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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기획안) 너 때문에 미치겠다.

가끔 묶은 채 담겨만 있는, 내가 아꼈던 작품들은 꺼내 보는 재미도 크다

by O작가 Jan 16. 2024

(저작권 등록된 기획안입니다. 26살때 습작해 제작사 대표들에게 우편으로 다 돌렸던 작품입니다.)


제목 : 너 때문에 미치겠다.


형식 : 1회당 60분물 16부작 미니시리즈.


장르 : 멜로.


배경 : 현대.


주제 : 욕망과 사랑의 결합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 인간은 없다.


이 작품의 메인 카피 : 한 여자의 소망, 현대판 왕자와 거지, 멈추고 싶은 미친 사랑, 남겨진 흔적들.




기획 의도

“밑바닥까지 내려간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고 싶다.”

“현대판 왕자와 거지로 인한 인간의 또 다른 슬픈 동화를 그려내고 싶다.”

“진정한 멜로를 보여주고 싶다.”




작가 의도

“인간이 욕망과 사랑의 결합 앞에서 얼마만큼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 싶었다.”

인간은 주관적인 욕망의 사회적 실현을 위해 삶의 의미를 찾는다 한다. 그러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주관적인 욕망을 무시하면서 사회적 의미를

실현할 수 없다 한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을 통해 무엇을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는 바로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것이 사회적 지위든, 돈이든, 사랑이든, 또 다른 그 무엇이든.

인간의 욕망이란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기 때문에 커질 수도 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진 몰라도 살아 있기 때문에 저절로

가져 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한 욕망의 색감이 자신에게 느껴질 정도고 최고조의 짙은 색감을 끌어올리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다.

대게 그러한 경험은 사랑이라는 감정과 욕망의 존재가 결합 되었을 때이다.

인간 안에 잠재 되어 있는 욕망이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애절한 사람의 감정과 결합 되면 모든 것을 잃고 파경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만큼 그 파경의 끝을

짐작하는 인간이든 짐작 못 하는 인간이든 사랑과 욕망의 결합 앞에서 이성을 잃지 않는 인간이 없단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정말 아름다운 사랑만을 꿈꾸는지 묻고 싶었다.”

우리는 흔히 사랑 때문에 이성을 잃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몰입돼 방황하는 사랑의 형태를 미친 사랑 아니냐고 반문한다.

능력 키우고 먹고 살 걱정 하느라 안 그래도 정답 없는 인생 속에서 갈팡질팡 방황의 연속인데, 그런 미친 사랑을 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뭐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더욱 심화되어 가는 경쟁 속에서 현실은 점점 우울한데 사랑이란 것만이라도 영화나 동화처럼 아름다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면 다 눈을 감고 솔직하게 가슴으로 대답해 보자.

정말로 세상에 아름다운 사랑만 존재하길 바라는가? 단 한 번도 미치도록 슬픈 사랑을 꿈꾸어 본 적이 없는가?

아마도 누구나 한 번 쯤은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듯이 한편으론 정말 미치도록 슬픈 사랑을 꿈꾸기도 할 것이다.

그런 사랑을 꿈꾸진 않더라도, 그런 사랑에 직접 빠져 보고 싶진 않더라도,

그런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 건지,

누군가가 그런 미친 사랑의 형태를 대신 보여 주길 바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사랑에 미쳐보고 싶은 한 여자에게서 시작 된다.” 

일에 파묻혀 사는 한 여자가 자기 나이에 맞는 열정으로 사랑이란 것에 미쳐 보길 항상 소망한다.

항상 짝사랑만으로 가슴앓이 하는 것도 이젠 지친다. 짝사랑은 가슴이 허무하도록 남는 것도 없고, 뭔가 서로 오가는 나눔도 없다. 그래서 비참하고 외롭다.

아니 어느 사랑도 함께 있다 해서 외롭지 않은 것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조금의 외로움은 다 껴안은 채 사랑이란 걸 하는 거라면 정말 미치도록 사랑해 보고 싶은 것이다.

어차피 열심히, 줄기차게 일하며 돈 벌어 봤자 큰돈이 모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인생이다. 그렇다고 요행이나 돈에 대한 부질없는 욕망은 바라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 하기에 보람 느껴가며 일 자체를 즐기며 살 수 있음 그만이다.

그러나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순 없듯, 일만 하며 살 수 없는 듯하다.

놓치면 정말 내 목숨이 붙어 있는 게 감사하지 않을 정도로 눈물 나도록 슬픈 사랑을 해 보고 싶었는데...

내 주제에 맞게 나랑 형편 똑같은 남자와 주변에서 말리고 싶을 정도로 정신 나간 그런 사랑을 해 보고 싶었는데...

이기범이라는 남자 때문에 전혀 다른 현실에 있는 사람과의 사랑 예감에 미칠 것 같다. 처음부터 이기범을 부담스럽고 재수 없는 존재로만 생각했기에 그런 깊은 감정에 휘말리게 된 것이 결코 달갑지 않으면서도 절망스럽게도 거부할 수 없다.

그런데다 정말 시끄럽게도 서재우이란 남자까지 끼어들어 수란의 마음을 산란할 정도로 이리저리 흔들어 대기 시작한다.

이기범, 서재우. 이 두 남자가 왜 이러는지, 수란의 마음은 왜 그리 점점 혼란스러워지는지 겁이 나기 시작한다.

“현대판 왕자와 거지가 미친 사랑 때문에 주체할 수 없는 방황을 시작한다.”

수란을 알고 난 뒤부터 두 남자가 현대판 왕자와 거지가 되려 하고 있다.

이기범은 서재우에게 수란과 멀리 떠날 테니 자신의 귀공자 자리를 대신 가져가라며 옷을 바꿔 입자고 투정을 부린다.

서재우은 이기범에게 옷은 갈아입어 주겠지만 그렇다고 수란을 내 줄 수 없단다.

쌍둥이도 아니고 놀라 정도로 외모가 닮은 것도 아닌 이 두 남자가 말도 안 되는 동화 속 이야기를 흉내 내려 한다.

정말로 미쳤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미쳐가고 있음을 모르고 있다.

두 남자가 보여주는 욕망의 형태가 계속 되는 선택의 엇갈림 속에서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


* 한수란 (27세 - 뮤직비디오 시나리오 작가 + 콘티 작가 + 작사가)

“나도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 그래도 정신 없는 내 일상이 시끄럽도록 악을 쓰고 싶진 않았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여자 홍길동이 따로 없어 보인다.

하는 일의 종류가 문어 다발식이다. 일에 묻혀 다른 생활의 재미나 활력이 있긴 한 건지 궁금하게 만드는 여자다.

주변 사람들도 그런 이 여자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기에 잠시라도 이 여자가 바쁘게 일하지 않고 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색하게 느껴진다. 혹시 집안이 어렵다

보니 돈이 너무 필요해 그렇게 정신 없이 일만 하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재벌 집이나 부잣집 딸은 아닐지언정 돈 때문에 일에 치여만 살 정도로 가난하진 않다.

뭐든 다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는 아버지를 버리고 외국 남자 품에 안기겠다며 이혼하고 떠나간 친어머니 덕에 집안 가계를 전담하고 있긴 하다.

