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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쟁이 Apr 12. 2024

갓생과 도파민 사이, 그리운 미지근함 (2)

(2) 갓생과 도파민

고백건대, 반골 오브 반골이었던 나는 노력을 싫어했다. 단순히 노력하기 싫어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노력이란 단어에 거부감을 표했으며, 노력이 표상하는 삶과 현상을 싫어했다. 물론, 시작은 사춘기 시절 부모님의 잔소리가 발단이었을 거다. 그러나, 욕망이 당위와 명분을 만들듯 열심히 굴린 잔머리로 노력이 별로인 논리를 파생시켰다.


노력을 싫어한 이유에는 크게 두가지 차원이 있었다. 하나는, 노력이란 수단으로 무언가를 이루는 모양새에 대해 '멋지지 않다‘고 생각했던 점이었다. 현재는 멋들어진 말로 '미학적으로 구리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모두가 노력을 할 필요는 없지 않냐는 질문이었다. 전자의 생각은 다수의 매체를 접하면서, 설렁설렁 놀면서 1등을 놓치지 않는 미디어 속 천재들을 동경한 것에 기인한다.


한편 후자의 생각은 간단하지 않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언명 앞에 노력은 당연함 그 자체다. 그러나 공부를 통해 성공하는 사람의 숫자가 정해져있음에도 모두에게 "노력해라"라는 말은 어딘가 공허해 보였다. 그 시절 남고의 급훈이었던 '지금 공부하면 미래 배우자의 얼굴이 바뀐다'와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했다. "사람대 사람이 만나는데 학벌 혹은 노력이 얼마만큼의 변수를 차지하는지 계산이나 해본걸까?"와 같은 시니컬한 딴지가 생각을 지배했기에 반감은 더욱 커졌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에서 저때의 생각을 추측해 정리해본다면, 노력이 성과를 보장해주는 것 처럼 보이는 맹목성을 싫어했던 건 아니었을까. 불확실성 속에서 열심히 고민하며 나아가야 하는 인간의 생을 노력이란 가치로 환원시켜 마치 인생이 확실함과 안정만이 가득한 것이라 착각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싫었으리라는 꿈보다 해몽을 해본다.


물론, 현재는 노력의 가치에 깊게 공감하며,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묵묵히, 사력을 다하고자 매일 '실패 하지만' 그럼에도 또 시도 중이다.  




노력은 사실 거창한 개념이 아니다. 누구나 하기 싫은 유혹을 딛고 삶을 영위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비가 오고 눈 오는 평일 아침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회사나 학교로 향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치기로 가득한 어린날의  생각에 힘을 실어주듯, '갓생'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갓생은 대단하다. 누구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에 일어나 자기계발을 하고 삶을 긍정적이고 발전적으로 꾸며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누구나 쉽게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사람들은 그것에 주목하고 콘텐츠로 만들었을 때 파급력이 생겨난다. 그럼에도 한가지 물음을 지울 수가 없다. 긴장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이 불안을 회피하기 위해 노력이라는 맹목적인 수단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한편 숏폼의 등장과 함께 '도파민'이라는 단어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성취감과 보상감, 쾌락의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이 숏폼과 같은 자극을 통해 우리에게 과다 분비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전문가들의 주장이 힘을 얻으며, 현대를 도파민네이션(Dopamine Nation)이라 부르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다.


사실 처음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싶었지만, 어느새 우리의 시야 속에서 삼시세끼나 꽃보다 시리즈와 같은 잔잔한 예능보다 도파민이 분출하는 예능으로 변화하는 현실이나, 예능이나 드라마 혹은 영화의 전체 서사를 소비하기 보다 하이라이트가 되는 요약본을 소비하는 형태를 보면서 인정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도 어느새 숏폼의 편의성에 중독되어 또 다른 컨텐츠를 갈구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며, 2024 트렌드 코리아에서 제시한 도파밍(Dopamine + Farming)이 현실임을 자각했다.


발췌독한 도파민네이션의 저자 애나 램키(Anna Lembke)가 말한 도파민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을 터프하게 정리하자면, 절제하고 항상성을 회복하며, 현실을 직시하면서 사회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절제와 항상성'이라는 지점에서 도파민은 갓생의 안티테제로 혹은, 갓생이 도파민의 안티테제로 기능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이에 도파민에서 벗어나 절제와 항상성으로 돌아가려는 갓생과 현실과 유리되어 도파민을 추구하는 숏폼 중독은 냉정과 열정과 같이, 극과 극의 관계로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중이다. 그런데 숏폼과 갓생의 관계성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지점은, 갓생 살기 루틴을 만드는 브이로거들의 상당수가 '숏츠'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도파민의 대명사가 된 숏폼이 갓생이라는 안티도파민의 수단이 되었다는 지점은 마치 극과 극은 통한다는 격언을 떠올리게 해준다.


물론, 갓생 역시 하나의 문화이기에 현재 가장 전달력이 높은 수단인 숏폼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걸 고려하더라도, 이런 현상은 단순히 매체의 역할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3) 그리움’으로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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