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미의 <현실육아상담소> & 지나영의 <본질육아>
친절연구소와 다정컴퍼니 홍보대사인가.
"애들 마음이 어떤지 좀 살피면서 이야기해." "지시하는 말투 좀 바꾸면 안 돼?"
남편을 향한 흔한 나의 잔소리다. 각자 자라온 가풍도 다르고, 성격도 성향도 많이 다른 우리 부부는 무엇보다 훈육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달라 부딪힐 때가 종종 있다. 나는 옳고 그는 다 틀린 것처럼 몰아붙였던 순간들이 떠올라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글을 시작한다(고 쓰지만 남편에게 고백 또는 사과는 왜 이렇게 하기 싫은지).
전공서적, 논문 읽기에도 빠듯한 업무량에 늘 쫓기는 터라 '뻔한 이야기겠지 뭐'라고 치부하며, 육아서는 구입을 해도 특정 부분만 조금씩 핥아 읽거나, 어떤 친절한 분이 읽고 간추려 준 것에 기대곤 했었다. 독서 모임을 위해 그간 멀리하던 육아서를 집어 들고 우선은 외적 동기에 힘입어 읽어 내려가는데 '아, 나는 무슨 호기로 내가 옳다고만 생각했을까?' 싶었다. 조선미 교수님은 <현실육아상담소>를 통해 "엄마, 엄마처럼 애들 얘기 다 들어주다가는 하루종일 논쟁이 끊이지 않을 수 있어요. 엄마의 마음을 꿰뚫고 더 이유를 찾으려 할지 몰라. 그러다 더 징징거릴지도..."라며 내 머리를 똑똑 두드리시는 것 같았다.
일주일의 반은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니 그 이전부터도 아이들 마음을 살피는 데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예민하게 굴었던 것 같다. 이런 나에게 경종을 울리듯 조선미 교수님은 명료한 조언을 주셨다.
특히 일하는 엄마의 경우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다는 죄책감 때문에 함께 있을 때는 아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려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 결과 아이는 엄마한테 더 집착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엄마도 아이도 모두가 힘들어집니다. 아이와의 경계를 짓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세요. 아이의 행동이 훨씬 좋아질 겁니다.
그래, 주말을 가족과 보내기 위해 금요일 오후 귀가를 하면 온 힘을 다 해 양육을 하고 살림살이를 챙기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주말을 지내다 보면 에너지가 소진되고 고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살펴준다 하면서도 사실 일관되지도 못했다. 바쁘고 몸이 피곤하면 그마저도 계속 하지 못 할 거면서, 남편의 훈육 방식을 늘 거슬려하며 핀잔을 주곤 했다. 특히 삼 남매 중 둘째인 아들 달님이는 딸들보다 섬세하고 예민한 감정선을 가졌는데, 아빠의 꾸지람을 막아서는 방패처럼, 엄마만 정의의 사도인 것 마냥, 아들의 보호막이 되어주곤 했다. 그런데 더 부끄러운 것은 정작 난 마음 읽기의 방법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춘기의 초입에 들어선 듯한 달님이는 요즘 부쩍 거울을 자주 보며, 머리가 마음에 안 든다는 둥, 얼굴이 너무 부었다는 둥 툴툴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자칭 친절과 다정의 대명사인 이 엄마는 "왜 마음에 안 들어? 머리 아무렇지도 않아! 붓기는 뭐가 부어? 너보다 별님이(막둥이)가 훨씬 더 부었다 뭐"라며 아들의 감정을 읽어주기는커녕 무시해 버리고 내 생각을 심어주기 바빴다(거기에 괜히 죄 없는 막둥이 디스까지). 딴에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심어준답시고 요란을 떨며 쿨한 척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에게 달님이는 "아이 참, 엄마는 내 마음을 몰라. 진짜 이상하다고!"라며 급기야 화를 내기도 했는데, 조선미 교수님이 정말 그러신다. "OO 한 감정을 이해해주지 않으니까 '엄마는 내 마음을 몰라'라고 생각하게 되죠. 아이들은 엄마가 너무 중요한 대상이기 때문에 그만큼 섭섭함이 큽니다."
앗, 이런. 또 뒤통수가 서늘하다. "아이의 민감성과 특성을 잘 관찰하고 인정하며"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단순하게, "아, 그래? 마음에 안 드는구나. 엄마도 너만 할 때 그런 적이 있었어"라고 딱 이 정도로만 감정을 정확하게 이해해 주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달님이의 반응이 거기서 끝나지는 않겠지만, 그다음은 달님이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는 몸이 자라며 감정도 함께 자라날 테고, 어느 정도의 좌절과 속상함은 이겨내는 힘을 기르게 될 것이다. 물론 시간이 걸리고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라 쉽지 않겠지만, 감정이 성숙해지고 단단해지는 것은 부모도,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아이 스스로 몸소 느끼고 깨달으며 스스로의 감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추스를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자리가 부모의 것이리라.