한때 대기업 말단 임원으로 있던 아버지 퇴직금은 친어머니와의 이혼 과정에서 위자료로 다 날렸다. 하지만 아버지 앞으로 달마다 나오는 연금과 자신 앞으로

매달 나오는 (작사) 저작권 비가 짭짤해 집안 가계가 무너질 정도는 아니다. 세계를 휩쓰는 대 스타가 되겠다며 아버지 연금을 전부 파먹고 있는 하나뿐인 남동생 때문에 돌겠긴 하다.

집안 가계를 책임지고 있다 해서 집안일도 잘한다 할 수 없다. 요리 실력도 별로고 정리정돈 실력도 별로다. 세탁기는 돌릴 줄 아나?

미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범한 듯 귀엽게는 생긴 것 같다. 아니 어딘가 모르게 예뻐 보이는 구석도 있나?

본인은 자신이 어디 가서 그렇게 빠지는 외모만은 아니라 생각하면서도 “사람은 누가 뭐래도 외모 보다는 속이 꽉 차고 실속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녹음실이나 기획사 작업실에서 몸짱, 얼짱, 꽃 미남 남자 연예인들을 보면 눈이 즐거워 작은 환성이 나오고 그들의 여친 들이 부럽기는 하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한다. 뭐든 참으로 열성적이다.

누구에게든 인사도 잘 하고 안부 묻는 것도 잊지 않는다..

운전하는 모습도, 걷는 모습도, 일하는 모습도, 노는 모습도, 뭐든 성격 급해 보이고 열성적이면서도 야무지다.

쓸데없는 경제적 손실을 줄이고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선 그저 열심히 뛰며 사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일 없이 한가하면 커피 마시고 싶어서, 영화보고 싶어서, 쇼핑 하고 싶어서 등등 쓸데없이 돈만 쓰고 다닌단다.

그래서 새벽 늦게 일 문제로 연락이 오면 화장기 없는 얼굴로 머리 질끈 묶고서라도 달려 나간다.

그렇게 새벽 늦게 불려 나가는 일이 많아도 바쁘게 일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살기에 투정 한 번 없고 얼굴 찡그리는 일 한 번 없다. 오히려 자신을 찾아줘서,

자신이 바쁘게 일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는 식이다.


세상 누구나 쉽게만 사는 사람들은 거의 없기에 나 하나라도 얼굴 덜 찡그리며 조금이라도 더 웃으면 세계 평화에 보탬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제나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생각들로 자신을 가꾸려 노력한다.

호기심도 많다. 그 호기심 때문에 가끔 낭패를 보거나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21세기 경쟁 시대에서 원하는 멀티 다기능 인간형으로는 그러한 호기심 많은 성격이 적격이기에 괜찮다며 자신을 스스로 격려한다.

신뢰 지키는 걸 제일로 알고 몸을 아끼지 않고 꼼꼼히 일 처리 하는 걸 좋아하는 성향 덕에 더욱 더 자신의 일 적인 능력을 넓혀가며 열심히 산다. 그렇게 열심히 는 게 즐겁기만 하다.

(일에서만큼은 그렇게 프로가 돼 가고 있지만 노는 거나 스포츠 면에서는 아마추어도 이런 아마추어가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그리 밉지 않으면서도 화끈하게 다 해 버리는 성격이면서도 남이 상처 받을 만한 말들은 되도록 피한다.

혹시라도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었다면 뒤돌아서 혼자 잠을 설칠 정도로 한숨을 쉬고 후회하기도 한다.

내 말 때문에 밥맛을 잃진 않았을까, 내 말을 마음에 담고 자신을 비관하고 있진 않을까, 내 말 때문에 나라는 사람 자체를 오해하고 있진 않을까 등.

그렇게 하룻밤 잠을 설치고 나면 그 사람이 자신의 말로 아파하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은근슬쩍 그 사람의 상태를 보러 간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있는 것을 확인해야 안심한다.

입에 발린 말만 하는 사람들을 경계한다.

세계화에 발 맞는 자식들의 교육과 발전을 위해 기러기 아빠 노릇을 하던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철없는 친어머니. 그 친어머니가 입 발린 말 잘하며 신사인 척

하는 외국 양아치 때문에 떠났다.

(그래도 아빠가 기러기 아빠 노릇을 6년이나 해 온 덕에 본인은 3개 국어를 유창하게 잘 한다.)

더구나 왕자 병에 세상 물정 모르는 자칭 귀공자 후보인 얼짱 남동생조차 입 발린 말 잘 하는 엔터테인먼트 사기꾼들에게 수도 없이 당했다.

친어머니와 하나뿐인 남동생을 미워할 수는 없지만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웬수다.

이 여자,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말 한 마디 못하는 벙어리다. 그러기에 항상 짝사랑 전문이다.

자신이 고백하면 자신을 오히려 불편해하고 멀리 할까봐, 자신의 사랑 고백이 너무 무참히 가절 당하면 아픈 마음을 어떻게 추스려야 할지 판단이 안 서기에

사랑 고백조차 적극적으로 당당히 하지 못한다. 혼자서 끙끙거리며 마음 앓다가 상대의 결혼이나 상대의 연애 소식을 듣고 마음을 접는 게 이 여자의 짝사랑

방식이다.

미치도록 누군갈 사랑하기에 그 미친 사랑 때문에 앞 뒤 생각 없이, 아무 계산 없이 과감히 일 한 번 저질러 보는 게 소원인 여자다.

기범 같은 남자는 아무리 예쁜 포장지로 싸서 거저 안겨 준다 헤도 부담스럽기만 하고 기분 좋은 선물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처음엔 안하무인에 제멋대로이기만 하다 싶어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었다. 그저 어쩔 수 없이 일 적으로 부딪쳐야 하기에 예의 차려 주자였다.

기범 같은 남자의 애인은 당연히 공주 행세가 몸에 밴 어느 재벌 집안의 고고한 척 피곤한 아가씨겠지 싶었다. 그의 상대가 될 재벌 집 딸도 그리

기분 좋은 상대는 아니겠거니 싶어 자신과 오래 부딪길 사람이 아니길 바랐다.

더구나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길 재미 삼는 것 같은 기범의 모습이 한심하고 안 돼 보여 기범만 보면 조용히 혀를 내둘렀었다. 누가 될지 참 골치 아픈 남잘 연인

삼은 죄로 ‘눈물 찍, 콧물 찍’하거나 그래 너도 그러니 나도 즐긴단 식으로 피장파장으로 정말 볼만하게 살겠지 싶었다..

그런데 이 남자의 마음을 뺏은 상대 여자가 자신이라니. 그것도 진심이라며 앞뒤 없이 달려들다니. 당황스럽고 어이없어 처음엔 속으로 혼자‘쟤가 너무 지

멋대로 배부르게만 살다 보니 정신 치료가 필요한 건가?’했다.

그런데 더 환장 하겠는 건 그런 그 남자에게 빠져 들고 있는 듯한 자신의 마음이다.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부정하고 또 부정하는데도 이 남자는 제멋대로 자신의 마음을 서서히 끌어 들이기 시작하더니 사람 가슴을 답답할 정로도 조여 드는

이 남자, 점점 자신을 환장하게 만든다. 거절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고 있다.

