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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재 Nov 15. 2023

2. 우리는 알록달록 벽지의 점집에 입주했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은행을 통해 전세자금 대출을 받았다. 당시에 신혼부부는 보증금의 70%까지 대출받을 수 있었고, 우리는 최대치를 받았다. 계약금을 제외한 나머지 보증금을 송금하기 전 누수에 대한 부분을 다시 한번 ‘집주인 사모님’에게 확인받고 싶었다. 그녀는 두루뭉술 말하였으나 다시 물이 새면 고쳐주겠다고 하였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전 세입자가 이사를 나가고 열쇠를 받았다. 우리는 곧바로 주민센터로 가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첫 보금자리인 신혼집 문을 열었다.     


일단 거실을 장식한 저 알록달록 꽃무늬 벽지를 좀 얼른 해결하고 싶었다. 극도로 화려한 무늬에 머리가 다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이전 세입자는 저 벽지 앞에 텔레비전을 두고 영상이 눈에 들어왔을까? 흡사 점집을 연상케 하는 이 집에서 생활했던 그들이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었다.     


이전 세입자는 문제의 붙박이장을 떼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날것 그대로의 천장 누수 흔적을 마주했다. 물길을 따라 흐른 누런색 그림은 회색빛 곰팡이와 적절한 하모니를 이루었다. 그로테스크한 문양이었다.

‘그래, 저 누수란 말이지? 저거 정말 고친 게 맞겠지?’     


신혼집 인근에 있는 도배장판 가게를 방문했다. 장판은 그런대로 쓸만하여 사장님께 도배만 의뢰하였다. 사장님은 샘플지를 보여주시며 벽지를 고르라고 하셨다. 작은 집일수록 하얀 벽지를 발라야 조금이라도 넓어 보인다고 하셨다. 권유받은 흰색 바탕 안에 미세한 은색 펄이 들어 있는 벽지를 골랐다. 혼수를 고르는 느낌과는 달랐다. 집이라는 큰 유형물을 선택해 그 안에 바를 벽지를 고르고 있는 나를 보니, 정말 어른이 된 듯한 생각이 들었다.     


도배가 다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신혼집을 갔다. 벽지 하나로 집 분위기가 바뀌어 있었다. 알록달록한 꽃무늬 벽지 집이 새하얗게 변하니 그제야 신혼집 같았다. 쭈글쭈글한 도배지는 마르면서 펴지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사장님은 조금 걱정되는 얼굴로 안방 천장과 작은방 벽에서 누수 흔적을 보았다고 하셨다. 주인에게서 고쳤다는 말을 들었다 말씀드리니 그러면 다행이지만 혹시 몰라 작은방 벽은 습기를 막는 보강 작업을 하였다고 하시며, 안방 천장은 나무 합판이라 그러지 못하였으니 살면서 누수를 잘 살펴보라 하셨다.     





며칠 후 결혼식을 치렀다. 전날 따뜻했던 날씨는 결혼식 당일에 비가 내리면서 싸늘하게 바뀌었다. 비가 오면 잘 산다고 하객들은 덕담하며 새로 탄생한 신혼부부의 앞날을 축복했다. 신혼여행 기간에 오기로 한 혼수품은 친정엄마께서 받아주시기로 하셨다. 여행 후 돌아와 양가에 인사를 드리고 우리는 비로소 신혼집에 입성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다 우리가 선택한 것뿐이었다. 냉장고, 침대, 침구, 그리고 이 신혼집까지. 주말마다 추가로 필요한 물품을 사러 다녔다. 이 집을 어떻게 하면 더 예쁘게 꾸밀 수 있을까 궁리하였다. 우리는 신혼부부였으니까. 행복했고, 즐거웠다. 이제 더는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심야 영화를 보고 손을 잡은 채 그대로 같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서 축구를 보며 치킨을 시켜 먹었다. 어설픈 요리를 내놓으며 차례대로 친구를 불러 집들이도 해냈다. 하루하루가 행복했고, 행복해야만 하는 신혼부부였다.     




그러던 어느 봄날이었다. 안방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따뜻한 햇볕이 참 좋다고 생각하던 주말, 무심코 천장에서 황토색 점 하나를 발견했다.

‘응? 저건 뭐지? 뭐가 묻었나? 혹시 설마......?’ 가까이 다가가 천장을 살펴본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맙소사!’


누수였다.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만난 바로 그 녀석.

누수는 이렇듯 우리에게 자신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황토색 점 하나로 알려주었다.


[모든 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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