자녀의 마음을 읽어주라는 메시지를 부모들은 각자의 사전과 경험, 방식대로 해석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정작 중요한 아이의 선택권과 의견은 무시하면서, 아이의 욕망은 들어주는 꼴은 아닌지도 살펴봐야겠다. <현실육아상담소>는 "아이가 속상해한다고 원하는 걸 다 들어주는 건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경고한다. "과도한 마음 읽기는 아이가 자기감정만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며, "제발 마음 읽기는 조금만 하세요"라고 권고한다. 감사했다. 지난한 육아의 현실에서 '아, 이럴 때는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아이와의 이런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많은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 주어 읽으며 저자에게 참 감사했다. 또한 문제상황에 따라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면서도 근저에는 단순, 담백한 기본의 틀, 이를테면 '아이와 감정적으로 건강하게 분리되기'라는 아이디어가 일관되게 제시되어 저자의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현실적인 조언이 주를 이루는 책이지만 조선미 교수는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은 잊지 않고 언급하였다. 아이에게 "너는 사랑스러워. 뭘 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냥 너 자체를 사랑해"라고, 아이의 존재 자체가 소중하고 부모가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것을 아이가 반드시 알 수 있게 이야기해 주라고 말이다. 어떤 육아든 기저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 육아에서 부모가 기억하고 몸소 실천해야 하는 본질은 역시 조건 없는 사랑이었고, 지나영 교수의 <본질육아>는 바로 이것을 가장 쉽고, 깊게 풀어놓은 책이 아닐까 싶다.
<본질육아>의 저자인 지나영 교수는 양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립, 즉 자녀가 주도적이고 독립적인 성인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드넓은 바다에서 자신의 배를 띄우는 선장이 되도록 이끌어 주고, 본인의 행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마음으로 지지해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부모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선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우리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가치를 삶 속에서 전해주는 것이다, 바로 우리 아이에게. 아이들이 삶을 살아가는 데 등대 같은 기준이 되어줄 가치를 가르쳐 주고 함께 추구하면, 그다음은 크게 걱정하지 않고 힘을 좀 빼도 아이들은 잘 자란다는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진정성, 성취, 모험, 권휘, 자율성, 균형, 아름다움, 용기, 공감력, 도전정신, 시민정신, 공동체정신, 역량, 기여, 독창성, 호기심, 결단력, 공정성, 믿음, 명성, 우정, 재미, 성장, 행복, 정직, 유머, 영향력, 내면의 조화, 정의, 친절, 지식, 리더십, 배움, 사랑, 충성도, 의미 있는 일,... 봉사, 영성, 안정성, 성공, 지위, 신뢰성, 부, 지혜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줄 중요한 가치가 아이의 마음속에 확고히 선다면, 삶의 과정 속에 잠시 아이가 좌절을 겪더라도 결국에는 이겨 내고, 부모에게 배운 중요한 가치를 좇아 자신의 정상 궤도로 돌아온다는 것이 <본질육아>의 조언이다. 혹자는 '이 조언이 너무 이상적인 것이 아닌가'라고 할 수도 있겠다. 맞다. 매우 이상적인 것에 동의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그 이상이 육아에서 정말로 중요한 본질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상적인 것이라서 실행이 어렵다고 핑계만 댈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실천할 수 있는 현실의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정말 좋은 부모의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정작 나부터도 주변과의 경쟁 속에서 아이들의 사교육을 완전히 끊을 수 없지만, 피곤한 현실은 최소화하되, 건강하고 올바른 핵심 신념을 심어 주기 위해 엄마, 아빠가 중요시하는 가치를 아이들의 마음속에 꼭꼭 담아 주고 싶다.
지나영 교수님은 매우 이상적으로 들리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친근하고 쉬운 실생활 용어로 친절하게 방법을 일러주신다. 예를 들자면, 일명 밥 짓기 요법을 들어 보셨는지.