서재우란 남자까지 중간에 끼어들어 자신의 생활을 미치도록 뒤집어 놓고 있다.

더 기막힌 것은 자신만 미쳐 가는 게 아니다.

현실 속에 사는 이 두 남자, 이기범과 서재우가 현대판 왕자와 거지가 되겠다며 수란에게 그 감정의 책임을 전가 시키려 한다..

한쪽에선 군말 없이 자신만 바라보며 따라 오라고 다그치고 한 쪽에선 상처 받지 않게 지켜 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다그친다..

수란은 점점 겁이 나기 시작한다. 자신이 왜 미치도록 누군갈 사랑해 보고 싶다며 평소 말도 안 되는 소망을 가졌었는지 후회가 되기 시작한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탓도 아닐 텐데 자신의 생활뿐만 아니라 두 남자의 생활이 깨진 게 자신의 탓 같다.

미치도록 사랑이란 걸 해 보고 싶었지 일상이 깨지고 뒤흔들릴 정도로 시끄러워지길 바랐던 건 아니었다.




* 이기범 (29세 - 녹음실 사장 + 악기 연주자)

“사랑 같은 건 쓰레기통에 버렸었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못되게 굴기 시작했는데, 다시 사랑이란 걸 하게 돼 버렸다.”

항상 사람들에게 “나는 원래 동화 ‘왕자와 거지’에 나오는 거지인데 우연히 쌍둥이처럼 쏙 닮은 왕자를 만나 옷을 바꿔 입는 바람에 왕자가 됐다.”며 떠들고

다닌다. 그래서인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가 ‘왕자와 거지’이고, 세상에서 제일 감명 깊게 읽은 책도 ‘왕자와 거지’이다.

외모로 보나, 학벌로 보나, 집안으로 보나, 어디서 아쉬운 소리 한 번 안 해도 될 안하무인의 귀공자다.

그러나 자신이 귀공자란 걸 굳이 내세우고 싶어 하지도 않고, 앞에 나서거나 똑똑한 척 잘난 척 하는 것도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한테 지는 것도 싫어

한다.

그래서 가끔 재벌 자재들 모임에 참석하게 되면 술 마시고 똑똑한 척, 잘난 척 하는 동갑내기 회원 놈들에게 싸움을 걸곤 한다.

상대도 참지 못해 덤벼들어 싸우게 되며 절대 지지 않는다. 싸움이 끝나고 상대가 넉 다운 되면 보란 듯이 클럽 무대로 올라가 신나게 악기 연주까지 보여 준다.

속정이 많지만 누구에게든 자신의 속정을 일일이 내보이는 것은 자존심 상한다.

그래서 말투도 행동도 청개구리처럼 틱틱 댄다.

너무 좋으면서 겉으론 대려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는 돌아 서서 혼자 환성을 지른다.

상대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 주지 않거나 자신의 성의를 무시하면 그 사람을 무시하고 일부러 아프게 하려 한다. 그리고 투정도 부린다. 자기가 성의를 보이면

고맙게 받아들이고 그냥 웃으라면서.

세상이 우습다. 아니 자신에게 아부하며 굽실대는 인간들이 우습다.

나이 어린 나한테 왜 그리들 고개 숙여 인사들을 하는지 참 딱하게 보일 때도 있다. 그래도 그게 현실인가?

만약 내가 정말 거지 옷으로 바꿔 입고 영영 귀공자 자리 내 주고 떠나도 나한테 고개 숙여 인사 할까?

아무래도 내 친아버지한테는 나한테처럼 인사 안 하는 거 보니 그럴 것 같지 않아 세상이 참 한심하고 우습다.

자신이 귀공자라는 사실 자체도 곱게 받아들여지지 않기에 답답하고 귀찮다. 자유롭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만 놔두려 하질 않아 뛰쳐나왔다. 너무나도 제약이 많고 뭐가 그리 얌전한 척 신사인 척 내숭을 떨라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남들은 귀공자가 되길 동경하고 귀공자가 되지 못해 한숨을 쉰다지만 자신이 귀공자인 게 불만이라 한숨 쉰다.

귀공자라는 게 그나마 편하고 좋을 때는 어디서든 기다림을 위해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고급스럽고 멋진 음식들을 많이 먹을 수도 있고, 마음에 드는 차를 돈

걱정 없이 뽑아서 몰고 다닐 수 있으며, 사고 싶은 악기를 마음껏 살 수 있다는 거다.

한 마디로 돈 걱정은 안 해도 되고 세상의 시장 물정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거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다. 라면이 먹고 싶어도 바로 집 앞에 있는 편의점 가는 게 귀찮아 참는다.

청소도, 요리도, 빨래도 못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손수 하기 귀찮다.

그런 것만큼은 정말이지 평생 누가 대신해 줬음 싶다.

악기라면 환장을 한다. 그래서 집을 뛰쳐나와 거처하고 있는 오피스텔 안에도, 땅을 산 뒤 예쁜 건물 지어 꾸며 놓은 녹음실 안에도 온통 악기들이다.

악기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인간이다. 악기만큼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신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단다.

그래서 악기 말고는 그 누구도 잘 믿지 않는다. 악기들은 내가 귀공자건 말건 상관없이 나를 받아 주기 때문이다.

악기 말고 유일하게 열심히 즐기는 스포츠가 있다면 마운틴 보드를 타는 것이다.

땀 흠뻑 흘리며 마운틴 보드에 몸을 맡기고 자연과 승부하다 보면 마음속에 있는 쓸데없는 생각들이 사라지는 듯 하다.

아무리 자기가 의사 표현 못하는 갓난 아기였을 때지만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친아버지를 버리고 새 아버지와 결혼한 어머니도, 자신 때문에 일부러 애를 안

낳았다 하면서도 가족 보다 일을 더 중시하기에 항상 자신의 성의에 무신경한 새 아버지도, 매일 집안의 명예만 강조하는 외할아버지도 다 멀게만 느껴진다.

그나마 제일 인간적이고 정 많은 외할머니만은 믿는다. 외할머니에게만은 마음속의 정을 내보인다.

그 외에 자신의 마음을 터놓는 단짝 친구라곤 재벌 가에서 하루아침에 몰락해 따 당하는 라애경과 친아버지의 성품을 닮았다고만 생각 했던 대학 동창 서재우

뿐이다.

사랑이란 감정 자체를 우습게 보고 무시한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친아버지가 대학 때 만난 어머니와 열렬한 사랑에 빠졌었다.

그러나 아무리 성실한 노력으로 명문대에 들어 온 수재 아버지라 할지라도 어머니의 집안 배경까지 극복할 순 없었나 보다. 어머니조차도 그런 아버지를 끝까지

자기 옆에 둘 수 없었나 보다.

친아버지는 결국 임신한 어머니와 헤어져 자신의 씨앗으로 잉태 된 아들이 수술로 지워져서 세상에 없는 줄로만 안다. 더구나 대학 수재였던 사람이 어머니와의

사랑으로 인해 수재 자리를 내놓고 잠적하더니 겨우 하고 있다는 일이 어머니를 평생 가슴에 묻은 채 고아원 아이들 돌보는 거다.

