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하나
<20여 년 전 써놓은 글입니다. 아직도 같은 생각이냐고 물어보신다면 생각해 보지 않아 모르겠다고 답합니다.>
서문
우리는 살아가면서 ‘운명이다, 하늘이 정해 주신 천명이다, 너와 나의 만남은 인연이다’ 라는 말들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가. 나또한 아무런 생각 없이 입에서 쉽게 나오곤 했던 말들이다. 하는 일에 실패 하고는 ‘이것이 내 운명이지 뭐’하면서 한탄하는 사람들을 한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이 글은 그저 세상을 살아오면서 내가 바라보게 된 관점 중에 하나이다. 또한 어떠한 과학적 근거조차 성립되어 있지 않고, 누구의 영향이나, 어느 유명한 분의 논문을 인용하지도 않았기에 어떠한 비판도 받을 수 있다. 인용이라면, 이천에 ‘이문열’ 선생님 댁에서 하루 신세진 인연으로 그분의 삼국지 중 한 부분을 문단을 빌렸지만 용서해 주실 꺼라 믿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어떠한 비판을 하더라도 나는 한마디로 대답할 수 있다.
‘이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이라고.’
이 글을 쓰면서 작은 공감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기쁠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내 운명으로 받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1. 도입
가끔 가만히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보고 신기해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보통 지나가는 사람과 마주치게 되면 어깨를 살며시 피하거나 잠시 멈춰 서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이 지나가고 나서야 자신의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걷는 사람이 앞 사람과 자신의 발걸음에 신경을 쓰면서 걸을 경우에야 가능한 일이다. 반대로 앞 사람과 발을 보지 않고 책이나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는 사람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본인인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제3의 관찰자 시점으로 생각하기 위해서 다른 인물로 가정해 보자. 이들은 앞을 보고 걷는 이들과 같이 마주 걸어오고나 옆에서 가로 질러 가는 사람과 작은 충돌 없이 가볍게 스치듯이 지나가는 경우를 보게 된다. 간혹, 발과 발이 아슬아슬 하게 교차되면서 지나가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 길을 걷거나 TV를 통해서나 아니면 직적 · 간접적으로 경험해 봤을 만한 일 중 우리의 눈앞에서나 내 바로 뒤에 걷던 사람이 사고를 당하는 장면이다. 몇 일전 운전을 하면서 가던 중 내가 우회전을 하고 나서 바로 뒤에 따라오던 봉고차가 돌진하는 오토바이와 부딪힌 일이 있었다. 그 오토바이가 내차가 아닌 바로 뒤따라오던 차량과의 사고 같은 장면들을 보고 의문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왜 길을 걷고 있는 저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무관심 속에서도 이 시간 이 장소에서 마치 발걸음을 약속이나 한 듯이 오른발과 왼발과의 절묘한 교차로 스치고 지나갈 수 있는 걸까? 그리고 그 오토바이는 어째서 내차가 아닌 뒤따라오던 차량과 그 장소 그 시간에 부딪히게 된 것 일까? 라는 두 가지 의문을 가지고 이 글을 펼쳐 나갈 생각이다.
2. 운명
운명이란 인간의 지혜나 힘을 초월한 길흉의 만남이다.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개별적인 사건들은 당사자에게는 우연으로 나타나지만 사건 그 자체는 필연적이라고 보아야 하는 원인이 운명이다. 운명을 뜻하는 그리스어 moira는 본래 <육신에 할당된 몫>에서 <몫> 이라는 의미였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죽었을 경우 죽어야만 하는 이유가 곧 ‘모이라(moira)’ 이다. 아라비아어와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죽음> 과 <운명> 이 같은 말이다.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벌이 따른다는 인과법칙은 신조차 깰 수 없는 운명이었다. 또한 운명은 주로 인간 밖에 숨어서 모르고 범한 죄에 대해서도 응보를 가져다주므로, 여기서 운명의 부조리와 비극성이 탄생한다. 한편, <<일리아드>>에서는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다이몬이 나의 마음에 들어왔다> 고 하여 자신이 아닌 다이몬의 작용으로 돌림으로써 심적 우연을 보이지 않는 필연으로 돌렸다. 다이몬은 특정인의 마음에 들어가서 그 인생을 결정짓는 운명인 셈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성격이야말로 사람의 운명이다>라는 문장도 다이몬이 사람 마음속에 머무는 숙명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부조리한 자신의 우연에 직면하여 망연자실하는 인간에게 눈으로 볼 수 없는 필연과 자기를 초월한 이법(理法)을 통해서 자신의 우연을 파악하라고 운명은 권유한다. 여기에 순응할 때 자신의 개별성과 우연성에 집착하던 인간은 이법을 향해 <정화(淨化)> 되어 간다. 자유가 필연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면 필연은 자유를 쫓아다닌다. <운명에 대한 사랑>만이 자유와 필연을 화해시킬 수 있다. <인간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나의 공식은 운명애(運命愛), 즉 미래에 대해서나 과거에 대해서나 타인과 같으려는 의욕을 갖지 않는 것이다.
운명의 바탕이 되는 이론은 아래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발생하는 사건은 반드시 시간적으로 선행하는 원인을 가진다.
2) 진리는 시간에 의해 변하지 않는다.
3) 발생하는 사건은 인간의 행위를 포함하여 필연에 지배되고 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