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쿠바 여행 21
현대미술관을 끝으로 딸내미는 쿠바 여행의 흥미를 닫아버렸나 보다. 여행기간이 길어지면서 지치기도 했고 그녀가 원하는 유형의 여행이 아니기도 했나 보다. 슬슬 숙소에 머물러 ‘처’자는 시간이 늘어난다. 대신 우리는 찡찡거리는 소리를 듣지 않고 우리끼리 실컷 싸돌아다니기로 했다.
일단, 아바나 대학과 혁명광장을 찾아 길을 나선다. 아바나는 내내 강풍이 몰아쳤다.
우리가 묵은 호텔에서 조식을 먹으려면 옥상 꼭대기로 가야 한다. 사시사철 춥지 않으니 옥상에 식당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몰아치는 바닷바람(근처가 그 유명한 말레꼰이다)을 맞으며 머리카락을 넘기며 아침을 먹는 건 좀 그렇다. 하지만 사방에 이렇게 높은 건물(10층)이 별로 없다 보니 드론으로 아바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저기가 중앙공원, 이쪽이 아바나 대학, 저 멀리 높은 건물들 보이는 데가 베다도, 저기가 모로 요새... 한 눈에 다 보인다.
아바나 대학에서 혁명의 지성을 만나보고 싶었건만
여행 다닐 때 조심할 것이 꼭 가봐야 하는 곳의 일정과 요일을 미리 확인하는 일이다. 스페인에서 월요일이라 피카소 박물관을 못 갔던 기억을 우리는 벌써 잊었단 말인가? ‘월요일의 박물관 징크스’를 지혜롭게 피해 산타클라라의 체 게바라 기념관을 잘 다녀왔다고 너무 자만했던 것일까.
우리가 요기조기 걸어 다닌 날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일요일에 문 닫는 곳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게 탈이었다. 비바람 몰아치는 말레꼰을 지나 아주 오래 걸어 도착한 아바나 대학은.. 아, 글쎄 일요일이라고 캠퍼스를 닫아 놓았다. 대학생들과 몇 마디 대화... 는커녕 대학의 분위기를 느낄 수도 없이 정문 앞에서 온갖 포즈의 사진만 찍었을 뿐.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거의 씨가 말라 버린 ‘혁명의 지성’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세계 대학생들의 발랄함’이라도 보고 싶었건만...
그리고, 또 지칠 만큼 걸어 도착한 혁명광장에서는 역시 일요일이라는 이유로 호세 마르티 기념관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기념탑 높은 곳에서 광장을 내려다보고 싶었건만. 풀씨가 한 발짝이라도 가까이 다가가려 하니 무섭게 생긴 쿠바 군인이 두 팔을 벌려 막는다. 우리는 광장 한쪽 구석에 앉아 한국에서 싸간 ‘꿀호떡’과 ‘가나 초콜릿’을 씹으면서 건너편의 내무성 외벽의 체 게바라 얼굴을 마주 보며 맑은 하늘과 뭉게구름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독수리들이 늘 탑꼭대기를 휘돌고 있는 저 놓은 곳의 호세 마르티, 어떤 면에서는 체 게바라나 피델보다 더 부러운 쿠바 국민의 아버지 호세 마르티. 존경과 그리움은 책에 고이 접어 모셔두어야 했다.
다음 생에는 살사를 추리라
여행을 따라가지 않은 아들은 우리에게 쿠바에 가서 무얼 했느냐고 묻는다. 뒷골목 여기저기 돌아다닌 이야기를 하니 “걷기만 했어? 뭐 한 거 없어?” 라고 묻는다.
‘하다’
그가 말하는‘하다’의 의미는 가령 춤을 추었다든지 보트를 탔다든지, 노래를 불러 보았다든지, 이런 걸 말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보고’, ‘걷고’, ‘먹고’ 말고는 한 게 별로 없다. 아바나 뒷골목을 지날 때 살사학원을 지나친 적이 있었다. 빼꼼 들여다보는 우리 부부에게 섹시한 옷차림의 남자 춤 선생이 다가와 뭐라고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말이 통하거나 말거나 들어가 봐도 될까요? 이러고 구경이라도 했다면 그는 우리에게 살사 한 스텝을 가르쳐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고난 몸치 한 세트인 우리, 허리 35인치를 둔중하게 흔들며 “춤 잘 추는 사람이 부럽다~!”고 외치며 발레 구경을 갈망하는 풀씨와 그의 아내는 행여라도 춤선생이 옷자락이라도 잡아끌까 두려워 얼른 ‘올라!’를 외침과 동시에 빠이빠이 손을 흔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