그런 친아버지 얼굴을 가끔씩이라도 훔쳐보기 위해 아무도 몰래 고아원에 경제 지원을 해 주며 방문 하곤 한다.

어느 날, 이 남자 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수란이란 존재의 등장은 가슴 아프도록 애절한 소유욕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엔 저런 여자도 있구나 싶었다.

일에 미친 여자처럼 여기에도 뿅, 저기서도 뿅 하고 나타나기에 살기가 힘든가 싶었고 그것도 참 사는 데 편하진 않겠다 싶었을 뿐이었다.

더구나 자신의 친아버지처럼 집안도 별로에 그렇다고 미모가 빼어나게 뛰어나거나 잘 빠진 것도 아닌 수란에게서 무슨 매력을 찾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 여자 참 신기하다. 어느새 자신의 머릿속에서 맴돌기 시작한다. 꼭 자신이 아끼는 악기들을 닮은 듯도 하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항상 밝게 웃으며 인사도 잘 하는데 자신한테는 뚱하게 구는 것이 재밌기도 하다.

여태 많은 여자와 놀았지만 자기 옆에 붙들어 둘 정도로 갖고 싶어 한 여자는 없었다. 그저 원 나이트 스탠드 형식으로 즐기려고만 했을 뿐인데 이 여자는 자기

옆에 붙들어 두고 싶다. 이 여자가 원하면 더는 다른 여자들과 즐기지 않아도 좋으니 갖고 싶다.

솔직히 자기가 못되게 구는데도 매번 내숭에, 아양까지 더해 잘도 놀아 주며 화려히 치장하고 다니는 여자들과 놀아나는데 지쳐 간다.

지쳐 쓰러질 정도로 마운틴 보드에 몸을 맡겨 봐도 이 여자가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안 그래도 귀공자 자리를 벗어 버리고 싶었는데 사랑이란 욕망의 굴레를 선택한 기범은 이 여자 덕에 본격적으로 옷을 바꿔 입으려 한다.

엄마와 할아버진 그런 기범을 보고 미쳤다. 하지만 자신은 그걸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의 가문들은 아직도 남자 중심이다. 그러니 아들인 자신은 엄마 보다 친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게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왕자에서 다시 거지로 되돌아가려는 것이다.

왕자의 자리에서 새 아버지의 아들이 아닌 거지의 자라에서 친아버지의 아들로 돌아가고 싶다. 그것이 친아버지를 내친 할아버지와 엄마에 대한 복수일지도

모른다.

아무려면 어떠랴. 어차피 “왕자와 거지” 이야길 제일 좋아하는 동갑내기 재벌가 자제들 클럽의 영원한 문제아인 것을.




* 서재우 (29세 - 엘리트 사원)

“주어진 현실에 만족 했었다. 세상 어떤 것 앞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감정을 알고 난 뒤론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욕망을 발견한다.”

어떤 일에도 잘 참을 줄 아는 인내와 침착성을 잃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자신의 감정을 잘 절제할 줄 알고 합리적인 판단과 결과를 중요시 하는, 재벌 가의 권력과는 상관없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신사이다.

일부러 신사가 되려고 노력한 것은 아니다. 평범하지만 교양 있고 다양한 문화를 즐기며 지식인으로 살던 부모의 영향 덕에 천성적으로 몸에 배여 있다.

항상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논리 정연하게 잘 표현한다. 큰 소리 내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싸움도 할 줄 모르는 샌님은 아니다. 싸움도 잘 한다.

자신이 먼저 시비를 걸거나 누군갈 일부러 건드리지도 않고 되도록 싸움을 피하려 하지만 피치 못하게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됐을 땐 거의 지는 일이 없다.

다만 다 싸우고 나서도 넘어진 상대를 일으켜 옷을 털어 주고 악수로 마무리 할 정도로 싸움 끝에서도 신사다.


제자들을 정말 사랑하고 자신들의 삶에 성실하고 충실했던 교수 부부의 외아들이었다.

재벌이나 돈 많은 부잣집 아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명망 있는 지식인 부모 밑에서 별 탈 없이 평탄하게 자랐다.

교수 부부 아들답게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성적은 톱이었다. 머리가 명석하고 똘똘하다.

어렸을 때부터 캠프 행사에도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과의 사귐성도 스스로 배우고 터득했다.

대학 1학년 때 지방 세미나에 참석하고 돌아오던 부모님이 한 날 한 시에 사고로 운명할 때까지만 해도 크게 외로움이란 것을 모르고 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화목한 가정에서 영원히 평탄한 모습으로, 평탄한 감정만을 유지하며 살 줄 알았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이기범과 라애경의 도움으로 멍한 정신으로 장례식을 다 치르고 난 뒤 혼자가 되자 외로움이란 것을 배웠다.

그렇다고 해서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기범이 권하는 여자들과 놀아나지도 않았고, 자신이 외로워졌으니 자신을 봐 달라고 사람들에게 투정을 부리지도 않았다.

다만, 세상 위에서 완전히 혼자 서는 법을 터득하기 위해 세 달 동안 잠적하고 혼자서 해외로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부모님이 남기고 가신 유산들 덕에 경제적으로 크게 무너지지도 않았다.

대학원을 다니며 기범네 집안의 기업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 했다. 그때 기범의 새 아버지 눈에 들어 박사 학위를 따고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정식으로 입사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며 빠르게 승진하고 있다.

제대로 된 보보스 족이다.

사치와 낭비를 좋아하진 않지만 자신의 발전이나 자신의 취미 생활을 위해선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것이 자신을 위한 투자이기에 당연한 즐거움이라 생각한다.

부르주아 들이 잘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은 골동품들만 찾아내 수집하는 게 취미이며 기범과 함께 마운틴 보드를 즐긴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

자신과 무관한 계통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대화의 창을 막거나 멀리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가까이 하며 그런 다양한 계통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모임 갖는 걸

즐긴다.

그러다 보니 아는 것도 많고 다방면으로 발도 넓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완벽 하려 한다. 대충대충은 없다.

게으르거나 긴장감 없는 생활 자체를 싫어하기에 언제나 생각하고, 언제나 준비한다.

진희의 새 아버지가 그런 재우가 자신의 친아들이었으면 싶을 때가 있다며 재우의 제대로 된 보보스족 기질을 신뢰하고 가까이 두려 한다. 그러나 기범의 새 아버지 관심을 (무시하진 않지만, 고맙게는 생각하지만) 의식하지 않으며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한다.

사내에서 여직원들한테 인기도 많지만 여자를 별로 가까이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여자한테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 적으로 신경 쓸 일이 많고 일 틈틈이 기범과 애경과의 우정을 지키기도 바쁘다.

바쁜 시간을 쪼개 함께하고플 만큼 자신에게 휴식을 주는 여자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애경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건 어렴풋 눈치 채고 있었지만 애경과는 우정을 더 소중히 하고 싶기에 모른 척 시치미 떼고 있다. 애경이 자신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나 보다 생각할 정도로 시치미 떼며 애경을 편하게 대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능청스러운 면도 있다.

언제부턴가 기범 옆 자리에서 수란의 모습을 자주 발견한다.

처음엔 그저 기범이가 또 새로 바꿔 버린 여자 중 하난가 보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너무나도 자주 기범의 옆 자리에 서 있다.

