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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a Jan 30. 2024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아침의 피아노>

본 매거진은 여러 명의 작가들이 책을 읽다 만난 귀한 문장을 함께 나누는 협업 매거진입니다. 


부담 없이, 짧게 시작해 보겠습니다.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타자를 위한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병중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이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얼마 전 은유 작가의 글쓰기 책을 읽으며 만난 구절인지도 모르고, 정지우 작가의 책 소개 편지를 받아 읽고는 '어라, 요즘 이런 구절이 유행인가? 어디서 많이 봤는데...' 했더랬다. 삼 남매 방학 수발을 들며 혼이 나간 다둥이맘의 일상이지만 문장을 보고 기억하는 총명함이 떨어지는 것 같아 잠시 울적했다. 이런 나를 찾아 준 구절이니, 좋아하는 작가들의 글에서 만나고, 또 만난 반가운 문장이니 책을 읽고 싶어졌다.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아침의 피아노>


암 투병 중이었던 철학자 김진영이 지극히 사적인 기록을 남겨 놓은 짧은 일기의 묶음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쇠약해지는 몸뚱이를 안고 정신을 붙들고자 애쓰고, 당연한 것이었던 주변의 작은 일상이, 가족의 사랑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 작가의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처절하게 소중하다는 것,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아니,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선명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죽음이 없을 것처럼 오만가지에 욕심을 내고, 특별한 어디론가 꼭 도달해야만 할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가, 잠시라도 멈추어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지, 작은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챙겨보라는 듯.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만큼 삶에 대한 애정이 깊고 선한 사람이 있을까. 머지않아 신을 만날지 모르는데 겉치레를 할 수도 없고, 변명이나 핑계를 댈 수도 없다. 가장 맑고 투명한 영혼을 안고 써 내려간 글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위안과,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돕는 성찰이 되기를 바라면서. 


타인을 위해 하는 일은 궁극에는 나를 살리는 길이라 생각한다. 나만을 위해 쫓는 일은 지속적인 의미를 찾기가 어렵지만, 타인을 위한 일은 그 의미가 복리 불 듯, 마치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커져 세상을 밝힌다. 지극히 사적인 진심이 타인을 살리듯, 나의 글쓰기도 언젠가는 다른 이를 위한 것이 될 수 있기를 무척이나 바란다. 


 






대문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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