쌀: 아이(잠재력)
물: 사랑과 보호
불: 가치와 마음자세
쌀은 그 자체로 잘 익어 고유의 맛을 낼 때 가장 맛있고 잘 지어진 밥이 된다. 부모의 욕심에 따라 이것저것 넣으면 밥이 제대로 될 수 없다. 쌀의 고유한 맛을 잘 내기 위해 적절한 양의 물이 필요한데, 이는 아이 고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성장시킬 수 있게 하는 부모의 메시지이다. 즉, 조건 없는 사랑과 절대적 존재 가치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때 아이가 단점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올릴 수 있도록 돕는 호두 까기 요법이 등장한다. 그리고 예민한 아이가 스스로를 높일 수 있는 몸값 요법(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할지는 나 자신이 정한다)까지. 그리고 불은 밥이 잘 익을 수 있게 해주는 요소로, 아이가 배워야 할 중요한 가치(신뢰성, 책임감과 성실함, 기여, 배려)와 긍정적인 마음자세를 의미한다.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 함께 활용하기, 책놀이 요법, 감사 요법, 20초 허그, 평화의 장소, 어린아이 행동 바로 잡는 OT 요법, 규칙 세우기와 지나친 몰입(게임과 스마트폰)에서 아이를 지키는 법, 하숙생 요법, 자기 조절력을 기르는 호흡법, 불안한 감정을 다루는 뜨거운 감자 요법, 평생 가는 루틴 만들기, 강점에 집중하기 등, <본질육아>는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본질을 지키기 위해 부모가 일상에서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요법을 제시해 준다. 그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하숙생 요법이다. 하숙생 요법이 기술된 부분을 읽으며 다소 헛헛했지만 어찌하랴. 이제 해님이(로나)와 달님이에게 어린아이 행동 바로 잡는 OT 요법은 다소 늦은 감이 있으니 말이다. 주변 어른들에게 사춘기가 온 아이들은 손님 대하듯 해야 한다는 얘기를 종종 들어왔다. 육아지침서에서 하숙생 요법을 들으니, 역시 인생 선배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이제 청소년기에 접어든 해님이와 달님이는 독립적인 개체로 존중해주어야 한다. 이제 내 품 안의 똥빵구쟁이들이 아닌, 우리 집에 기거하시는 하숙생이기에 떠오르는 말을 여과 없이 내뱉지 않고 제한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숙생, 우리 집 사람들이 다 11시면 자는데,
학생 방에서 계속 소음이 난다고들 하네. 어떻게 생각해?
우리 집 아침 시간은 7시야.
모두 그 시간에 같이 먹으니 학생도 맞춰주면 좋겠어.
하하하, 읽으며 웃음이 났다. 과연 아이들의 반응이 어떨 것인가. "네, 아주머니(어머니). 잘 알겠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취침을 하고, 기상도 해서 아침 식사에 늦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할 것인가. 현실은 어딘가 저기 멀리에 있는 듯 하지만, 지나영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부모가 이러한 자세로, 역시나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일 게다. 조선미 교수가 아이와의 경계를 짓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고 하였는데, 지나영 교수도 "나와 내 자녀가 정신적,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면 육아는 실패한 것이란 걸 명심"하자고 한다. 다섯 식구가 복작복작 주말을 함께 보낼 때면 남편이 하숙생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런 남편에게, "어이, 하숙생, 우리 점심 먹을 건데 같이 먹을 텐가? 나중에 혼자 먹을 거면 그러시고요" 말하곤 한다. 아, 이제는 남편이 아닌 우리 청소년 자녀들을 하숙생으로 여기는 마음의 여유와 자세가 필요하다.
두 권의 육아지침서를 읽으며 아이들과의 정신적, 심리적 거리를 두지 못하는 내 모습을 깊게 반성하였다. 그래서 남한을 가로질러 저 끝에 있는 부산에 직장을 주셨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해보았다. 방학 동안 아이들과 몸과 마음이 붙어 있으니 거리 두기가 쉽지 않지만 아이가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하지 않으면 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를 기르고 있다. 마음이 급하고 몸이 빠른 내가 대신해 주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 마음도 추스르게 시간을 주고,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공감하고자 노력한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양육하며 같은 책을 읽는 작가님들과의 독서 모임은 우리의 현실 육아를 함께 고민하며, 책에서 얻은 지혜에서 통찰을 구현해 내고 있다. 혼자 읽고 지나칠 때는 금세 휘발돼 버려 기억도 가물가물하던 책 읽기에 발제문을 떠올리며 깊이가 생긴다. 책이 끝나면 지적인 분들과 즐거운 담소가 기다리고 있다 생각하니 설레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는 배울 점이 있다는 것도 새삼 소중한 진리로 다가온다. 이렇게 오늘도 배우며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부모의 길을 걷는다. 최고의 부모는 아닐지라도, 노력하는 부모가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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