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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은 소설가 May 15. 2024

[벚꽃 신호등 - 5화]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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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이 난 벚나무는 다음날 초록색, 분홍색 인조 꽃들과 행사장 홍보물이 걸렸다.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처음 본 관광객이라면 어제 있었던 일도 모를 만큼 하루 만에 축제장은 활기를 띠었다. 벚나무는 새롭게 살아나 화염에 휩싸였던 어제 일을 흘려보냈다. 그을음 진 겉껍질을 벗어던지고 새로 나이테를 늘려갈 거다. 덕진이 아버지는 벚나무 앞 의자에 앉아 지갑 속 사진을 꺼내 놓고 있다. 할아버지 품에 안겨 웃고 있는 본인 모습을 보고 있다. 할아버지보다 자기 얼굴을 더 열심히 쳐다보며 잊지 않으려 한다. 기억 곳곳에 숨겨 놓으려 한다. 행복했던 어린시절을 잊지 않고 싶어 한다. 배운 거 없이 하루 벌어 가족들 생계를 꾸려나가던 할아버지 밑에서 농사꾼으로 자라 자식들을 키웠다. 논 한 마지기씩 늘 때마다 기쁘다는 내색 한 번 못 하고 악착같이 일했다. 인부 한 명 부리면 힘겹게 벌어 모은 돈 뺏긴다고 생각해서 옆집 봉수네보다 일찍 나갔다. 경쟁이라도 하듯 더 열심히 살았다. 덕진이 서울로 보내고, 대학 보내고, 장가보내도 멈추지 않았다. 손자, 손녀한테 용돈 한 푼 더 주고 싶어 남들 두 번 쉴 때 허리 한 번씩 펴가며 일했다. 세상살이 공짜로 얻어지는 거 없다던 할아버지 말씀 기억하며 그렇게 살았다.


    아버지는 인생의 낙이라곤 토요일 저녁에 막걸리 두 통 사다 마시고 잠드는 게 전부였다. 논일, 밭일, 가축 기르는 일 안 가리며 해왔어도 술은 늘지 않았으니 좋은 건지 허무한 건지 막걸리 두 통이면 얼큰하게 취했다. 사는 게 고단하다 느낄 때 사고 한번 치고 싶어도 술만 먹으면 마룻바닥에 잠들어 버리니 어린 덕진은 늘 그 모습을 보고 자랐다. 화 한 번 내지 않던 아버지. 어제저녁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 정신이 잠시 들었는지 경치 좋은 양로원 구경하러 가보고 싶다고 해서 덕진은 오늘도 내려온다. 운전하며 100세 시대라던 다큐멘터리를 떠올린다. 101살의 할머니 나이를 인식 못 하고 1살로 예약됐다던 항공사 시스템도 생각났다. 150세 시대가 오면 100년은 살고 싶다던 지금을 기억하지 못할 거다. 태어나자마자 병들어 죽던 시대를 기억하지 못하는 시대처럼. 기억은 돌에 새긴 암각화보다 빠르게 지워진다. 저장장치도 수십 년을 유지하지 않는다. 수명이 다하기 전에 새로운 곳으로 옮겨 저장해 놓고 바꿔줘야 한다. 강물 따라 흐르는 빗방울처럼 아름다웠던 경치는 그날의 그 행복감으로 만족하고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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