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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꽃 Apr 22. 2024

쿠바 아바나 까사 체험기

오래 전 쿠바 여행 5

아바나 까사의 첫 밤                    

춥고, 얼른 눕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도착한 아바나 호세 마르티 공항, 벌써 밤 10시다. 환전도 해야 하고 물도 사야 가서 라면이라도 끓여먹는데 이 미션들을 다 수행하고 마중 나오기로 한 택시기사도 찾아야 한다. 한글로 ‘환영 000’ 이런 거라도 써서 들고 있을 줄 알았는데 기다리는 이 중 우리 이름을 들고 있는 이도, 부르는 이도 없다.      


오밤중의 호세 마르티 공항

다가와 25쿡에 택시 타고 가라고 꾀는 기사양반들과 흥정을 시작한 남편님께 “예약이 돼 있다고요, 기다리라고요.” 하는데 어떤 덩치 큰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또 다가온다. “택시?” 어쩌고 해서 “우린 예약이 돼 있다”, 고 바우처를 흔들어 보였더니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는 거다. 공항 안에 있는 여행사 부스에 날 데려가 준다. 여기 직원에게 바우처를 보여주면 택시기사가 올 거라면서. 그것도 모르고 삐끼인 줄 알고 안 웃어 주고 “레절베이티드~!”만 외쳤던 거 많이 미안해서 나중에 “무차스 그라시아스~(무쟈게 고맙습니다)”를 여러 번 외쳤다.      

택시기사는 4층짜리 불이 환한, 아주 예쁜 어느 집 앞에 우릴 내려준다. 딸애는 감격해서 “여기가 숙소야? 엄마가 기대하지 말라고 했잖아. 근데 완전 대박인데?” 한다(하지만 아니었다).

그런데 짐을 내리자마자 어떤 청년이 다가와서 말을 건다. 우리들 세 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읊으면서. 예약된 까사 아들 ‘라울’이었다. 아무래도 난 외모차별주의자인가 보다. 아까 그 뚱뚱하고 거대한 공항 직원 아저씨에게는 쌀쌀맞게 굴었던 내가 20대 체 게바라 닮은 청년에게는 사소한 농담에도 오바하며 웃고 있더라.    

  

체 게바라 닮은 민박집 청년

낡은 차를 운전해 어두운 산길로 들어가며 그는 유창한 영어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자기 차야말로 ‘륄리 올드 카(아바나에서는 ’올드 카 투어‘라는 관광상품이 있다. 사실 관광객용이 아니어도 쿠바 사람들이 타는 차는 1950년대 미국에서 수입된 진짜 오래된 차들이 대부분이다.)’라며, 그래도 잘 굴러간다며...         


쿠바에는 많은 민박집이 운영되고 있다. ‘까사(casa. ‘집’이라는 뜻)’라 부르고 집 밖에 파란 까사 표시가 있다. 우리가 간 라울네 까사는 방 두 칸 침대 세 칸에 화장실과 부엌을 다 쓰게 돼 있었다. 식구들 옛날 사진과 재봉틀이며 가스레인지까지 있는, 그냥 살림집 한 동을 다 내준 것이다. 

그 밤에 끓여 먹은 컵라면은 먼 여행의 ‘일단 안도’의 맛이었다고나 할까. 일단 내일은 늦게까지 늦잠을 자면서 공항 노숙의 노곤함을 풀어야지.     


아바나의 둘째 날

8시에 아침을 먹기로 했다. 조식이 불포함이라 1인당 3쿡(3달러) 정도의 아침을 부탁했다. 간단한 샌드위치와 달걀, 커피 정도였지만 깔끔하고 맛있었다. 라울과 그 어머니는 영어를 잘했고 할머니는 ‘굿모닝, 브랙퍼스트’ 정도 외엔 스페인어만 하신다. 영어를 거의 안 쓰는 그 집 할머니와 역시 영어를 거의 안 쓰는 우리 집 아저씨가 각각 스페인어와 한국어로 자주 대화를 나누었고 다른 네 명은 주로 영어(단어)로 대화를, 그래서 하여간 우리 여섯은 많은 대화를 나눈 것 같다.     

 

<꽃보다남자>의 탤런트 이민호가 쿠바에 왔었다면서 라울은 이민호 사진을 컴퓨터로 보여주었고 ‘여친 있냐?’는 내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친구 사진을 보여준다. 그 유명한 바라데로 해변에서 아슬아슬한 수영복 차림으로 야리꾸리한 자세로 찍은 사진이지만 자기 엄마 있는 데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준다. 엄마도 덩달아 아들의 여자친구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걸 보니 26세-22세라는 그들 커플이 더더욱 부럽다.    

 

쿠바 청년에게 한글을 가르치다

라울은 종이를 가져와서 자기들 이름을 한글로 써 달라 한다. 한글은 어떻게 글자들을 조합하는 거냐, 물어서 졸지에 한국어(한글) 조음 체계를 설파하기도 하고... 이런 대부분의 대화는 라울, 그의 엄마, 나, 딸냄, 이렇게 넷의 대화였다, 풀씨(남편)는 공항에서 눕지 못했던 여독 때문인지 내내 잠만 자다가 결국 저녁 먹을 때 등장했는데 눈꺼풀이 두꺼워져 나타난 이 아저씨에게 저녁 7시인데 라울은 ‘굿모닝!’이라고 인사해서 다들 폭소를 터뜨렸다. 마지막 날 비아술로 태워다줄 때도 라울은 ‘아저씨, 이젠 안 졸리죠?’하고 아저씨를 놀려먹었다.   

      

아바나에서 먼저 3일을 묵고 나중에 돌아오기로 했는데 말이 3일이지 마지막날 새벽에 이동을 해야 해서 온전히 아바나를 둘러볼 수 있는 날은 이틀뿐이다. 그런데 아침 먹고 다시 좀 쉬고 시내 구경을 하려니 비가 올 듯 구름이 잔뜩 끼었다.           

건기라더니비 오는 아바나뭐냐~!

쿠바의 1월은 건기다. 11월~ 4월까지가 겨울 없는 이 나라의 가장 추운 계절이라는데 평균기온은 20도 정도. 그런데 건기라고, 또 하늘이 눈부시도록 파랗다는 말에 선글라스까지 챙겨갔는데 첫날부터 비가 온다. 사실 12일 일정 내내 구름이 잔뜩 끼었는데 요행히도 비는 피해 다녔다. 비가 올 듯 해 햄버거를 사들고 숙소에 들어오면 그때서야 비가 내리고 이런 식으로.     


 그날도 꾸물꾸물한데 그래도 일단 동네 구경을 하고 다시 들어와 점심 먹고 낮잠 자고 오후에 아바나 시내에 나가자고 했는데 동네 한 바퀴 돌고 나니 하루 종일 비가 온다. 잘 쉬라는 신의 계시인 듯하다. 아바나 첫날 오후는 그렇게 내내 집 안에서 잠자고 발코니에 나가 비 구경하다 라울네 식구들과 수다 떨고 피자 시켜 먹으며 또 수다 떨고, 책 읽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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