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는 눈은 비슷하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인사팀장으로 2년 넘게 근무를 했었다. 그게 인연이 되어 각종 공공기관 시험의 면접관으로 위촉되어 면접을 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면접관으로 역할을 하다 느끼는 점은 일반적으로 사람을 보는 눈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몇 차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여러 면접관들이 동시에 특정인을 보고 판단을 할 때 그 평가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는 면접 전 면접관에게 응시자에 대한 신상정보 등이 제공되었다. 필기점수, 출신학교 및 고향 등 시험 종류와 주관하는 곳에 따라 이런저런 정보들이 제공되어 면접 전 어느 정도 응시자에 대한 신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요즘 공공기관의 면접에는 블라인드인터뷰가 시행되어 면접관들이 응시자들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면접을 해야 한다. 이론적으로 필기시험 성적이 수석이어도 면접 점수가 좋지 않으면 최종 합격자에서 탈락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는 필기시험 점수와 면접 점수를 합산해 최종 합격자를 결정하기 이전에 일단 면접 점수가 일정 수준 이상이 안되면 합산 과정에 이르지 못하고 그 자체로 탈락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시험에서 면접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면접관들의 가지는 부담도 훨씬 커졌다. 더구나 합격을 못한 수험생들이 이의 제기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면접관이 낮은 점수를 부여할 때는 납득 가능한 이유 등이 분명히 있어야 있다.
따라서 면접 질문 중, 나중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는 외모, 고향 및 출신학교 등 개인적인 질문을 금지하고 있다. 한 번은 청바지를 입고 면접시험에 온 응시자가 있었는데 그 또한 개인적인 것이라 이유를 물어보지 못했던 일도 있었다.
아무튼 장단점은 있지만 블라인드인터뷰가 도입된 후로 면접의 공정성이 더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선입관 없이 객관적으로 면접 자체에만 집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모 시험의 면접관으로 면접을 진행하다가 경험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약간 각색을 한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면접을 보려는 응시자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보고 반면교사로 삼으면 좋지 않을 듯싶다.
그날 나를 포함해 3명의 면접관이 12명의 응시자를 대상으로 면접을 진행하여 그중 10명을 합격시키고 1명은 유예, 1명을 불합격시켜야 하는 면접이었다. 유예된 사람은 전체 응시자 중에서 다시 선별하는 절차를 거쳤다.
면접은 개인면접 및 단체 토론 등으로 진행되었는데 단체 토론은 한두 사람 정도 남의 말을 잘 경청하고 자기주장을 설득력 있게 하는 수험생을 발견하여 가점을 줄 수 있었으나 모든 수험생의 특성 등을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개인면접 또한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주어진 질문에 대해 AI처럼 준비해 온 답변을 하기 때문에 변별력이 높지 않았다. 결국 답변의 내용보다 수험생의 태도나 말투, 진정성 등이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개인면접이 중간쯤 진행되었을 때 수험생 중에서 특이한 응시자가 나타났다. 답변의 내용은 다른 수험생과 유사한데 주장하는 바를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하고 심지어 ‘마마보이’ 같다는 느낌이 곳곳에 묻어났다.
직업으로 공무원이 되려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엄마가 어릴 때부터 원하셔서요.”이고. 이런저런 걸 물어도 “엄마가...”라는 말이 포함되는 답변이 많았다. 일반적으로 성인에게 기대되는 말투와 답변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안타깝지만 아직 독립적인 성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봉사하는 공무원이 되는 건 시기상조라는 판단이 들었고, 다른 면접관들의 연결되는 질문의 맥락을 보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것 같았다.
‘마마보이’ 같은 응시자 면접 후, 일단 마음을 정하게 되어 다음 수험생부터는 좀 편안한 마음으로 면접에 임할 수 있었다. 물론 공정한 평가를 위해 모두에게 공통되는 질문을 하고 특이한 답변을 하는 경우에는 유사한 질문을 하였다.
그리고 어느덧 마지막 수험생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하게 극적인 반전이 연출되었다. 직업선택에 대해 대부분 다른 수험생들처럼 공무원으로서 소명의식 같은 내용보다, 학원 강사로 일을 하는데 자기 시간이 많고 안정된 직업을 원했다는 등 자기소개부터 남다른 응시자가 나타났다.
질문에 대한 답변도 듣기가 불편했다. 일단 질문하는 면접관을 가르치려는 말투부터 질문의 본질과 관련 없는 본인의 경험 등에 대해 이런저런 자랑(자신감이라고 하기는 지나친 표현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본인이 일선기관에 근무한다고 가정하고, 불합리한 법규로 인해 불편을 겪고 있는 민원인에 대해 어떻게 응대하시겠습니까?”라는 공통질문의 답변으로 다른 수험생들은 대부분 “우선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공감한 후, 관련 법규를 설명하고, 관련 부서와 협조해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해 보겠습니다.”라는 요지의 답변들을 했다.
그런데 그 응시자는 “죄송하지만 선생님의 민원은 법규에 규정되지 않아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답한 후 관련 법규의 정책부서를 안내하고 빠른 시간 내에 민원을 종결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어차피 해결해 줄 수 없는데 희망고문을 하지 말아야죠.”라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정답이 없는 주관식 질문이기는 했지만 입장을 바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민원인으로 관공서를 찾아가서 저런 공무원을 만나면 전후 사정 이야기도 제대로 못 해보고 도움은커녕 오히려 스트레스만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그렇게 면접이 끝나고 최종 합격자가 누가 되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전제했던 것처럼 사람 보는 눈이 크게 다르지 않기에 내가 면접을 했던 응시자 중 누가 탈락을 했을 거라는 건 예상이 되었다. 다만, 마마보이 같았던 응시자가 합격을 했을지 여부는 미지수였다.
아무튼 그동안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일반적 공개채용 면접뿐 아니라 개별 채용, 전입시험 면접 등에서도 응시자에 대한 전문지식 등에서 변별력을 가질 수 없을 때 판단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태도나 말투에서 겸손함과 배려심이 있는지였다.
물론 인위적으로 그런 태도나 말투를 보여 줄 수도 있겠지만 몸에 배어있는 습성은 쉽게 고쳐지는 않고 은연중 나타나기 마련이다. 잘난 척을 하던 응시자처럼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남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나 아는 척이 평소의 습관처럼 나타나고 그러한 것들이 감점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날 ‘마마보이’와 ‘잘난 척 女’라는 두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했던 그 면접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몇 개월 후 신규직원들이 인사를 다니는데 낯익은 얼굴이 그 안에 있었다. ‘마마보이’였다.
궁금증도 풀리고, 반갑기도 해서 그 후 관심이 가지고 지켜보니 다행히도 조직생활에 잘 적응을 하고 인사성도 밝아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마터면 좋은 인재를 놓칠 뻔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졌다.
몇 해가 지나 그 친구와 함께 입사한 다른 직원에게 점심을 사주며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조직생활을 좀 해서인지 면접 때와는 달리 말투도 생각도 많이 성숙해진 것 같아 내심 대견하고 안심이 되었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마마보이’가 가장 믿고, 따르는 엄마 이야기로 인해 시험에 떨어져 인생의 험로로 향할 수도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잘 알지 못하는 경쟁자인 ‘잘난 척 女’가 그를 한 시간 몇 분 남짓 만에 다시 정상적인 항로로 돌아오게 한 셈이었다.
運七技三이라고 해야 하나, 塞翁之馬라고 해야 하나? 인생 참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