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브런치에 입성한 지 6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62개의 글을 썼으니, 대충 계산해 보면 3일에 한 번꼴로 계속 글을 발행해 온 셈이다. 그래도 나름 꾸준히 썼다고, 나 자신에게 작은 위로를 건넨다. 그런데 그렇게 글을 쓰고, 브런치를 뻔질나게 드나들다 보니, 문득 하나의 '공식 아닌 공식'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브런치의 메인 화면엔 이상하리만큼 김밥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누군가 김밥에 대한 추억을 썼고, 그게 사람들의 마음에 닿았을 뿐이라고. 그런데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꽤 많이 보인다.
우연이라 쓰고,
계획이라 읽어야 하는 건가..
브런치 메인에 올라온 글들을 살펴보라. ‘오늘의 브런치 인기글’, ‘에디터’s 픽’ 어디쯤..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김밥 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날은 할머니가 싸준 김밥, 어떤 날은 새벽 기차에서 먹은 김밥, 또 어떤 날은 편의점 김밥을 혼자 먹으며 느낀 글 등등.. (그런데 정작 이 글을 발행하려고 하니, 그 많던 김밥 글이 하나도 안 보인다..;; 다 어디 갔니??)
어쨌든 어느새 김밥은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김밥이 이렇게까지 브런치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메인 픽을 고르는 에디터 분들 중, 김밥을 유난히 사랑하는 분이 계신 걸까. 아니면 ‘브런치 감성’에 어울리는 비주얼 때문일까.
도무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김밥에는 브런치가 좋아하는 어떤 정서, 어떤 온도가 숨어 있다는 킹리적 갓심이 든다... (코난을 불러와야 하는 건지..)
나도 아프리카에서 김밥 먹는 글을 썼더니 메인에 올라갔던 적이 있었다. (치솟는 조회수에 깜짝!!) 사실 처음 김밥 글을 쓸 때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김밥 이야기라니, 너무 평범하지 않은가. 누가 아프리카에서 김밥 먹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까. 하지만 아프리카 시리즈인 '봉주르 무슈'를 쓰면서, 김밥 얘기를 빼놓을 수 없었기에 반드시 써야만 했다.
https://brunch.co.kr/@nasem1/54
아프리카에서의 시간은 참 고독했으니까. 낯선 풍경, 견뎌내야 하는 시간들. 나는 매일 적응하려 애쓰면서도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점점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김밥을 싸줬다. 그 김밥 안에 담긴 밥은 한국쌀이 아니기에 찰지지 않았고, 속재료도 여기서 구할 수 있는 것들로만 넣다 보니,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김밥과는 결이 살짝 달랐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없었다. 그 김밥은 놀랍도록 맛있었다!! 한입 베어무는 동안, 나는 정말이지 너. 무. 나. 행복했다. 입안에서 밥알이 굴러다니는 그 짧은 순간, 한국의 기억들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성냥팔이 소녀처럼) 결혼 전, 아내와 데이트하며 나눠 먹던 김밥, 아이들과 공원에서 돗자리를 펴고 함께 먹던 김밥. 그 모든 장면이 내 입안의 김밥 속에서 되살아났다. 아프리카에서 김밥은 그렇게 나를 위로해 주었다. 타지의 고독을 잠시 멈추게 한, 작은 평화였다고 할까?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렇게 김밥에 호응하는 이유는 김밥이 가진 구조 자체가 삶의 서사와 닮아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김밥은 한 장의 김 위에 밥을 펴고, 그 위에 여러 가지 재료를 올린다. 단무지, 당근, 시금치, 햄, 계란. 각각의 재료들은 제 색깔과 맛을 가지고 있지만, 김과 밥으로 말려지는 순간 하나의 완전한 형태가 된다.
삶을 기록하는 우리의 글쓰기도 그렇지 않은가. 일상의 파편들, 기억의 조각들이 제각기 흩어져 있다가, ‘나’라는 이야기 속에서 함께 말리며 한 문장이 된다. 어쩌면 브런치라는 공간 자체도 그런 김밥 같다. 수많은 작가들의 삶과 이야기들이 각기 다른 재료로 말려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는 거대한 김밥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브런치를, 김밥을 사랑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 김밥에는 누구에게나 소중한 기억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쉽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이 있다.
소풍날 들뜬 마음으로 도시락 뚜껑을 열던 순간, 학교가 끝난 뒤 친구들과 나눠 먹던 김밥, 연인과 함께 혹은 자녀의 손을 잡고 공원 벤치에 앉아 베어 물던 김밥 한입. 그것이 다정한 추억이든 마음 한켠의 쓸쓸한 장면이든,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김밥과 관련된 한두 장면쯤은 품고 있다. 김밥은 거창한 음식이 아니지만, 우리의 특별한 순간마다 늘 함께 있었다.
그래서 김밥 이야기를 읽을 때, 독자는 자연스럽게 문장 속 김밥을 자신의 기억 속 김밥으로 바꾸어 읽는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한 끼의 온기로, 외로운 사람에게는 잊고 있던 추억의 냄새로, 지친 사람에게는 잠시 기대어 쉴 자리로 다가온다. 그 순간 글은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라 독자 자신의 것이 된다.
김밥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김밥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김밥은 우리에게 거창한 감동을 주지 않는다. 대신 작고 다정한 위안을 건넨다. 힘든 날 친구가 건네는 짧은 안부처럼, 지친 하루 끝에 켜져 있는 현관 불빛처럼, 김밥은 조용히 우리 곁에서 손을 내밀어 토닥여 준다. '토닥토닥.' 내가 참 좋아하는 단어다. 그 단어 속에는 슬픔을 함께 들어주고, 묵묵히 곁에 서 있는 사람의 마음이 배어 있다.
거창한 위로가 아니라, 그저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사람. 김밥이 그렇듯, 나도 그런 사람이,
그런 글을 쓰는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다.
이제, 당신 차례다. 당신의 기억 속 어딘가에 자리 잡은 그 이야기를 꺼내보는 건 어떨까. 김밥의, 김밥에 의한, 김밥을 위한 이야기 말이다. 그 한 줄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하루를 조용히 토닥여 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