그래서 피치 못하게 자주 마주치게 됐다.

그런데 그 여자만 보면 웃음이 난다. 기범이 그 여자를 그저 노는 여자로가 아닌 평생 옆에 두며 갖고 싶은 여자로 생각한다는 데서 호기심을 유발 시키더니

단지 호기심 만으로만 끝나질 않고 있다.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범이 수란을 너무 막무가내로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는 통에 기범의 할아버지와 새 아버지가 알아 버렸다.

명예만을 중시하는 기범의 할아버지와 개인적인 감정 따위로 기업의 이미지를 망치기 싫어하는 기범의 새 아버지가 수란을 곱게 볼 리가 없다.

그때부터 기범 집안의 식구들로부터 기범 몰래 상처 받는 수란의 모습에 재우는 처음으로 기범에게 화가 나고 기범이 미워지기 시작한다.

왜 자신이 수란 때문에 평소 침착한 자신의 패턴을 잃고 불안해 보일 정도로 걱정 하는지 놀랍기도 하다. 더 놀랍게도 수란에 대한 자신의 걱정이 행복하기까지

하다.

수란을 지켜 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갑작스레 기범네 집안 내에서 귀공자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아무리 한국 대표 대기업 중 하나라지만 얼마나 대단하기에 자신의 아들이 사랑하는, 죄 없이 자신의 힘으로 열심히 사는 한 여자를 아프게 할 수 있는 건지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마침 기범네 집안에선 하나뿐인 집안의 장손이 통 기업엔 관심도 없고 기업의 대를 잇기 위한 공부는 하질 않아서 고민들을 하고 있다. 또한 기범의 새 아버지는

재우에게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기범은 귀공자 자리를 내 주고 옷을 갈아입고 싶다며 “왕자와 거지” 얘기를 현실 속에서 실현 시켜 볼 상대를 찾는다.

그런 것들을 잘 이용해 한국이 자손에게만 기업을 물려주는 제도를 처음으로 깰 수만 있다면 자신이 수란을 지켜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재우는 자신도 몰랐던 자신 안의 커다란 욕망의 둘레를 발견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한 여자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그 욕망의 끝에서는 그 한

여자만을 위해서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11. 그 밖의 등장인물


* 라애경 (29세 - 클럽 주인 + 코러스)

“무너진 환경이 나를 180도 변화 시켰지만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사랑이 나를 갈등시킨다.”

과거에는 정말 잘 꾸미고 다니며 여자답기 이를 데 없는 그야말로 세련된 공주였다.

세상이 밝고 긍정적으로만 보였으며 힘든 게 뭔지 평생 모르고 살 것 같았다.

도도하고 당당 했었으며 꼿꼿한 팔등신 모델처럼 흐트러짐 없는 발걸음으로 세상을 누비면서도 여자다운 수줍음과 조심성을 갖추었었다.

사회적인 무모한 도전이나 모험은 남자들한테 맡겨 놓으면 된다고만 생각했었다.

너무 솔직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내숭도 하나의 무기로 사용할 줄 아는 게 재벌 가의 딸로서 센스 있는 사귐성의 최고 원칙을 지키는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재벌이던 집안이 아버지 친구의 배신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리고 아버지가 자살을 하고 나니까 주변 환경도, 주변 사람들도, 결혼을 약속한

남자와의 행복도 다 등 돌린 채 변해 버렸다.

다시는 찾고 싶지도,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냉정하게 변해 버렸다.

그런 변화들을 감당 못해 매일 울기만 하는 엄마를 일본 외할머니 집으로 보내 버렸다.

그때부터 이 여자, 현실 보는 눈이 달라졌다.

옷차림부터 시작해서 행동과 말투까지 변해버린 현실 그대로를 표현한다.

거침없이 행동하고 망설임 없이 세상의 도전들을 받아들이는 털털하고 직선적인 여자가 됐다.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돈 없으면 “나 돈 없어. 밥 사.”라고, 술 마시고 객기 부리고 싶으면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 마시고 남자 친구 집이든 여자 친구 집이든

가리지 않고 쳐들어가 거리낌 없이 잠을 청하는, 너무나도 솔직하고 과감해졌다.

애초부터 복수 같은 건 꿈꾸지 않으며 그런 건 부질없다 생각한다. 집안의 몰락은 운명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재벌가 어른들과 자제들이 곱게 보이지만은 않아 비소 섞인 냉소를 보인다.

세상사는 게 그리 녹녹지 않다는 것도 알아 버렸다.

그리고 평범하지만, 그리 부유하진 않지만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산층들의 모습이 뭔지도 알게 됐다.

남자가 아닌 여자도 사회적인 도전이나 모험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지 않으면, 자기 밥그릇을 자기가 챙기지 않으면 결국 자신만 손해라는 것이 세상 법칙임을 알았다.

그 어떤 것도 누가 대신해 줄 수 없기에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할 줄도 알아야 꿋꿋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중산층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대응해가는 완전한 중산층 시민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범의 손에 억지로 이끌려 오랜만에 동갑내기 재벌 가 자재들 모임에 나갔다가 예전과는 다른 눈으로 보게 된 그들의 잘난 척과 분에 넘치는 경제적 여유가 역겹다. 그 중에서도 자신과 결혼할 뻔 했던 놈의 빈정거림을 기범이가 실컷 두들겨 패 준 뒤 들으라는 듯 무대에 올라가 악기를 연주 하자 자신도 모르게 희열을 느꼈다.

가만히 앉아서 공주처럼 살던 시간들은 이미 잊었다고 말한다. 그런 때가 있었냐며 기억나지 않는다 말한다. 어디 가서 굳이 자신은 예전에 한국에서 거의 다 알만한 재벌 집 딸이었단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말을 한다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런 재벌이 그리 망했다고들 그 기업의 자손들이 중산층으로까지 몰락하겠냐고 할 게 분명하다.

하긴 자신도 대한민국 몇 대 재벌 가 집안이 그렇게 대형 파산을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으며 자신이 남들 보기에 공주 같은 생활을 누려 왔음은 생각해 보지못했던 일이다.

180도 변해버린 환경과 자신의 모습에 큰 불만이 없다. 좋은 대학에서 돈 걱정 없이 현대 무용을 전공해 집안 몰락으로 대학 졸업도 못할 줄 알았다.

그러나 기범의 도움으로 겨우 대학을 졸업한 뒤 작은 클럽을 운영하며 코러스 일을 하고 있지만 쪽 팔리거나 슬프지 않다.

기범을 통해 알게 된 재우하고도 친구로서 우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서재우란 남자가 범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 남자가 자신의 마음에 눈물을 남기려 한다.

서재우란 남자만 아니면 쪽 팔릴 일도, 다신 슬플 일도 없을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가식 없이 자신의 능력을 쌓아가는 재우에게 마음을 잡혀 버렸다. 하지만 재우는 그러한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것 같다.

성격상 자신의 마음이 이러하니 너도 나를 바라보도록 노력하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재우가 수란을 지키고 싶다며 귀공자 자리에 대한 욕망을 내보이기 시작하는 걸 보자 걱정된다.  




