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예정된 운명 사이에서

by 오늘핌

남매 둘다 청 신경관이 결손되는 일이 얼마나 흔할까.

조부모와 그들의 부모에게도 이런 장애는 없었다고 하는데.

양가 집안 통틀어 돌연변이처럼 우리 두 사람이나 발현된게 자라면서 항상 의아했다.


그리고 임신한 후 얼마되지 않아 오빠에게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예전에 엄마가 오빠네 부부와 함께 조카를 돌보면서 새언니에게

'아유~ 나 얘네들(우리 남매) 키울 때 잠깐 침대에 올려두고 나갔다 왔는데, 돌아오니 둘 다 땅에 떨어져 얼마나 울고 있던지~' 라고 하셨단다.


본인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자각하지 못한 채 자랑은 커녕 지탄 받을만한 일을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말씀하시는걸 들으면서 새언니와 오빠는 속으로 뜨악했다고 한다.


평소 오빠네 부부는 엄마와 살림 스타일이 맞지 않아 도움 받는 것을 극구 사양했는데, 이후 오빠와 새언니 모두 '절대 어머님에겐 아이를 맡기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했단다.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 사고가 결정적으로 청각장애를 유발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고 이후로 동시에 둘다 청력이 손실된건 아니니까.


그러나 그런 사고가 있었다는걸 십수년이 지나고 나서야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살짝 어이가 없기도 했다.


엄마는 우리가 자라면서 항상 '내가 잘못 낳아서...'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엄마의 해결책은 항상 이런식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으면 그걸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거나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하는게 좋을텐데, 그런 노력은 하지도 않은 채 항상 자기가 잘못했다는 말로 자식들에게 죄책감을 심어 놓고 기도에만 의지했다.


중학생이 된 후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필리핀 같은 가까운 나라에서 단기 어학연수를 받고 싶었으나, 또 '에휴...내 잘못이지 뭐 이렇게 낳은 내 탓이지...' 타령해서 입을 꾹 다물게 되었다.


예를들어, 비용 마련이 어렵다거나 아니면 안전이 걱정된다 라는 식으로 납득가능한 이유를 설명해주면 좋을텐데, 엄마가 본인 탓을 하는 것을 보며 '내가 불효가 되는 말을 했구나'하며 불편한 감정의 씨앗을 심어주며 무슨 말을 못하도록 입을 틀어막는 것이 항상 답답했다.


예전에는 나에게도 아이가 생기면 엄마의 행동과 말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엄마는 내가 엄마를 원망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방어기제로 표현되는걸까?

엄마의 의도가 뭐였던 간에 그런 회피성 발언은 있는 문제도 덮어버리는 엄마의 스킬이자 특기였다.


남편과 남편의 집안은 건청이지만, 청각장애가 유전이 될 수 있는 확률이 있으니, 내 아이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 시점이 조금은 두렵다.


실제로 아는 여자 지인은 혼자만 청각장애이고, 남편도 건청인이었으나 아이도 결국 청각장애 판정을 받게 되었다.


어차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설령 불안한 마음이 현실이 되더라도 잘 대처해나갈 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또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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