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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꽃 Oct 29. 2024

결핍이 가져다준 아이러니, 쿠바의 유기농업

오래전 쿠바 여행 23. 끝.

풀씨(남편)는 쿠바에 가면 도시농의 현장을 보겠노라 했다. 쿠바는 미국의 경제 봉쇄와 소련의 붕괴로 경제난을 겪으면서 ‘어쩔 수 없는 유기농’의 대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화학비료를 쓰고 싶어도 없어서 못 썼고 식량을 수입하려 해도 수입할 수 없어서 자급자족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쿠바인의 식사는 너무 소박하다. 고기는 소, 돼지, 닭을 고루 먹지만 요리법이 다양한 것 같지는 않다. 왜 이 좋은 날씨(그러니까, 농사짓기 좋은 열대의 날씨를 말하는 것이다. 비 많고 햇살 좋고, 우리가 간 1월에도 나무들은 싱그럽다 못해 공포스러울 만큼 싱싱했다.)를 활용해서 맛있는 채소를 가꿔 먹지 않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채소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그 점이 엄청 아쉬웠다. 맛있는 풀떼기들을 접시 한가득 담아놓고야 밥이고 고기고 먹었던 우리로서는 ‘베즈터블 샐러드’랍시고 오이 저민 것 열 장에 배추 썰어놓은 것 한 젓가락, 작은 토마토 두세 조각을 담아주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가 추운 나라도 아니고, 우리가 풍성한 곡류를 원한 것도 아니고 말이지...     


가난한 식사? 아니면 문화?

대신 풀씨는 이 여행을 통해 ‘소박한 식사’에 대한 새로운 철학을 마련한 듯 보인다. 어떻게든 세 끼를 먹으면 하루를 살 수 있다는 당연하고 단순한 진리를 쿠바인들을 통해 새삼 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매 끼니를 그렇게 풍성하게 못 먹어 안달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처럼 소식(小食)을 하면서 먹는 것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 입장에서는 늘 풍성하게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 하는 풀씨와 그의 자녀(특히 딸)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딸아이는 TV 볼 때도 소위 ‘먹방’을 즐겨본다. 나는 TV 속 그들의 탐욕스러운 먹성을 보는 게 힘들지만 가족의 화목을 위해 같이 보아주곤 했다. 

    

끼니때마다 뭘 먹을까 고민하는 이들을 보면, 때로는 찬밥에 물 말아 ‘메루치 볶음’으로도 한 끼를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냉장고 속 굳은 빵 한 조각 덥힌 것과 커피 한 잔이면 그게 뭐 어떤가 싶어서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도 했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본의 아니게 조금씩밖에 먹지 못했던, 그래서 각각 1, 2킬로그램씩 감량을 하고 돌아온 여행에서, 특히나 자신의 식욕을 삶에 대한 사랑과 에너지라고 착각해 왔던 풀씨는 먹는다는 것, 소박하게 먹고산다는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밥의 양을 절반으로 줄이고 가벼워진 몸과 더불어 정신마저 맑아진 듯 고고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이 자리에서 전하는 바이다(몸무게는 약 3킬로 정도밖에 줄지 않았지만...)

유기농 채소를 판다

소박하게 먹고살자는 철학

다시, 쿠바 유기농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한때는 부족한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아바나 도시 건물 곳곳에 식물을 키웠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었건만, 아바나 시내 어디서도 그런 흔적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오래되어 폐허가 된 건물 안쪽에서 밀림처럼 자라는 나무들과 공존하는 도시의 풍광을 보았을 뿐이다. 쿠바인들의 식단을 보면 건물 옥상마다 작은 텃밭처럼 채소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긴 한 건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도시 외곽으로 나갔을 때는 자그마한 농장 같은 것을 더러 볼 수 있었다. 물론 자랑스럽게 ‘유기농’이라는 푯말을 달고 있었다. 쿠바인들은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비롯되었든 어쨌든, 농약이나 비료도 없이 자란 풀들과 거리 곳곳을 자기 짚 앞마당처럼 뛰놀며 키운 닭들이 낳은 달걀로, 풍족하지는 않으나 나름대로 ‘올가닉한’ 식단을 유지하는 건 사실인 것이다. 아, 물론 선진국형의 ‘건강 식단’은 아니다. 쿠바인들은 비타민이나 무기질보다 단백질 섭취가 상대적으로 더 많아 보인다. 나는 다만 식탐을 부리지 않는 소박한 식단만큼은 조금 부러웠다.      

쿠바 여행은 좋았나요?  

여행이 ‘좋았느냐’고 묻지 말고 ‘의미 있었나요?’라고 물어보면 어떨까. 우리에게 쿠바여행은 숙제와도 같았다. 벌써 그 숙제를 한 것으로 보아 우리의 인생도 이제 분명 내려가는 기로에 서 있는 게 맞는 듯하다. 뭔가에 물들기 전에, 혁명의 순결성과 인간다움을 간직한 쿠바를 ‘가장 좋을 때’ 가는 것이라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런데 오바마가 쿠바에 다녀왔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생각이 좀 달라진다. 우리가 여행하던 시기(2016년 1월) 아바나는 여기저기 공사 중이었다. 아바나에서 묵었던 호텔은 뭘 고치는지 밤새 뚝딱거렸고 마지막 날에는 방문 바로 밖에서 페인트를 칠하느라 불편을 끼쳤다. 말레꼰 주변에는 거대하고 호화로운 호텔을 짓는다는 공사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격동의 지점을 목격한 것이 특별하달 수는 있지만 관광객으로서 우리는 좀 더 안정이 된 쿠바를 가보았어도 좋았을 것 같다.   

  

거리의 채소 장수

더 늦기 전에 쿠바, 다만

아직 늦지 않았다. 쿠바인들은 뭔가 긍정적인 삶의 변화의 기미를 감지하고 안 그래도 밝고 명랑한 이들이 더 들떠서 여행객을 맞을지 모른다. 경쟁적으로 들어선 괜찮은 호텔과 까사들이 여러분을 맞을지도 모른다. 여행경비는 더 많이 지출될지 모르지만 아름다운 쿠바의 추억을 질 낮은 숙소로 망치는 것보다는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당분간은 자본주의의 손길이 쿠바를 짓밟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기에는 쿠바인들의 혁명적 자부심이 아직은 당당하니까. 그러니 마음속에 ‘언젠가는 다녀와야 할 곳’으로 쿠바를 꼽았던 분들이라면, 어쩌면 지금이 바로 그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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