 세상은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학교 선생님께 말하면 애들한테도 퍼질 것이었고 그렇게 되기엔 아직 학생이었기에 친구를 잃을까 무서웠던 나는 숨기기를 결심했다. 그래서 그냥 선생님을 뒤로하고 종이 칠 때까지 운동장을 하염없이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다가 들어갔던 것도 같다.
아직도 난 그 운동장을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 큰 나는 어디 가서 말하는 걸 주저하지는 않는다. 숨기지도 않고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 당당하게 말하면 될 것도 가능하고 안될 것도 가능하다.
“난 바이섹슈얼이야. 여자도 좋아하고 남자도 좋아해.”
그러면 숨어있던 친구들이 수줍게 용기를 내기도 하고 당당함에 기가 질린 친구들은 그래? 하고 얼떨떨하게 넘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그럴까 나는 조금 더 당당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SNS를 시작하고 나서는 전 이런 사람입니다. 제가 더 배울 수 있도록 저와 친구가 되어주세요.라고 글을 올리기도 하고 그나마 할 수 있는 일본어까지 동원하여 친구를 사귀게 되기까지 진화했다.
어느덧 성인이 되고 나서는 노력한 덕인지 여러 친구를 사귀게 됐다.
본인이 여성애자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그게 동성애와 뭐가 다르냐 물었던 내가 기억난다. 그녀도 그도 아닌 내 친구는 자신의 성을 알 수 없다 그랬다. 확실한 건 자기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라는 것 그러니 동성애자가 될 수 없으며 엄연히 말하면 여성애자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날 밤 여러 대화를 나눴다.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말, 당사자만 할 수 있는 농담들에 그날은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술병을 비워나갔다.
처음이었다. 그 자리는 막말로, 헤테로가 성소수자인 곳이었다. 10명 중 단 둘 밖에 없는 시스젠더 헤테로여성들을 두고 우리는 깔깔거리며 이 농담 저 농담을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친구 집 이불을 개켜가며 생각난 한마디를 툭 뱉었다.
“나, 처음이야”
“뭐가?”
“눈치 보지 않고 공공장소에서 이야기해 본 거”
이렇게 다 같이 모여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이 처음이었다. 물론 SNS상에서 간혹 화자 되어 나오는 말들에 끼어들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필담이었고 이런 가벼운 느낌이 아닌 주제에 대한 토론이었다.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이 주제에 대해 논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앞서서 나는 당당하게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내심 불안해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때였을까 난 굳이 말해야 하나 싶어 말하지 않고 있던 소꿉친구들을 불렀다.
“나 사실 바이야.”
“나도 바이야”
“나도인데?”
허무한 결말이었다. 내 소꿉친구들이 전부 다 바이라니. 난 열심히 생각해 가며 말한 것인데. 생각해 보니 내 친구들은 나보다 먼저 나서서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고는 하였다. 앗차. 싶었다. 차라리 분위기를 잡지 말고 편하게 말할걸. 그날 우리 셋은 술을 마시며 왜 남자가 별로이고 때론 여자가 별로인지 어떨 때는 좋은지에 대하여 신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가 아마 두 번째였을 것이다. 내 자유로운 대화 말이다.
그저 것이 너무나 신이 났다. 밝게 웃음이 펼쳐져 나왔다. 그뿐이었다.
내 삶은 그저 그런 생활의 한 묶음이었다.
별다른 일 없이 그저 흘러만 간다.
누군가가 “지금까지 해본 가장 특별한 일이 뭐야?”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 말에 대답 못 할 것이다.
갑자기 내가 이 말을 왜 다시 흘렸냐 하면, 퀴어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퀴어는 틀린 것도 다른 것도 아닌, 그냥 옆집 사람, 혹은 내 동생, 때로는 옆 반 반장, 혹은 우리 회사 과장님일 수도 있는 흔하 흔한 ‘평범함’이다.
흑인 혐오를 하지 마세요, 약자를 혐오하지 마세요. 당연한 말들 가운데에 ‘성소수자를 혐오하지 마세요’라는 말이 있다.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여러 종류의 포비아들은 세상에 널려있다. 그들에게 ‘우리도 평범한 사람이에요’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는 대중매체가 필요하고 또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인플루언서들의 행동과 바람 또한 필요하다.
나의 삶은 평범한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은 평범한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세상이 조금 더 괜찮게 바꿔갔으면 하는 게 나의 소망이다. 그때에는 무지개가 활짝 피고 우리는 각각 자신의 깃발을 들어 올려 외치는 것이다. 사랑엔 아무런 조건이 붙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러고 나서는 개개인에게 자유로워질 당연한 권리가 있다는 것을 외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지나가야 한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모두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지향성에 대해 당당하게, 당연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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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그저 그런 생활의 한 묶음- 문예지에 실린 내용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