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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윤희 Nov 12. 2024

에브리띵이즈언더컨추롤

위로에 관한 이야기 2

 남편은 둘째 백일잔치를 한 다음 날 이집트로 떠났다. 몇 년이 될지 모르는 긴 해외파견 길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키우자는 맘으로 이를 악물고 있었던 걸까, 한동안 나는 웬만해선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남편이 떠난 주차장 빈자리에 서서 100일이 채 되지 않은 아이를 안고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아이도 내 흐느낌을 이해하는 듯 가만히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날 기다려주었다.




 둘째는 잘 자는 아이였다. 먹고 좀 있으면 스르르 눈이 작아져 꿈 너머로 가려 했다. 둘째가 잠들면 첫째에게 책도 읽어주고 옷도 꺼내준다. 그럼 아이도 신나서 유치원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런 시간을 꽤 자주 선물해주는 둘째가 고맙고 기특했다.


 둘째는 잘 못 먹는 아이였다. 모유도 싫다 하고 분유도 싫다 하며 끝없이 울고, 툭하면 먹은 것을 게워내서 참 많이도 걱정했었다. 젖병이 문제인가 싶어 바꿔보기도 하고, 내 모유가 맞지 않는가 싶어서 분유도 먹여보고, 이 분유도 맞지 않는가 싶어서 다른 분유도 먹여봤다.


 밤중 수유 후 먹은 것이 잘 내려가게 토닥이고 어떤 진동도 방해되지 않게 살포시 뉘어놓으면 아이는 고개를 내쪽으로 돌리고 먹은 것을 전부 다 게워냈다. ' 무죄'라는 듯 말갛게 나를 바라보던 두 눈을 보며 눈물이 쏟아졌다.      


 ‘아가야 넌 뭐가 문제인 거니. 내가 잘 못 한 거니. 아님 네가 문제인 거니. 미안해. 문제라고 표현해서 미안해. 넌 아무 잘못도 없어. 아무 문제도 없어. 좋아질 거야. 좋아질 거야.’     


 아이가 뒤집기를 시작하면서 토하는 현상은 한 층 심해졌다. 뒤집기를 하면 위가 자극되는지, 뒤집자마자 남은 한 방울까지 모두 토해내는 것 같았다. 아이가 먹은 분유 토는 냄새가 심했다. 아이 옷 내 옷에 냄새와 함께 얼룩이 남았고 이불도 하루에 몇 번씩 빨아야 했다. 남의 집에 방문할 수도 없었다. 그곳에 냄새와 얼룩을 남기게 될까 봐. 힘든 내 마음에 ‘죄송함’까지 남기게 될까 봐.      




책을 좋아했던 6살 첫째는 막 읽기 독립을 시작해, 내게 읽어주고 싶은 책도 많고, 함께 읽고 싶은 책도 많았다. 둘째를 먹이고 있으면 첫째는 책을 바짝 들고 와 읽어 달라고 떼를 썼다.     

 

 “넌 너 혼자 읽을 수 있는데 왜 이래? 몇 살인데 엄마한테 이렇게 책 읽어 달라고 떼를 써? 아직도 아기처럼 굴래?”


 늦은 밤, 둘째를 재우고 돌아보면, 첫째는 홀로 어지럽게 쌓인 책 옆에서 읽다 잠들은 듯 누워있었다. 동그랗게 허리를 말고 앞으로 뻗은 첫째의 손끝에는 나와 함께 읽고 싶었다는 책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내일은 많이 읽어줄게. 오늘까지만 이해해줄래. 내일은 너랑 더 많이 눈 맞출게. 너랑 더 오래 있을게.’      



 매일 밤 나는, 내일은 첫째를 울리지 않을 거라며, 내일은 둘째의 토가 잦아들 거라며, 다 좋아질 거라며 스스로를 토닥이고 달래며 잠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 혼자 다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쉽지 않은 것이 당연했고 내 힘으로는 벅찬 것이 당연했다. 눈물도 당연했고 짜증도 당연했지만, 난 그런 자신을 자책하며 긴 시간을 홀로 싸웠다. 가끔 홀로 거울을 보며 ‘좀 웃어. 그래야 낫지!’ 하면서 오늘은 좀 웃겠다며 결심했었다. 내 슬프고 힘든 기운이 아이들에게 전염될까 봐 맘껏 표현도 못한 채 내가 밉고 싫었던 시절이었다.


 그때 내게 필요했던 건, 응원의 말 한마디였던 것 같다.      


 ‘네가 혼자 다 할 수 없는 일이야. 그럼에도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아이들을 봐. 너무 건강하게 잘 크고 있어. 네가 있었기에 이렇게 잘 큰 거야. 놓친 것들, 못한 것들은 그냥 거기 두자. 그래도 아무 일도 안 생겨. 아무도 안 다쳐.’     




 그림책작가 이수지는 첫째가 두 돌을 좀 넘겼고 둘째가 태어난 지 일곱 달 무렵, 베를린으로 초대를 받았다고 한다. 열흘간의 일정을 두고 아이 먹일 젖이 마를까 봐 걱정이 꼬리를 물고 떠오르던 나날들.     


마음속에 지진을 일으키고 있던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에브리띵이즈언더컨추롤, 잘 다녀와.”
어린이도 응원이 필요하고 어른도 응원이 필요하다. 마법 같은 저 한마디는 모든 걱정을 덮어 주었다.  (....)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떼지만, 등 뒤로 문이 닫히고 여행용 가방이 돌돌 굴러가는 소리를 의식하는 순간, 야속하게도 싹 접고 앞만 보고 걸어간다. 가서 또 숨을 쉬고 올게, 성장해 올게! 그때마다 남편은 외쳐 주었다.      
에브리띵이즈언더컨추롤!
( 이수지 『만질 수 있는 생각』 98~101)     


 홀로 발만 동동 구르던 4년의 시간. 이게 맞나, 내가 잘하고 있나, 제대로 하고 있나. 처음 마주친 삶 속에서 두렵고 갑갑한 감정을 참기만 했던 그 시절의 나를, 늦었지만 응원하고 싶다. 누구나 아이와의 첫 만남이 행복하면서도 두려웠을 거라, 흔한 우울함이라 치부했던 젊은 나의 힘든 마음을 이제는 안아주고 싶다.     



“에브리띵이즈언더컨추롤! 그럼에도 너무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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