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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샘 Dec 01. 2023

자나깨나 말조심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이 반에 은샘이 누구냐? 좀 따라 나와 봐.


  옆반에서 소위 '날라리'라 여겨지는 학생들 서너 명이 우리 반에 찾아왔다, 나를 만나러. 그 애들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이틀 전 일이 번개처럼 머릿속에 스쳤다. '설마?'가 '아차!'로 바뀌는 데는 불과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가슴이 뜨끔한 걸 간신히 숨기며 무슨 일이냐며 태연하게 따라나갔다. 화장실 문이 덜컹 잠기며, 양변기가 놓인 구석 한 칸에 여고생 여럿이 구겨져 들어갔다. 심장이 당장이라도 몸 밖으로 튕겨져 나갈 듯이 쿵쾅거렸다. 16살 인생 최대 위기다.




  지금도 제법 생생하게 기억나는 소소한 사건이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이게도 내가 재학 중이던 A여고에서 야간자율학습(야자) 참여는 학생 자율에 맡겨져 있었다. 평소 몸이 약하다는 핑계로 정규 수업을 마치면 집에 바로 돌아가곤 했는데, 그날따라 친구들과 함께 야자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을 생각에 어쩐지 설레기까지 했다. 난데없는 의욕이 샘솟았다. 그런데 하필 바로 건너편에 자리한 몇몇 아이들이 속닥속닥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지도교사의 주의를 받아도 그때뿐이었다. 그런데 이 친구들, 멈출 줄을 몰랐다. 아무리 참고 기다려도 조용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공부 좀 열심히 해보겠노라.' 하는 작심삼일의 첫날이 아니던가.


이미지 출처 : Unsplash


  더는 못 참겠다.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그 순간 목표물을 제대로 조준했으면 좀 나았을 텐데. 문제는 내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미숙한 모범생이었다는 것이다. 그 아이들의 목소리를 제외하고는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던 자습실에서 언성을 높일 배짱은 없었다. 상대와의 직접적인 갈등이 겁났던 건지, 문 앞에 앉아계시던 선생님의 꾸지람이 무서웠던 건지 모르겠다. 화는 나지만 해결 방법을 모르던 16살 여고생은 앞자리 친한 친구와 쪽지를 주고받으며 신나게 뒷담화에 열중했다.


           저럴 거면 야자를 왜 온 거니? 다른 사람한테 피해나 주고..
쟤네는 진짜 사회악이다!!


  사회악이라니. 표준국어대사전에 사회악은 '사회적 모순으로 생기는 해악(害惡). 도박, 매춘, 빈곤, 범죄 따위'라고 정의되어 있다. 거침없이 센 발언이었으나 당시에는 정작 그 의미도 정확하게 몰랐다. 무식이 만용을 낳았고 그것이 바로 옆반 학생들이 날 찾아오게 된 경위였다. 살벌하기만 했던 첫 대면과 달리, 그날 화장실에서는 싱겁게도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다소 위협적인 말투로 몇 마디 따지는 데 그쳤고,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선에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요즘은 상상도 못할 만큼 순진한 시절이었다.


  그날 일은 선생님이나 다른 친구들에게 전할 것도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 화장실에서 오갔던 이야기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숨막히던 분위기는 오랫동안 뇌리에 깊이 남았다. 그 후로 나는 자나깨나 불조심, 아니 말조심을 하게 되었다. '말과 화살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한 번 화살을 쏘면 돌이킬 수 없듯이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쉽게 꺼내놓은 말이 부메랑이 되어 언젠가 나를 해할 위험만이 문제가 아니다. 내 말이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그런 의미에서 야자 시간에 떠들었다는 사소한 이유로 얼토당토않은 막말을 들었던 동창들에게도 심심한 사과의 뜻을 전한다.)




  시우(가명)는 나를 꼭 닮았다. 놀이동산의 꽃이라는 롤러코스터도 못 타고,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귀신 이야기에는 아예 귀를 틀어막는다. 어릴 적에는 말보다 몸이 먼저 나오는 짓궂은 친구들 때문에 마음고생도 심했다. 점잖은 선비 같던 아이가 사춘기를 앞두고는 말이 세졌다. 아이의 말을 듣고 있자면 복어가 떠오른다. 복어는 천적을 만나면 물을 들이마셔 몸을 부풀리거나 이를 갈면서 큰소리를 내어 공격을 방어한다고 한다. 가시복은 독이 없는 경우에도 온몸을 뒤덮은 가시를 부풀리면서 적을 위협한다. 딱 그 모양이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시우는 힘도 약하고 겁도 많은 본모습을 감추기 위해 날카로운 말로 실제 체급보다 더 위압적인 위용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시우가 말을 강하게 할 때마다 마음 한편이 불편해진다. 마치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1학년 때 본인을 지긋지긋하게 놀리던 J에 대해 "지금 같으면 가만 안 둘 텐데. 확 그냥 니킥(knee kick)으로 한방에 날려 버릴걸!!"이라며 뒷북을 쳤다. 막상 상대와 주먹 대결로 맞붙으면 질 게 뻔하건만 방안퉁수가 따로 없다. 집안에서만 그러면 그나마 다행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안 새랴. 더욱이 요즘은 무서운 시대가 아니던가. 노파심은 끝내 말조심하라는 잔소리가 되어 아이를 귀찮게 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라고 한들 어쩔 수 없다.  


아무래도 일이 말을 하는 직업이니까 무지로 인해 말실수를 하거나 실례를 범할 때가 많잖아요. 지금도 완벽하진 않지만 계속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최대한 배려하면서 방송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 읽고 있어요. 근데, 아직까지도 티브이로 보시는 분들은 이럴 걸요? '아닌데? 나는 장도연이 하는 개그 보고 기분 나빴는데?'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많겠지만 적어도 무지로 상처를 주는 일은 하지 말자, 실수를 좀 줄이자.. 해서 배워야 되지 않나 싶어요.


  몇 년 전 개그우먼 장도연은 <집사부일체>에서 종이신문을 꾸준히 구독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저렇게 대답했다.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개그'가 목표라는 말을 듣고 나니 장도연이 달리 보였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아지는 법. 신문 구독까지는 못하더라도 말은 좀 줄여야겠다. 그나저나 말이 가시보다 더 날카롭고 주먹보다 더 강력한 무기라는 걸, 시우도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할 텐데.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말이다.




*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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