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을 수 없는 3가지 핑계

by 오늘핌

어릴 때 청력이 손상되고, 자라면서 이런 저런 한계에 부딪히다 보니 은연중에 '나는 아이를 기를 수는 없겠구나.' 하는 마음이 슬슬 피어나 20대 후반부터는 확고히 자리 잡았던 것 같다.


핑계라면 핑계지만, 지금 당장 내가 아이를 키운다면 우려되는 점만 해도 크게 3가지가 떠오른다.


첫째로는 소리에 민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기의 울음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말하지 못하는 아기의 욕구에 발빠르게 대처해야할텐데, 이건 내가 명백히 잘할 수 없는 분야다. 나로 인해 아기가 불편함을 겪거나 타이밍을 놓쳐 혹시라도 큰 병을 얻게 되는건 아닐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냉장고 문이 꽉 닫힌지 모르고 짧게는 몇 분, 길게는 한 시간이나 열려 있는 적이 있었다. 경고 소리 같은게 난다고 하는데 나는 듣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정수기나 수도꼭지를 꼭 잠근지 모르고 아주 미세한 줄기 조금 그러나 몇 시간동안 물이 흘러내려 방에 물이 흥건한 적도 있었다. 현관문도 제대로 닫힌지 모르고 몇 시간동안 열려있었으나 지금까지 아무일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안다. 이건 모두 청력이 좋지 않다는 핑계거리라는 것을. 당연히 항상 눈으로 끝까지 확인해야 하는데, 확인한 줄 알았는데 뒤돌아보면 사고가 나있다.


그러나 이건 초기 신생아 시절에만 양가 부모님과 산후도우미의 도움으로 잘 버티면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난이도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문제는 아래와 같다.


둘째로는, 아이와 상호작용이 어렵다는 점이다. 아이의 언어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많겠지만, 주로 엄마가 비록 상대는 답이 없을지라도 수다쟁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건 나의 성향과는 정반대되는 일이다. 평소 과묵한 엄마라도 언어자극을 위해 끊임없이 조잘조잘 말을 걸고 각종 수식어와 묘사를 통해 긴 문장으로 말하는 등의 각고한 노력이 필요하다는데, 나는 발음이 어눌하기도 하고 주변의 눈치도 보여 필요한 말 외에는 잘하지 않으려고 한다.


따라서 나의 빈약한 문장과 표현에 혹시라도 언어발달이 지연 되는건 아닐까하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고, 어눌한 내 발음을 따라해 아이도 어눌하게 말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또 든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아이의 옹알이를 잘 알아듣고 반응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상호작용, 즉 소통이 되어야 언어 자극이 될텐데 음운 분별력이 떨어져 다 자란 성인의 말도 한번에 잘 알아듣지 못하는데 아이와 대화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자꾸만 용기를 잃게 만든다.

한 예로 나에겐 4살이 된 조카가 있는데 조카의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다. 친정 엄마 말로는 자기도 처음엔 잘 이해 못했는데 자꾸 듣다 보면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이 많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나한테도 과연 통할까? 하고 생각해 보면, 결론은 안된다로 귀결된다.

아이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은 라디오 방송이나 자막 없는 한국영화처럼 알아듣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나에겐 국어듣기 평가나, 영어듣기 평가처럼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퍼부어도 결국 풀 수 없는 시험과 같다. 조카가 초등학생이 되면 좀 더 알아듣고 적절한 반응을 해줄 수 있을까?, 내 아이와 대화다운 대화는 언제할 수 있을까?, 대화의 감도가 떨어져도 엄마와 충분한 정서적 교류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여전한 의문이 든다.


셋째로는, 나의 빈약한 사회성이다. 청력이 좋지 않다 보니, 좁지만 깊은 인간관계를 유지 중인데 이로 인해 아이에게 다양하고 넓은 세상을 경험하는데 제약이 있을 것 같다.


청각장애는 외로운 장애이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게 쉽지 않다. 오래된 지인이라면 나의 말을 잘 알아듣고 나도 편하게 말할 수 있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할 때는 본격적인 대화를 하기 전에 꼭 구구절절 나의 상태에 대해 설명을 해야한다. 만약 현 상태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대화 내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눈빛과 대화 중에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갑자기 ' 발음이 왜 그래요? 외국에서 살다 오셨나?' 하는 갑작스러운 무례한 질문이 꼭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청각장애인이라 발음이 어눌하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얼굴을 붉히며 아주 잠깐의 침묵 끝에 '아, 죄송합니다. 몰랐네요.' 하면서 어색하게 대화가 마무리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아주 무례하게도 '왜 그렇게 되었나요?' 하며 취조하듯이 후속 질문들을 하기도하고, 어떤 사람들은 내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뚝 관심을 끊으며 대화를 종료한다. 차라리 후자가 나에겐 더 나은 편이다.


이런 저런 상황을 겪다보니 나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사회생활을 할때 필요한 말 외에는 잘 하지 않으려는 편이다. 이렇다 보니 아이가 커갈수록 사회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 일이 늘어날텐데, 유치원 모임이나 아이들 행사에서 엄마 역할을 자연스럽게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자연스러운 의문이 든다.


다른 엄마와의 교류도 쉽지 않을터인데 그 모임에 속하지 못하면 내 아이만 소외되는 것은 아닐까 또는 나만 놓치고 있는 정보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또 끊임없는 상념의 굴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아이가 커갈수록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텐데 어느 순간 아이가 '왜 우리 엄마는 말하는게 이상하지?'하는 의문이 들면서 '점점 나를 부끄러워하면 어떡하나...',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어느새 사춘기가 된 아이가 나를 자꾸만 무시하는 풍경이 그려져온다.


장애 부모를 둔 자녀가 모두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부모가 어떻게 교육하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보다 더 배려심이 많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데, 나는 너무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 끊임없는 상념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아이 양육에 대해 자꾸만 부정적인 상황으로 몰아가고 자신감이 부족해 성인이 된 후 막연하게 내 인생에 아마도 아이는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인생은 아무것도 단언할 수 없게 만든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