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리움
도파민의 정의를 다시금 뜯어본다면, 결국 도파민과 갓생은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갓생의 성취 이후 찾아오는 뿌듯함은 결국 도파민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갓생러는 열심히 살아가고 그를 달성하는 성취를 통해 도파민을 충족하고 삶의 의욕과 흥미를 얻어가며, 숏폼으로 대표되는 도파민 추구형들은 도파민을 직접적으로 주입시켜 의욕과 흥미를 충족한다.
그렇게 갓생과 도파민은 우리에게 '안정'을 선사한다. 갓생은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숏폼과 같은 도파민은 수많은 자극을 통해, 험난하고 불안정한 사회에서 조금씩 비켜선 스스로의 왕국, ‘만들어낸 안정감’을 구축한다.
아이유의 신곡 홀씨의 가사에서는 어딘가 뿌리내리지 않고서라도 잘 살아가는 '홀씨', "난 기어코 하늘에 필래", "따가운 태양과 무지 가까운 거리까지 올라가 난 무심히 내려보리"와 같이 꽃을 피우기보다 홀씨로서 살아가는 개인들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음원차트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사람들은 홀씨를 통해 위로받는다. 그러나 홀씨인 것을 두려워하고 거부하려고 노력한다. 특별하지 않다는 두려움 때문에 평범함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세상은 불안정하고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불확실성이 너무나도 커졌기에, 편안하고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부유할 수 있는 불확실함 보다, 명확한 정답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들을 추구하는 것 뿐이다. 아련함과 그리움을 가진채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극적인 전개나 확실한 마무리와 같은 ‘꽉 찬 결말’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실이 이미 불확실하기에 미디어에서라도 행동과 생각들이 확실한, 확증을 통해 안정이 추구되는 것들에 끌릴 수밖에 없다. 이에 갓생과 숏폼은 같다. '불안을 회피'하기 위한,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파민네이션 작가가 말하는 도파민으로 부터의 벗어남은, 갓생과 같은 삶이나 숏폼 중독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 즉 아주 평범한 일상을 받아들이고 그 일상으로부터 전제되는 절제와 희망, 행복을 느끼라는 것이다. 마치 지난날의 미디어들 처럼, 미지근한 상태를 받아들이라는 것과 같다. 그러나, 현실속 개인들은 스스로를 숏폼 중독이라 생각하고 도파민을 통제하며 갓생을 사는 삶이 무언가 나의 삶을 보다 충만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더 나아갈 희망을 준다고 믿는다. 세상이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기에 불안정한 상황에서 미지근함은, 현실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그렇다.
아무리 가지고 싶었던 물건도 구매 이후에는 내 물건에 불과하다. 절절히 원하던 목표 역시 달성한 이후에는 다시 평범함으로 치환될 뿐이다. 결국 행복은 어떤 특별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닌, 아주 미지근한 평범한 삶속에서 온다. 어른들이 말했듯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말이다.
그런 일상에 조금씩 균열이 난다면, 내가 알던 우주의 틈이 어느새 내 방을 침범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마 다들 어릴적, 가끔 어둠이 무서울 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잠을 청한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무형의 두려움에 얇지만 무언가 든든한 것을 통해 가로 막는다.
갓생과 도파민은 바로 그 수단이다. 무엇인가를 보장해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어느정도 안정감을 준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행동과 선택들에 이해와 공감을 표하게 된다. 도파민을 통한 '특별함'이 평범한 일상보다 매력적임을 개인적으로도 느끼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아이유는 이번 앨범 소개글의 서두를 '대 혐오의 시대'라 시작하며, "근근이 이어져 온 십몇 년 동안 지치지도 않고 매일 나를 안심시켜 준 누군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라 표현하며 팬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그리고 Love wins all과 함께 좋아하는 곡으로 '홀씨'를 꼽았다. 어쩌면 아이유 역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문화컨텐츠 생산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 이지은으로서 팬들과 함께한 지난날의 일상을 통해 현재를 살아감을 말해주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우리가 미지근한 일상을 추구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냉정과 열정사이,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절절한 사랑 조차 미지근함으로 수렴한다는 것이었다.
미지근한 날들을 애써 외면하며 냉정과 열정 사이, 극과 극을 이동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갓생과 도파민 사이, 우리는 어쩌면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미지근한 삶을 원하고 그리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움은, 닿을 수 없을 때 더욱 커진다. "다녀왔어"라고 할 때, 따뜻함으로 맞아주는 "어서와"가 너무나도 커져가는 나날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