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식 파다. 밤새 쩍 달라붙은 입안에 더 메마른 빵을 욱여넣는 게 아침 메뉴로 영 달갑지가 않다. 속이 쪼그라든 아침엔 뜨끈한 국에 대충 밥 한 주걱 말아서 후루룩 속을 데우는 것에 길들여진 할머니가 키운 아이의 입맛이다. 그런데 일시적 당뇨상태를 겪으며 (임신으로 인한 당뇨) 아침에 흰 밥이 얼마나 혈당건강에 안 좋은지 하루 세 번 손가락에 핏방울을 짜내며 절절히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탄수화물을 먹을 때면 마음속에 경보음이 울리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물론 경보기가 자주 고장이 난다. 묵은지 김치찌개에 물말은 흰쌀밥 한 공기만 큼 맛있는 것이 또 있을까.
시행착오가 많았다. 흰밥을 현미로 바꿔보기도 했고, 잡곡도 섞어봤다. 사람마다 혈당이 오르는 음식이 다르다더니 나한테는 현미도 껍질입은 흰밥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반찬에 밥은 결국 당이 오른다. 아마도 반찬에 들어간 갖은양념 때문 일 것이다. 시중에 파는 무설탕 요거트도 당이 엄청 오른다. 무가당의 배신이었다.
휴직 중이라서 누리는 호사겠지만 시간에 쫓기지 않고 아침을 느긋이 먹는다. 둘째 아침 분유를 먹여놓고 느릿느릿 하나씩 챙긴다. 드레싱 없는 생야채와 통밀 베이글. 이틀 걸려 만드는 그릭요거트에 알룰로스만 조금 뿌린다. 그리고 계란 두 개. 베이글이 식기 전에 먹으면 베스트겠지만 둘째 쫓아다니면서 천천히 한 입씩 오며 가며 먹어도 좋은 아침이다. 이렇게 아침을 먹으면 점심엔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그게 요즘 즐기는 소소한 내 낙이다.
후루룩 김치콩나물국
저녁을 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다음 개운한 기분으로 주방문을 닫았다. 오늘은 영업종료. 둘째를 재우고 나오니 밤 10시. 온 집안은 고요한 휴식 중이다. 꺼진 거실 불처럼 나도 꺼지고 싶은데 내일 아침 먹을 것이 없다. 아무래도 아침엔 첫째도 입맛이 없고 남편도 일찍 출근해야 하니 보통 전날 저녁에 남은 메뉴를 대충 데워서 먹기 마련인데 오늘 저녁을 너무 야무지게 먹어서인지 내일 아침에 먹을 것이 남지 않았다. 간단하게 먹을 메뉴를 생각해 보니 뜨끈한 국에 밥 한술 말아서 밑반찬과 함께 먹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스피디하다. 만만하게 콩나물국.
이상하게 콩나물국 맛 내기가 쉽지가 않다. 멸치육수도 내보고 참치액도 넣어보지만 뭔가 항상 부족한 맛이다. 이번에도 만능치트키 묵은지 김치의 깊은 맛을 빌려본다. 작게 썰어 얼려놓은 돼지고기 찌개거리가 있다면 같이 넣는다. 개운한 국물맛을 해치지 않을 만큼만. 국을 끓여놔도 결국엔 첫째 때문에 계란 프라이라도 하고 햄도 굽지만 엄마마음 편하자고 만드는 콩나물국이다. 혈당을 생각하면 출근과 등교를 하는 사람들은 밥을 주고 나는 야채에 통밀빵을 먹어야 하는데, 과연 나는 내일 아침도 매콤 칼칼 시원한 콩나물국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2월 월간 식비결산 (feat. 방학)
대차게 실패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달 50만 원 식비도전은 실패다. 방학을 너무 우습게 봤다. 이렇게 첫 달부터 실패의 결과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도 되나 싶지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니까 될 때까지 해본다. 부부교사인 우리 가족은 방학에 온 가족이 집에 서식한다. 삼시세끼 다 같이 먹고, 그만큼 전기세, 관리비, 식비 모두 증가한다. 학기 중 급식의 소중함을 모르고 원대한 꿈을 꾸었다. 하이텐션의 초등 아이들 몇백 명이 있는 급식실에서 먹는 점심은 항상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른 상태로 들이켠다. 평소에는 나도 다른 직장인들처럼 점심 먹는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지만 휴직하고 나면 가장 절실한 것은 급식이다. 급식만 먹고 오고 싶다. 한 끼 오천 원 정도에 (교직원은 급식비를 낸다.) 매일 새로 한 밥과 국과 고기반찬까지.
이제 개학이니 3월에는 남편과 아이가 급식을 먹고 온다. 이것만으로도 다음 달 다시 도전의지가 생긴다. 50만 원은 실패했지만 가계부라도 써서 방학에 이 정도에서 2월을 마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