* 한강천 (60세)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줬는데도 떠나버린 어린 아내를 원망할 수 없었다. 이해하기에 보내줬었다.”

현지연의 전남편이자 한수란과 한태정의 친 아빠.

남이 하라는 대로만 하는 성격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앞장서서 주도하는 성격도 아니다.

주어진 일 열심히 하며 스스로 차근차근 능력 쌓는 재미로 살았었다.

그래도 공부는 잘 했기에 서울에서 꽤 괜찮은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데이 그룹에 취직해 직장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었다.

나이 서른 둘 때 열 살이나 어린 사내 얼짱 미인인 일반 사무직 직원 현지연과 연이 닿아 결혼도 하고 딸 한 명 아들 한 명 낳았다.

연애도 현지연이 먼저 걸어 줬고 결혼도 현지연이 나서서 추진해 줬다.

딸 한수란은 작가로서 자기 스스로 씩씩하게 차근차근 능력을 쌓아가고 있으며, 아들 한태정은 지 친 엄마를 닮아 얼짱에 연예인 끼가 있어 기필코 스타가 되겠다며 난리다.

자신에게 어떤 현실이 주어지든 불평불만 하는 성격이 아니다. 주어진 상황에 맞춰 적응하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이 사람에겐 세상 어떤 일도 이해 못할 일은 없어 보인다.

자기 가족들에게는 해 달라는 대로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한 그저 묵묵하게 다 해 준다.

해 줬는데도 일이 꼬였거나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 왔다고 화를 내거나 책망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어린 아내가 아이들 장래를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3년 동안 어학연수를 다녀오겠다고 했을 때도 기러기 아빠가 되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어린 아내가 이혼을 요구 했을 때도 10살이나 많은 자신 보다 또래의 매너 좋고 유머 감각 있는 외국 남자에게 마음 뺏길 수 있다며 군말 없이 이혼

도장을 찍어 줬다.

아내가 떠나고 말단 임원으로 있다 명예 퇴직한 뒤 안정성 있게 집안에서 살림을 도맡아 할 것을 마다하지 않고 사회 생활하는 자식들을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

살림꾼이 됐다.

아들 태정이 스타가 되기 위해 여기저기 돌며 지원을 바라자 군말 없이 자신의 연금을 지원금으로 내 주고 있다.

태정이 사기를 매번 당해와도 꾸짖지 않고 그저 위로해 줄 뿐이다.

매일 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 게 사람이듯 항상 사람은 그저 순리에 자신을 맡기고 살아야 한단다.

그래서일까? 연락 한 번 없다 몇 년 만에 빈털터리로 돌아 온 전처 현지연을 다시 받아 주려 한다.

그것도 다 어쩔 수 없는 자신들의 운명이기에 순리대로 받아들여야 한단다.

그런 그가 이기범과 수란의 문제로 회장님 앞에 불려가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돈을 지원해 줄 테니 가족들과 함께 외국으로 떠나란 말 듣고 울분 한다.

딸 수란을 위해서 이기범과 딸 수란의 사랑만큼은 순리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한다. 자신의 딸이 더 큰 상처들을 받을 게 너무 뻔했고 가슴 아팠다.

그래서 처음으로 딸 수란 앞에서 무릎 꿇고 더 상처 받기 전에 기범과 헤어져 가족들과 외국으로 가자고 애원한다. 처음으로 자신이 먼저 뭔가를 하자고

가족들에게 애원을 한다.




* 현지연 (50세)

“내가 이기적이긴 한가 보다. 그때그때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정말이지 사는 재미가 없다.”

한강천의 전 아내이자 한수란과 한태정을 낳은 여자.

변덕도 심하고 뭐든 자기 패턴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자신의 마음이 변하는 대로, 자신의 기분이 시키는 대로 바로바로 움직인다.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부심도 강해 치장하는 걸 게을리 하지 않는다.

뛰어난 미모에 그리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래도 공부는 웬만큼 했기에 명문대나 이름 있는 대학은 아니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 했다.

대학 캠퍼스 내에서 알려진 퀸이었으며 노는 것을 좋아해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즐겼다.

그렇다고 학업에 소홀 했던 건 아니다. 좋은 기업에 취직한 뒤 괜찮은 남자와 결혼해 편히 살려면 학점도 중요하다 생각해 학점 관리도 소홀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학 1년 때 부모님이 뉴욕에 사는 작은 이모의 도움으로 뉴욕으로 건너가 작은 한국 식당을 운영하게 되지만 지연은 한국에 남는다. 그리고 방학 때만 부모님이 계신 미국으로 왔다갔다  했다.

대학 졸업 후 데이 그룹에 일반 사무직으로 턱걸이 취직하더니 그때부터 사내에서 결혼할 남자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한민국 최고 기업 중 하나답게 엘리트들만 모아 놓아서 그런지 사내 남자들이 자신의 외모에는 관심을 보여 줘도 결혼상대로 진지하게 사귀어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자신 보다 10살이나 많은 무덤덤한 성격의 한강천이 눈에 띠었다.

빠르게는 아니지만 성실하고 일 처리 능력도 깔끔하여 서서히 진급하고 있는 듯한 한강천에게 연애를 걸었고 자신이 하자는 대로 다 하는 한강천을

자기 마음대로 미국 부모에게 인사까지 시켰다.

한강천과 결혼에 골인한 뒤 딸 수란과 아들 태정도 낳았다.

희생정신이 별로 없어 살림이나 누구 뒤치다꺼리 같은 건 할 줄 모르는 성격이라 한강천과 결혼해 이혼할 때까지 항상 가정부를 두어 가정부에게 의존했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로 어학연수 가 있는 3년 동안 자기 또래의 유머 감각 있고 돈도 좀 있어 보이는 Mr. smyth와 눈이 맞아 아무 거리낌 없이

한강천에게 이혼을 요구 했다. 위자료 청구까지 한 뒤 아이들도 한강천이 맡도록 했다.

그런 그녀가 빈털터리가 되어 몇 년 만에 한강천과 자신이 낳은 두 아이 앞에 다시 나타났다. Mr. smyth와는 헤어진 지 오래란다.

한국에 들어 온지 며칠 됐으며 호텔에 머물고 있었는데 방값이 모자라 체크아웃을 못하고 있으니 좀 해결해 달란다.

그러더니 그녀는 호텔을 나와 전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들어 와 눌러 앉는다. 집안 살림은 그대로 한강천이 하게 내버려 두고 자신은 아들 태정의 매니저를 자처하겠다며 태정을 따라다니더니 연예 관계자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 한태정 (23세)

“세계를 휩쓰는 스타가 되고 싶다. 곱상하고 귀여운 외모를 썩히긴 아깝지 않은가.”

한수란의 친 남동생이자 현지연과 한강천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다소 철이 없고 자기감정에만 충실해서 그렇지 악의가 있거나 심성이 못된 인간은 아니다.

대학에서 연극영화과를 전공하며 기필코 세계 스타가 되겠단 일념 하나로 21살 때부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군 입대를 미루어가며 대학 졸업 때까지 번번이 사기만 당한다.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고 자신의 꿈에 대한 열성은 대단하나 미리 계획을 세우고 깊게 생각한 뒤에 일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대 뽀로

달려든다. 사람도 잘 믿고 귀도 얇다.

