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lia Jan 25. 2024

로나의 소울 푸드, 고구마 라떼

외할머니의 사랑

"엄마, 우리 수지 살 때, 코로나 때문에 하루종일 줌으로 수업했잖아. 내가 서재에서 줌 수업 듣고 있을 때, 할머니가 고구마 라떼 만들어서 갖다준 거 기억 나. 너어무 맛있었어. 할머니가 그거 해준 거 기억 나고, 할머니(한테), 고마워."


나의 1호, 우리 로나는 할머니가 만들어 주었던 고구마 라떼 이야기를 열 두번도 넘게 한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할테니 반 백번 정도는 더 들으려나? 이 이야기를 하는 로나의 모습을 그려보자면, 눈은 반달이 되어 생긋거리고, 두 손은 모였다 펴졌다 발랄하기 그지 없고, 엉덩이는 짱구처럼 씰룩거리며 애교 만점 사랑둥이가 따로 없다. 고구마 라떼에서 로나가 느끼는 따스한 사랑과, 부드러운 달콤함이 가득한 그 맛이 온몸으로 표현된 것이리라. 


역병이 창궐하던 시절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수업을 들어야 했던 전국의 모든 초등학생들에게 때늦은 칭찬을 하고 싶다. (잠시 삼천포)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 코 앞에 앉아 40분을 집중하기도 어려운 꼬맹이들이, 아침 9시부터 점심 시간을 빼고는 하교하는 시간까지 꼬박 컴퓨터 앞에 앉아 수업을 들어야 했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방금 배운 내용의 이해가 필요한 활동에 참여하고, 숙제도 해야 했다. 이 당시 대학생들은 카메라를 켜지 않는 줌 회의 참여자가 반 이상이었고, 우연히 카메라가 켜지면 숙면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해 기가 찼었다. 하지만 선생님 말씀이 오직 법인 착한 초딩이들은 어쩜 그리 대답도 잘 하고, 용모를 단정히 하고 카메라 앞에 잘도 앉아 있던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라는 걸 잘 안다)


특교자인 우리 로나도 매일 아침 세수를 말끔히 하고, 할머니가 차려주신 아침 식사를 한 후 등교 시간이면 줌 회의에 접속했다. 카메라를 바라 보며, '선생님, 저 여기 있어요' 하듯 눈 도장을 찍고는, 하루종일 그 어려운 교과 내용의 수업을 내리 듣고 앉아 있었다. 당시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특수학급이 없어 로나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집에서 온라인 수업에 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로나에게는 어렵고 지루한 수업을, 교실 현장도 아닌 컴퓨터 화면을 통해 들어야 한다는 것이 고문 같은 일이었는데, 이 애미는 일한답시고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지난한 시간을 하루하루 참고 견디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던 로나에게, 할머니가 전해 주던 사랑의 고구마 라떼는 얼마나 반가운 선물이었을까. 선생님이 수업을 하시든, 카메라로 로나를 바라 보고 계시든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손녀에게 건네는 고구마 라떼가 더 중했을 것이다. 그럼 우리 로나는 눈치껏, 카메라에 비치지 않게 야곰야곰, 한 숟갈 두 숟갈,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꿀을 떠 먹듯, 야물딱지게 고구마 라떼를 먹어냈을 것이다.




오늘 애들 셋이 들락날락 할 때마다 밥 준비에, 간식 준비에 앉을 새가 없었는데, 수영을 다녀온 로나가 또 출출할 것 같아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삶은 고구마가 하나 남았지 참. 우리 로나의 소울 푸드, 고구마 라떼까지만 더 하자.






삶은 고구마를 동강동강 잘라 전자렌지로 살짝 데웠다. 추운 겨울, 고구마 라떼가 따뜻하면 더 맛있지.








우유도 살짝 데우면 좋고.

믹서나 블랜더에 고구마 덩이를 넣고 우유는 일단 자작하게 조금만 붓는다.













우유가 적어야 덩어리가 부드럽게 갈리니 걸쭉하게 이 정도 갈리면,







우유를 조금 더 넣고 다시 갈아 준다. 고구마 라떼를 숟가락으로 떠 먹고 싶으면 우유를 적게, 목넘김 부드럽게 마시고 싶으면 우유를 더 넣고 갈면 되겠지.












이렇게 부드러운 고구마 라떼가 되었다.








로나에게 컵을 건네자 돋보기 안경 넘어로 보이는 두 눈이 똥그래진다. 금세 반달 눈이 되어 행복한 미소를 짓는 그녀. 외할머니의 사랑을, 할머니가 해주던 음식으로 기억한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 할머니가 해주던 떡볶이, 어묵탕이 그리운데~" 하는 로나가 기특하고 사랑스럽다. 로나에게 고구마 라떼는 행복한 순간을 찾아주는 소울 푸드가 되었다. 보살핌을 받았고,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던 고구마 라떼 덕분에 로나는 어려운 온라인 수업에 성실히 참여할 수 있는 힘을 얻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덕분에 우리 가족은 고구마 라떼의 단백하고 부드러운 달콤함으로 할머니를, 엄마를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대문 사진: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너 이름이 뭐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