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원의 대상이 아니다.

by 오늘핌

최근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임신 중 유산된 사례에 많이 노출되고 출산 중 산모가 사망한 뉴스도 몇 차례 떠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런 내 불안함을 아는지 아기는 매일 내가 일어날 때마다 그리고 매일 잠들기 직전 열심히 꿈틀거리며

'엄마, 나 잘지내요.' 하며 신호를 보내주는 것 같다.


태동이 활발해지면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감사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 것이 최근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다.


믿음, 소망, 사랑을 강조하는 교회를 십 년 넘게 다녔을 때 보다 지금 더 믿음과 소망과 사랑, 그리고 감사를 느끼고 있다. 감사하다는 감정을 이렇게 오래도록 유지하며 지낼 수 있다니 너무나 신기한 현상이다.


나는 딱히 종교에 의지하는 타입도 아니고 믿음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내가 알기로 어머니도 딱히 종교가 없던 분이였다. 그러던 사람이 어느날 종교를 가져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 것은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청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종교에 기대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진짜로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지는 모르겠으나, 기적이 일어나면 좋고 아니여도 당신의 마음을 위로해줄 어떤 초월적 존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엄마 손에 이끌려 5살때 부터는 절에 따라 다녔다. 산 중턱에 있는 절까지 힘들게 가서 법회에 참석하고 시주도 드린 지 2년 쯤 되었을 때, 엄마는 갑자기 절에 발을 뚝 끊었다.

절에서는 그다지 신통한 효염을 느끼지 못했는지 내가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지인의 전도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경의 구절과 목사님의 설교에 퍽이나 위로를 받았는지 아니면 교회라는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친교를 쌓는 것에 재미를 느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엄마는 주일 예배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열리는 거의 모든 예배와 소모임 활동에도 열심히 참석하는 꽤 성실한 신도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빠도 전도시키고 고모와 삼촌들에게도 교회를 다녀야한다고 설파를 해서, 그대들은 다니진 않았지만 조카들은 엄마가 원하는대로 여름 성경학교며 해외 단기 봉사활동도 다녀오거나 심지어는 대학교도 기독교인 사이에서 유명한 대학에 입학해서 전도를 시킨 엄마에게 뿌듯함을 안겨줬다.


반면 나의 교회생활은 매우 불만족스러웠다. 그 당시에는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불쾌감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교회에 갈때마다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고 나의 자존감과 존엄성이 무너지는 듯 했다.


나는 일요일에 꿀같은 늦잠을 포기하고 아침 예배를 드리러 가야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고, 교회에서 얻는 것도 별로 없다고 했으나, 엄마는 어떻게든 나를 혼내면서 교회에 보냈다.


나도 내가 왜 싫은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에 내 감정에 대한 느낌을 엄마에게 말할 수 없었고, 엄마도 그냥 사춘기 소녀의 투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더이상 교회에 가지 않는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교회는(다른교회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부활절 쯤에는 고난특별주간 예배를 드리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의 기적을 바라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도 제목을 받아서 모든 성도들이 다같이 기도하는 식이었다.


예를 들면, 어떤 권사가 '어머니가 3기암이라 기적이 필요합니다.' 라고 기도 내용을 사전에 신청하면

대형스크린으로 '김ㅇㅇ 권사의 어머니 암 극복 기도' 라는 문구가 뜨면서 모든 성도와 목사들이 한 5분 동안은 그 성도를 위해 기도를 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그 예배에 참석한 나는 어느 순간 깜짝 놀랐다.

기도 제목에 '이ㅇㅇ 집사의 자녀 2명 청력 회복' 이라는 문구가 떴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사춘기 소녀였고, 나는 내 청력이 기도로 고칠수 없는 영구 장애라는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단 한번도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 적이 없었다. 교회를 다니면서 무수히 많은 기도를 해봤지만 나는 내 청력에 관한 주제로 기도를 드린 적은 절대 없었다.


나조차도 그런 기도는 드리지 않는데, 나를 제외한 십수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목사님이 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기도를 하다니...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너무나 기괴했다.

나는 적어도 스스로 청각장애가 구원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학적으로 어떻게 회복될 수 없는 영구적 신경 손상이니, 기도에 기대 기적을 바라는 것보다 언어치료나 발음 향상을 위한 교육이나 발성 훈련 등으로 아이를 지원해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를 아는지 모르는지, 치료비가 아까워서 그런건지, 아니면 정말 기적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지, 그런 보조적 치료 수단은 건너뛴 채로 기도에만 목매는 부모와 어른들을 보면서 나는 점점 할말을 잃어갔고 나를 불쌍한 대상으로만 쳐다보는 교회와 그 사람들에게 질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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