조심성이 별로 없고 그때그때 감정에 충실해 몰입하다 보니 세세한 부분들을 미처 파악 못하고 곧잘 사기를 당한다.

화도 쉽게 내고 금방 또 헤헤거리며 잘도 웃는다. 넉살이 좋은 편이다.

폼만 잡을 줄 알지 싸움은 못한다. 화나면 혼자 방방 뛰며 열을 냈다가 또 혼자 풀어 버리는 성격이다.

자신이 스타가 되기 전까지의 활동비와 투자비라며 매달 아버지의 연금을 전부 가져간다.

그러나 미안한 건 알아서 누나인 수란의 수입까지는 건드리지 않는다.

몇 년 만에 돌아 온 친엄마에게 처음엔 틱틱 거리다가도 금방 친해져서는 .둘이 죽이 맞아 함께 잘 돌아 다닌다.

기범의 도움으로 앨범을 내지만 정작 기범과 수란의 스캔들 때문에 재벌가의 귀공자 마음을 사로잡은 수란의 동생으로 더 유명해진다.




* 최란주 (50세)


“과거 때문에 슬픈 감정 따윈 없다. 그래서 하나뿐인 아들에게도 솔직히 다 털어 놓았던 건데 자신의 자릴 걷어 찰 줄은 몰랐다.”

이기범의 친엄마.

외모부터가 고고하고 도도한 여자다.

재벌가의 외동딸로 태어나 누구에게 고개를 숙이거나 미안하다 말 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니 배우려고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실수 했다는 걸 순간 느끼면서도 미안하단 말을 전할 줄 모른다.

어느 순간 감정에 빠져 충실 했다가 그것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면 현실을 선택하는 여자다. 선택한 뒤에는 그 순간 마음이 아프더라도 그것을 마음에 담고 후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현실 적응력이 빠르다. 자신이 선택한 현실에 대해선 후회하거나 돌아보지 않는다.

한때 대학에서 대학 전체 수재로 인정받은 기범의 친아빠, 차성재와 사랑에 빠졌었다.

재벌가 내에서의 또래 남자들과 달리 명석하고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으면서도 전혀 자신을 꾸미지 않는 소탈함과 순수함이 좋았다. 겉치레 없는 편안함이 묘한 매력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집안에서 자신의 가문과 조건이 너무 안 맞는다고 하자 임신한 상태이면서도 미련 없이  차성재를 떠나보낸다.

아이는 차마 지울 수가 없었다. 아무리 도도하고 현실을 택하기 위해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보낸 여자라도 모성애를 가진, 여자는 여자다. 어렸을 때부터 친분 있던 집안의 아들인 이영찬이 기범을 친아들처럼 생각하고 자신의 호적에 올리겠다고 제안하자 그와 결혼 했다.

차성재는 과거일 뿐 더 이상은 자신의 남자가 아니기에 마음에 깊숙이 묻어 버렸다. 기범을 위해 아이까지 낳지 않겠다는 이영찬에게 고마워하며 이영찬의 아내 역할에 충실하기 시작했다.

기범이 대학 입학할 때 이젠 컸으니 알아도 되겠다며, 자신이 과거 자체에 큰 슬픔이나 미련이 없기에 너무도 당연한 듯이 차성재 얘기를 해 줬다. 그런데 그것이 실수였단 걸 서서히 알게 됐다.

얘기를 듣는 순간엔 그저 묵묵히 아무 말 없던 기범이 점점 집안의 규율과 명예를 멀리하기 시작 했다.

최란주는 기범이 자신 보다 자신의 친아빠 차성재나 정 많고 인간적인 외할머니 성향을 닮았다는 걸 재차 깨닫는다. 그렇다 해도 기범이 평범한 여자애를 사랑하게 됐다는 이유로 “왕자와 거지” 이야기까지 빗대어가며 가문의 장손 자리를 걷어 차겠다고 까지 할 줄 몰랐다. 그렇게 평범하고 집안 조건과 맞지 않는 상대를 처음 사랑하게 되는 면만 자신을 닮았다. 그렇다면 기범도 어느 순간 현실을 깨닫고 돌아오겠지 싶었다.




* 이영찬 (52세)

“감상적인 감정 따위로 현실의 위치에 손상을 입히고 싶지 않다. 기범이 반만이라도 재우를 닮았음 좋겠다.”


최란주의 법적인 남편이자 이기범의 새 아버지.


대한민국 최고 5대 기업 중 하나인 데이 그룹의 사장.


뭐든지 분명하고 확실한 걸 좋아한다.


감성이나 보이지 않는 환상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생각하기에 언제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현실을 중시한다.


자신의 판단이 선택한 일을 실행시키기 위해선 어떤 일이라도 세 번까지는 용서한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조건상 자신과 잘 맞다 생각한 최란주를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전혀 입 밖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  최란주가 차성재랑 사랑에 빠져 임신까지 했지만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최란주가 차성재랑


결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란주가 미혼모의 몸으로 이기범을 낳자마자 기자들의 입을 막기 위해 이기범을 자신의 아들이라고 속인 뒤

결혼까지 했다. 기범을 친아들처럼 생각하기 위해 정관 수술까지 하고 아이도 낳지 않았다.

더구나 재우가 끝까지 자신을 친 아빠로만 알고 있는 줄 알았다. 설마 최란주가 진짜 친 아빠인 차성재에 대해 털어 놓았을 줄을 몰랐다.

그래서 재우가 기업의 대를 잇는 장손 자리를 더 기피하려 하는 걸 알고 최란주에게 실망하기 시작한다.




* 최도섭 (70세)

“기업의 CEO로서 평생을 굳은 신념과 항상 새로운 마인드로 명령하고 지휘만 하며 살았다.”

백우리의 불 독 같은 남편이자 최란주의 친 아빠.

대한민국 최고 5대 기업 중 하나인 데이 그룹의 회장.

자신의 명령이나 자신의 지휘에 길게 토 다는 걸 싫어한다.

 자신이 한 번 이거다 싶음 끝까지 고집불통에 누가 뭐라 하건 말건 항상 큰소리다.

태생이 재벌 기업 막내아들로 귀하게 자라 형들을 재치고 기업의 CEO 자리를 물려받아 세상에 무서울 것도 없다. 백우리 여사가 몸이 약해 아들 없이 딸 하나만 키우지만 밖에서 딴 짓 한 적은 없다.

돈으로 대리모를 사다 어떻게든 아들을 낳겠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 딸이 명문대 수재라는 것 빼곤 아무것도 볼 것 없는 차성재랑 사랑에 빠져 21살 때 이기범을 낳고 미혼모가 되자 딸 하나 있는 게 자식 많은 집안보다 걱정 꺼린 건가 싶어 한숨이 절로 나왔었다.

그래도 손자를 낳아 준 데다 기자들 입까지 막아 가며 큰 탈 없이 이영찬과 결혼하자 한시름 놓았었다.

그런데 하나뿐인 손자 놈이란 게 기업의 뒤를 잇기 위해 경영 공부할 생각은 안 하고 집 밖으로 겉돌기 시작하니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손자가 여럿도 아니고 한 놈 뿐이라 기업 대를 이을 장손이 끊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 백우리 (68세)

“기업의 CEO는 내 남편이지 내가 아니다. 나는 여자로써 집안의 평화에만 신경 쓸 뿐이다.”

