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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윤희 Nov 19. 2024

문 없는 방에서 살아요

위로에 관한 이야기2

 자꾸 내 방을 탐내는 사람이 있다.      


 종종 커피 타거나 식사 준비하려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내 방으로 돌아오면 거기, 불편하면서도 다소 뻔뻔하게 큰아들이 앉아 있다. ‘커피는 다른 곳에서도 마실 수 있잖아, 엄마?’ 하는 표정, 때로는 ‘아~아~ 나도 한 번만 좀 앉자~’하는 얼굴로 큰 청년이 자기 핸드폰을 충전하며 자리하고 있다.

 엄마 눈치 보는 어린이, 엄마 표정과 눈짓 한 번에 운명이 결정되는 꼬꼬마 어린이의 얼굴, 중2 큰아들에게 그 귀여운 표정이 보이는 그 순간이 나는 좋다. 딱히 말도 필요 없다. 난 큰아들 앞에 서서 눈짓과 고갯짓으로 ‘휙’하고 옆으로 비키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럼 그 청년은 야속한 표정으로 부스럭 일어나 옆으로 비켜난다.      


 엄마 방에 무단침입했다는 걸 잘 아니까.     





 내 방은 따로 없지만, ‘공식적’인 ‘내 자리’가 딱 세 곳 있다. 싱크대와 가장 가까운 식탁 의자, 몸 하나 겨우 들어가는 책상, 그리고 책상 바로 옆 소파 한 켠.      

 꽤 긴 소파의 가장 오른쪽 한 켠은 내 작은 책상의 오른편과 아기 주먹만큼의 공간을 두고 마주하고 있다. 비록 문은 없지만, 작은 책상, 그리고 거기 연결된 듯 살짝 떨어져 있는 소파 한 켠까지, 그 공간이 ‘나의 방’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다가 쉬고 싶을 때 잠깐 앉아서 책 보기도 하고, 멍하게 생각 저 끝을 흐릿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티브이를 잠깐 켜서 사람 구경도 하고, 커피 한 잔 타 와 책상 위에 올리고 앉아 홀짝홀짝 마시는 곳. 나에겐 그곳이 리클라이너 의자이자, 침대이자, 카페이자, 공원의 벤치다.

 왼쪽 다리를 접고 쿠션 하나 올리고 슬쩍 소파 팔걸이에 기대면, 그 어떤 남자의 어깨보다도 편하고 따스하다. 늘 그 자리에 있어 주고, 내 몸을 완벽하게 수용해주는 기분, 뭔가 폭신하게 보호받는 기분. 틈틈이 위로받는 느낌.     


 ‘내방 소파’에는 중요한 것들이 꽤 정교하게 배치되어있다. 2m 길이 C타입 충전 잭, 각종 리모컨, 휴지, LED 탁상등, 잡동사니 바구니, 겨울엔 전기방석까지, 완벽한 세팅이다. 핸드폰 충전하면서도 사용할 수 있고, 언제든 TV를 틀어 원하는 채널을 볼 수 있다. 눈물이 나든 뭘 먹다 흘리든 쓱쓱 닦을 수 있는 휴지와 정리 섹션은 따로 없지만 쓸모없는 것은 아닌 작은 잡동사니, 흔한 ‘나만의 방’ 모습이다.      




 나도 멀쩡한 내 방이 있으면 좋겠다. 거울 앞에 앉을 수 있고 화장품이 늘 그 자리에 있는 화장대, 꽤 널찍해서 옆에 책이며 종이들이 쌓여가도 용서가 되는 책상, 글쓰기 하다 기지개 켜면 등받이도 조금 뒤로 물러나 주는 배려심 있는 의자, 딱 내 몸 크기만 해도 좋을 침대,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가지런하게 자리하는 책장. 내 물건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내 방’.     


 서울에 집 있으면 됐지, 별 걸 다 불평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안방은 어디 두고 ‘내 방’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애 키우는 엄마들이 다 그렇지 누군 그렇게 안 사냐고 한 소리 들을 수도 있겠다. 책상에 소파 한 켠이라도 자기 공간이면 됐지 욕심도 많다고 혀를 찰 수도 있겠다.       


 각자의 사정 때문이라고 해두자. 우린 항상 그 ‘각자의 사정’ 때문에 제일 힘든 거니까.      




 내 방을 꿈꾼다. 울고 싶을 때 문으로 공간을 나눌 수 있는, 아들 둘과 남편, 남자 세 명과 분리되어 편안하게 탈의할 수 있는, 불편한 상황에서 도피할 수 있는, 졸리면 언제든 조용하게 눈 붙일 수 있는, 내 영혼이 온전하게 기댈 수 있는 그런 방.      


 오늘도 그저 소파 한 켠에 포근하게 기대어 앉아 책을 편다. 다른 사람들의 삶 속으로, 그들이 머물던 시간으로, 작가의 마음 한 켠으로 들어가 본다. 수줍게 내밀은 내 손을 그들이 꽉 잡아끌어 줄 때까지, 그들이 날 위로해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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