최도섭의 아내이자 최란주의 친 엄마.

털털하면서도 고상하다.

거대한 담장을 넘어 근엄하고 무서운 사람들만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문 열면 친절히 웃어줄 그저 옆집의 부담 없는 부잣집 할머니 느낌이다.

자신이 대한민국 최고 기업 중 하나인 데이 그룹의 사모님이란 사실을 내세우거나 과시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기자들이 찾아 와도 남편이 CEO이지 자신은 그저 다른 여자들처럼 한 집안의 주부일 뿐이라며 언론과 접촉하길 좋아하지 않는다.

꾸준히 자원 봉사를 하러 다니지만 그것도 자신이 기업 CEO의 아내이기 때문인 관리 차원이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언론에서 관심 갖고 기사화 하려는 게 싫다. 그래서 신문이나 잡지 기자들이 와도 가정부에게 이왕 온 거 음료수 대접해서 돌려보내라고만 하고 그들을 만나진 않는다.

자기 얘길 늘어놓기보다 남의 얘기를 참을성 있게 잘 들어 주며 남의 속을 헤아려 쓰다듬어 주려는 따뜻한 인간미를 지니고 있다.




* 차성재 (50세)

“한 여자와의 사랑을 끝으로 조용히 살게 된 것에 감사하며 평생 독신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기범의 친아버지이자 최란주의 옛 애인.

소탈하고 소박한 느낌이면서도 자신을 일부러 꾸미려 하지 않는 편안함이 있다.

이 사람이 정말 명문대 전체 수재였나 싶을 정도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평범한 옆집 아저씨 같은 사람이다.

누굴 원망하거나 탓하고 싶지도 않단다. 현실에 따라 사람의 상황은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으니 그런 것들을 일일이 다 원망하며 살 정도로 지난 과거나 순간의 아픔에 연연하기 싫다. 그런 것처럼 귀찮은 것은 없다.

어찌 보면 자신의 마음이 편하기 위해 그러는 걸 수도 있다.

최란주가 임신한 걸 알았지만 그 아이를 낳았단 사실은 전혀 몰랐다.

최회장이 그 아이는 병원에서 지웠다고 하기에 그런 줄만 알고 있었다.

최란주가 현실을 직시하고 더 상처 받기 전에 미련 없이 떠나라고 할 때 매달리지 않고 떠나주는 게 좋겠다

싶어 떠났다. 그리고 지방의 작은 고아원 원장 노릇을 하게 됐다. 설마 자신의 고아원에 경제적 지원을 해 주며 간간이 들리는 기범이 자신의 친아들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기범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은 최란주가 낳은 차성재의 친아들이라 말하자 처음엔 당황스럽고 기범이란 아이가 제정신인지 아닌지 의아했었다. 그러나 진실을 알게 되자 차츰 최란주와 최회장에게 화가 나기 시작 했다.

그런데 그 화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 갈 줄은 몰랐다.




* 문노을 (27세, 남 - 기범의 개인 매니저 겸 비서)

“꿋꿋이 내 할 일만 하며 묵묵히 살고 싶은데 어떤 정신 나간, 그것도 연상의 여자가 나를 건드리기 시작한다..”

입이 무겁고 말이 너무 적다. 그러기에 믿음직스럽고 듬직해 보이긴 한다.

합기도에서 태권도까지 시작해서 수영, 검도 등 안 해 본 운동이 거의 없다.

대학에서 비서 직을 전공했으며 워낙 운동 신경이 좋고 운동을 취미 이상으로 즐겨 대학 내내 보디가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대학 졸업하고 최도섭 회장 비서실에 취직했더니 젊은 친구답지 않게 입 무겁고 책임감도 강해 일 처리를 믿음직스럽게 한다며 최회장의 눈에 들었다. 그래서 최도섭 회장 비서실에 취직한 지 1년 만에 이기범의 매니저 겸 개인 비서로써 이기범의 오른팔 역할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최회장의 연락망 역할을 중점적으로 했기에 이기범이 노을을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었다.

그저 기범에게 자신을 쫓아다니며 감시나 하는 존재로 여겨졌었다.

인간적인데다 눈치가 빨라 최회장에게도 기범의 행동 상태에 굳이 전하지 않아도 될 말은 전하지 않으며

최회장에게 기범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너무 길게 전하지도 않는다.

때론 기범을 감싸주기도 하고, 때론 기범을 위해 걱정스럽고 우정 어린 말을 건넨다. 그래서 기범이 자신을 믿도록 만든다. 그리고 진심으로 기범을 보필하고 돕는다.

그런 그에게 수민이 자유롭게 평생 연애만 하며 살자고 프러포즈해 오는데 너무 황당하고 기가 차서 그 다음부터는 수민에게 인사도 건네지 않는다. 그런데 자신보다 2살 연상이기도 한 수민이란 이 여자, 참으로 끈질기다.

처음엔 수민을 정신 나간 여자로 취급하던 노을은 수민이 점점 싫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그래서 여자 하나 구제한다 치고 이 연상의 여자를 한 번 길들여 볼까 싶은데 만만치 않을 것 같다.




* 이수민 (29세, 여 - 레코딩 엔지니어 + 편곡 전문가)

“난 원래 통장에 돈 모으는 재미로 사는 독신주의자다. 그런 나랑 평생 자유롭게 연애나 하자는데 그렇게 이상해?”

수란의 집안 사정까지 다 알고 있는 유일한 대학 선배이자 단짝.

털털하고 솔직하다.

웬만해선 화를 안 내지만 자신을 건드리거나 비유에 안 맞으면 직선적으로 한 번 쏴 붙여 준 뒤 상대를 술자리에 불러내 화해를 권하기도 하며 자기편으로 만들기도 한다.

자기가 느끼는 대로 편하고 솔직하게 표현한다. 아닌 걸  맞다, 맞는 걸 아니라고 말 못한다.

뒤끝도 없고 쿨 하다.

뭐든 마음속에 꿍하게 담아 두는 성격이 아니다. 안 좋은 일도 금방 털어 버리고 씩씩하게 자기 할 일 한다.

독립심도 강하고 생활력이 강해 대학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일과 인연을 맺더니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일하며 여태까지 통장도 두 개다.

짠순이 까지는 아니지만 통장에 돈 모으는 재미로 사는 탓에 쓸데없이 돈 쓰거나 한 턱 낸다며 생색내는 거 싫어한다. 그렇다고 누구한테 빌붙어 공짜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다. 그냥 서로 편하고 공평하게 뭐든 더치페이 하는 걸 좋아한다.

자기 판단에‘이건 내 꺼다.’ 라고 생각되는 것을 한 번 자기 레이더망에 붙잡아 놓으면 절대 안 놓는다.

항상 이기봄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묵묵하고 입 무겁고 듬직해 보이는 2살 연하의 문노을에게 필 꽂혔다.


그래서 자기는 평생 독신으로 살 생각이니 자기랑 평생 자유연애하자고 문노을에게 프러포즈했다가 정신 나간 여자 취급 당했다. 그러나 끝까지 문노을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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